마흔에 보는 세상. 5편.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실패'에 대한 글을 너무 빨리, 많이 썼다. 그건 아마도 내가 아직 실패에서 비롯된 상처와 아픔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흔 살의 프리랜서 노총각이니 얼마나 갖고 싶은 게 많고, 갖지 못한 것에서 오는 박탈감과 상처가 크겠나?
그런데 내가 크고 작은 실패를 반복했던 이유를 돌이켜보면, 그건 결국 내가 지극히 목표지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항상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질주를 하는 게 익숙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어렸을 때 주입받은 사람이다 보니 나는 항상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해야 하고 있어야 했고, 그 일의 목표를 달성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리 간단한가? 인생을 목표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으로 목표지향적인 사람인 나는 실패를 마주하면 그런 경향이 강한 만큼 더 힘들어했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성향을 많이 극복하긴 했지만 아직 마흔이라는 나이는 그것을 포기할 정도로 기력이 다할 나이는 아닌가 보다. 나는 여전히 일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의미가 부여되고 어느 정도는 좋아하는 일하는 것만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일만 하려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강한 편이긴 하지만 20-30대의 나는 그런 경향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했다.
나의 그런 경향성은 내가 노력해서 나만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얘기를 어처구니없어하겠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영역에서만큼은, 그 세상만큼은 내 힘과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추상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서 그 원리를 현실적으로, 제대로 알게 된 후에는 나는 어떤 것도, 한 사람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뤘던, 달성해 낸 일과 성과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그중 어느 것 하나도 누군가의 도움이나 노력 없이는 이뤄진 것이 없더라.
내가 기여한 것이 없다는 게 아니다. 100% 나의 노력만으로 된 것은 없었단 것이다. 내가 중학생 시절 해외에 살며 술, 담배는 물론이고 마약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 길로 들어서지 않은 것은 내가 그러지 않기로 한 것도 있지만 보수적인 부모님 밑에서 보수적으로 교육받으며 살았던 영향이 컸고, 내가 영어를 편하게 할 수 있게 된 것과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거도 부모님의 영향이 꽤나 컸더라. 그 외에도 재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학부생 시절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한 것도,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취업도, 대학원도 잘 갈 수 있었던 것도 나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했지만 내가 성장하는 과정과 만난 사람들의 영향도 작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운동선수나 연예인들 중에는 본인의 성공이 오롯이 본인의 힘과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건 엄청난 착각이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는 그들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엔터테인먼트로 여겨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던 덕분이고, 작게는 본인을 그렇게 포장해주고 관리해 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운동선수와 연예인들도 엄청나게 노력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사회적 분위기에서 태어났거나 자신을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들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성과나 성공을 오롯이 자신의 힘만으로 이뤘다고 하려면 그 성과가 광야 한 복판에서 혼자서 이룬 것이어야 한다. 아니, 광야 한복판에서 무엇인가를 이룬다고 해도 사실 그건 그 사람이 그 안에서 뭔가를 이룰 수 있는 능력과 성향을 타고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그게 오롯이 자신의 노력의 성과라고는 할 수 없다. 하물며 광야에서도 그러한데, 우리는 대부분의 성과나 성공을 이미 복잡하게 짜여지고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 속에서 이룬다. 그리고 그 사회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것들의 지원과 도움을 직간접적으로 받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어떤 것도 '오롯이' 나만의 힘과 노력으로 이뤄진 것은 없다.
정말 큰 성과를 이룬, 자신이 예상하지도 계산하지도 못했던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오히려 겸손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들이 그런 성공을 이룬 후에 그 성공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내가 어떻게 이런 성과를 이뤘지'를 복기해 보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에 더해서 일정 부분은 운까지도 따라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간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당연한 것도 없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해진다. 그걸 마흔이 넘어서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그게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