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보는 세상. 6편.
앞의 글에서도 설명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일을 좋아하고,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세상은커녕 한 사람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자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할지를 모르게 되었다.
생각해보자. 이 글을 지금 읽고 있는 당신은 왜 일하는가? 당신에게 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진국에 속하는 17개국에서 이뤄진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만 '물질적 행복'을 1위로 꼽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직업'은 겨우 7위로 꼽았단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 어쩌면 대부분은 일을 그저 '돈 버는 수단'으로 여긴단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일은 정말 오로지 돈 만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인가? 돈이 안 되는 일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돈은 굉장히 중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만 물질적 행복을 1위로 꼽긴 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우선순위에도 물질적 행복은 대부분 5위 안에는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17개국 중에 9개국이 '직업'을 2위로 꼽고, 대부분 물질적 행복을 3, 4순위로 꼽았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직업을 돈으로만 보는 경향이 강한 지를 보여준다. 돈을 본인의 건강과 가족보다 중요시한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현실인가?
만약 돈이 행복을 보장해준다면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게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과 사례들은 충분히 많다. 만약 돈을 많이 갖는 것이 행복을 보장해준다면 왜 돈 많은 사람들이 마약을 하거나 자살을 하기도 하겠나? 그건 돈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예를 끝도 없이 댈 수 있는 건 인간에게 돈 보다 중요한 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충족되고 돈도 있다면 더 행복할 수 있겠지만 그게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돈만 많다면 그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의 삶이 보여준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자신이 가치를 느끼는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행복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돈이 전부는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돈 만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이 지점을 놓고 고민을 하다 현실적으로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라도 누리기 위해서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을 택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너무 없으면 행복할 수도 없기 때문에. 문제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그렇게 돈 만을 위해 일하다 보면 스스로를 망가뜨리게 된다는데 있다.
나처럼 일 자체에서 보름과 의미, 가치를 느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일 자체에 의미가 부여되어야 하고, 자신의 마음이 반사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지가 꽤나 명확하다. 문제는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게 없다는 데 있다. 생각해보자. 수익창출이 주된 목표인 기업의 한 부분으로 일하면서 어떻게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단 말인가? 자기 계발서들은, 우리 사회는 무엇인가를 위해 일해서, 그것도 일 자체에서 의미를 부여받아서 일해야 할 것처럼 말하고, 심한 경우에는 강요를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에 공감하지 못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건 나처럼 일 자체에서 보람과 의미, 가치를 느껴야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일들은 대부분이 큰돈이 안되거나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영역에 있는데 힘은 무지하게 드는데, 아무리 일에서 보람과 의미, 가치를 느끼는 사람이라고 해도 일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그런 일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당장, 빨리, 많이 나지 않다 보니 꽤나 오랜 시간을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투자하며 기다려야 하는데 그 끝에는 성공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회의에 여러 번 빠지게 된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런다고 해서 세상에 바뀌는 것도, 내 이름이 엄청나게 남는 것도 아닌데... 아니 내 이름이 남는다고 한들 뭘 하겠나? 내가 죽고 나면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텐데. 생각해보자. 우리가 모두 이름을 아는 위인이 얼마나 되나? 그 사람들을 우리가 지금까지 기억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에게 득이 되는 게 뭐가 있나? 그 후손에게는? 거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다 굉장히 진지하게 '이럴 바에는 빨리 죽는 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꽤나 오랫동안 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살기 때문에 누리는 행복과 기쁨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인내하고, 힘든 것을 감내해야 한단 것을 감안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가족, 그중에서도 특히 부모님 때문이었다.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면 남은 부모님은 어떤 마음일지를 생각하니 차마 그런 결정은 하지 못하겠더라. 내가 그렇게 되면 두 분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죄책감 속에 보내셔야 할지를 상상해보니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우린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살아간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일할 수 있고, 살 수 있다. 아이를 둔 기혼자들은 때때로 자녀 때문에, 배우자 때문에 억지로 힘들게 일한다고 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일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싱글로 혼자 살아보니 일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희열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하더라. 한 가지를 성취하면 그다음 목표가 세워져야 같은 수준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더 힘든 시간을 더 오래 견뎌야 하는 아이러니란...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 정도 수준의 수입에 만족한다. 돈을 엄청나게 많이 쓰는 편이 아니다 보니 쓰고 싶은 데 돈을 써도 잔고는 조금씩 올라가는 수준은 벌고 있고,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문제는 내가 이 정도 준으로 일을 하게 되면 몇 년 후에는 일이 없던지 도태될 수밖에 없단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 당장 돈이 안 되는 일을 해야 하는데, 나는 사실 지금 정도 수준의 벌이로도 충분하다 보니 그런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싫은 마음이 깊은 곳에 있다. 그 과정의 힘듦과 불확실성을 알기 때문이다.
싱글로 살다 보면 이렇게 될 확률이 높고, 그러다 보면 아주 머지않아 점점 도태될 확률이 높다. 이 패턴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봤는데, 유일한 답은 내가 사랑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기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더 좋은 것, 많은 것을 주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열심히, 미래를 위해 투자하며 일할 수 있겠더라. 기혼자들 중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족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가족의 존재 덕분에 계속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더 많이 갖고,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많이 하는 게 더 큰 행복을 줄 것이라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지 내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해줬을 때 그 사람이 진심으로 행복해하는데서 오지 않나? 우리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 관계와 과정에서 '사랑'의 파편을 보고, 듣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사랑을 경험했고 아는 사람에게 사실 돈은 오롯이 100% 나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것을 많이 주기 위해 버는 게 더 큰 행복을 내게도 돌려줄 수 있다 (다만, 이 모든 건 자발적이어야지 누군가 강요해서는 안된다. 강요하는 건 이미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강제로 줘야 하는 것'이 되지 않나...).
왜 그렇냐고 물으면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답은 '사람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근거들은 꽤나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게는 평범한 연인관계에서 선물을 줬을 때 상대가 정말 기뻐하고 그것을 잘 쓸 때는 뿌듯함과 고마움을 느끼는 반면 반응이 시큰둥하면 섭섭한 것에서부터 크게는 악랄한 갱단이나 마피아도 본인의 가족에게는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인 것까지. 우리는 사회로부터 '더 많은 것을 가지면 행복할 거야'라고 세뇌되고 주입되지만 우리는 사실 사랑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무엇인가를 해줄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17개국 중 14개 국가가 1순위를 '가족'으로 꼽은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 사회야 말로 '정상 사회'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는 현실적으로 가족이나 실질적으로 가족 같은 사람이 아니면 우리가 사랑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할 정도로 알고, 신뢰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따라서 우리는 일도 가족을 위해 하는 것이 맞고, 일을 해서 가족에게 주는 것이 있을 때 가족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맙게 받고 누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선순환 고리일 것이다.
일 자체가 너무 중요하고, 일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일에서 오는 성취나 보람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단 것이다. 시상식 후에는 허무함이 몰려온다는 연예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일상에서 목표한 바를 이룬 후에 며칠이 지나면 곧 허무함이 몰려오는 경험을 우리는 일상에서도 크고 작은 곳에서 하지 않나? 일 자체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은 딱 그 정도다. 하루 이틀 정도의 흥분과 기쁨, 그리고 가끔 그 성취를 돌아볼 때 느끼는 뿌듯함. 하지만 우리는 무엇인가를 이루고 나면 같은 수준의 성취에서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더 큰 성취를 이뤄야만 그 정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는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가능하다면 본인이 보람을 느끼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러기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게 없어도 된다. 더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지는 게 아니라 일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되어야 한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지구와 동물에게 피해를 최대한 주지 않는 선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 일하면 된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 지구와 동물이 왜 나오냐고? 그에 대한 피해를 주지 않아야 일이 지속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오래가지 못하게 되어있고, 이는 지구와 동물에게 피해가 가는 일도 마찬가지다. 굳이 거룩한 이유를 대지 않아도 장기적인 '지속가능성'만 염두에 둬도 이 지점은 신경 쓰게 되어 있다.
다만 그러한 경우에도 우리는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수 없게 되는 일보다는 돈을 조금 덜 벌더라도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을 할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이는 돈도 중요하지만 인간에게는 돈보다는 사랑이 더 중요하고,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과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어야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일과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부터 망가져 괴물이 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입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