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보는 세상. 7편.
세상은 점점 결과 중심적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우리나라가 그런 경향이 유독 강하긴 하지만 이는 다른 나라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면 스포츠의 경우 과거에는 억울하거나 짜증이 나도 어느 정도의 오심에 대해서는 그 순간 화를 낸 후 잊고 다시 앞으로 가기도 했었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니까. 그런데 요즘에는 아주 작은 오심도 잡아내야 하고,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것도 명확히 잡아내서 '승부' 그 자체에 모든 것을 거는 느낌이다. 축구에서는 VAR과 같은 시스템을 통해 보면 엄지발가락 하나 차이, 야구의 비디오 판독 시스템에서는 0.1초 차이 정도 차이에 목숨을 거는데, 그건 그런 디테일이 승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걸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가 많다. 내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포츠와 운동선수들의 삶이 인간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기 때문인데, 그중 한 가지는 '불완전성'이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오심이 일어나서는 안되지만, 스포츠를 통해 심판도 사람이기 때문에 오심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품어주는 것을 배우는 것이 어쩌면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더 큰 가르침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완벽할 수 없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항상 승리하는 것도 아니며, 그저 운이 안 좋아서 실패하고 실수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무엇보다... 스포츠는 그저 스포츠일 뿐이지 않나? 엔터테인먼트에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 필요가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다.
'결과'에 모든 초점을 맞춘 삶을 망가지거나 불행해지기 쉽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불법과 폭력이 왜 발생하는지를 생각해보면 그건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도둑은 과정과 무관하게 물질적 풍요로움을 최대한 빨리 얻고 싶어서 범죄를 저지르고, 폭력과 살인 중 상당수는 자신의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하기 위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예시들은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도 목표지향적으로 살다 보면 그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단 것을 알 수 있다. 그 정도와 내용, 방향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는 많은 경우 범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과정'을 가도록 요구받고, 그렇게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렇게 살 것을 강요받는다. 아이들은 놀고 싶은데 학원을 몇 군데씩 가도록 강요받고, 공부도 재미있게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은데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를 하도록 요구받는다. 아이들은 친구들을 경쟁자로 여길 생각이 없는데 부모들은 그렇게 해야 미래가 밝다며 경쟁하도록 강요당하고, 우리나라 아이들 대부분은 공부하고 싶은 게 딱히 없는데도 대학을 가지 않으면 인생이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심지어 공부하고 싶은 게 있어도 그것을 포기하고 더 이름값이 높은 대학에 진학하는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만약 그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서 잘 먹고 잘 산다면, 행복하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 주위에는 그 과정에서 항상 승리해 온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어도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의 시간이 고통스러운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선택은 하지 못하고 자신이 지금까지 강요받고 순종하며 살아온 '세상이 맞다고 하는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취업도, 결혼도, 아이를 갖는 것도 모두 세상이 요구하고 정답이라고 하는 것에 맞춰 살다 어느 정도 물질적 풍요로움을 갖추면 그제야 자신을 찾겠다며 돈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삶이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자신을 알아가고 그에 맞춘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때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과 즐거움이 있다고 하는 곳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술과 유흥과 마약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켜 순간적으로 고통을 잊거나 느끼지 못하게 해 줄 수는 있지만 그 영역에 중독된 사람들은 결국 나락으로 간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항상 성공가도를 달려온 사람들이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은 자신을 모르는 것을 넘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항상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학습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에만 익숙한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 과정이 행복할 수가 없다. 그렇게 참고, 인내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잠시 느껴지는 성취감과 기쁨의 맛만 알고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기에 계속 그런 패턴을 반복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 지를 설명해주기도 힘들고, 설명을 해줘도 그들이 대부분 경우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두리안을 어렸을 때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성인이 되어 그게 왜 맛있는 지를 알기가 힘든 것처럼, 그들은 진짜 행복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행복하고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왔다면 어떨까? 그 과정에는 시행착오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A라는 것을 했을 때 행복할 줄 알고 그 길을 갔는데 그게 아닐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그 사람은 어떤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지를 점점 더 명확하게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공부를 하는 게 본인을 더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하는 게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행복의 힘'은 꽤나 위대해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지를 알면 행복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힘듦은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게 산다고 해서 인생이 항상 행복하거나 결과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으로 인해 가장 행복해지는 지를 알도록 선택하는 '과정'을 경험한 사람은 길이 막혔을 때, 실패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도 거기에서 다시 자신의 선택지를 앞에 놓고 본인이 어떤 방향으로 갔을 때 더 행복할 수 있는 지를 찾아 나설 수 있다. 세상에는 밥을 먹고살 수 있는 길은 꽤나 많아서 다시 일어나 새로운 방향만 설정할 수 있다면 그 길 위에서 뭘 해서든지 먹고 살 게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그 길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언젠가는 빛이 나게 되어있다.
하지만 목표지향적으로만 살아왔던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방황을 시작한다.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이 바라보고, 집중하던 일에서 실패하게 되면 그 사람은 갈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서 다행히도 '다 모르겠고, 내가 행복한 것을 찾자'라며 방향키를 돌리는 사람은 그나마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부딪힌 후에 좌절하고 혼란스러워하며 '돈이라도 벌어야겠어'라는 방향으로 다시 '돈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은 행복과 멀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 인생에서 빠른 길, 짧은 길을 찾는다. 그건 그들이 목표지향적이기 때문이고, 길을 가는 건 고통스럽고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 길 위에서 행복이 있어도 그럴까? 아닐 것이다. 그 과정이 힘들기도 하지만 행복하기도 하다면 사람들은 그 길이 조금 길어도 기꺼이 그 길을 갈 것이다.
산을 오르는데 경사가 가파르고 길은 아름답지 않지만 정상에는 빨리 오르는 길이 있고, 경사가 본인이 감당할 수 있을 수준이고 가는 길이 아름답지만 올라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느 경로를 선택해도 되지만 전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정상에 헉헉거리며 올라 위에서 사진을 찍고 '경치 좋네' 한 마디를 외치고 다시 내리막을 내려와서 '등산은 왜 가는지 모르겠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자를 선택한 사람은 올라가는 과정을 상대적으로 더 즐기고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는 과정을 즐기며 다시 산에 가고 싶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결과도 잘 나오기 때문에' 과정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정을 결과보다 더 중요시해야 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래야 우리가 우리에게 더 맞는 결과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정이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달성해도 행복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행복을 줄 수도 있지만 본인에게는 맞지 않는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건 마치 우리가 산에 오를 때 앞에 있는 봉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봉우리만 향해 올랐다 사실은 그 봉우리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같다. 모든 사람에게는 더 잘 맞는, 더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과정이 있다. 우리는 그 과정을 거치고, 그 길을 찾아갈 때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기에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살아야 한다. 또 그래야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라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