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보는 세상. 8편.
사람들은 채용과정에 대해 '능력주의'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능력주의'라는 표현이 굉장히 그럴듯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자. 경력직을 채용할 때야 그 사람이 일해 온 직장과 그 안에서 담당했던 업무를 보면 그 사람의 능력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지만 신입사원의 경우 어떤 능력을 봐야 하는가? 냉정하게 얘기해서 아무리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해도, 경영학 전공수업에서 전부 A+를 맞았어도 그 사람이 회사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는 경영학도 어디까지나 학문이고, 이론이며 기술적인 내용을 다루고 현실은 그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경영학을 열심히 잘 공부한 사람이 다른 전공을 한 사람보다 회사생활에는 조금 더 빨리 적응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능력치가 너무 차이만 나지 않는다면 실무에서 그 정도 격차는 짧으면 수개월에서 길어도 1-2년이면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능력 차이가 엄청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어쨌든 '지식'을 주로 접하고, 다양한 활동에서 일부 실무를 접하더라도 실제 회사생활이나 사회생활은 학부시절에 접할 수 있는 규모의 세상보다 훨씬 더 많은 변수를 다뤄야 하고 그에 따라 학점을 잘 받는 것과 완전히 다른 스킬 셋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신입사원들의 경우 누가 일을 더 빨리, 잘할지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학부 졸업생들이 선호하는 직장들이 '인턴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서류상으로, 대학교에서 확인할 수 없는 능력치와 성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인턴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짧게는 1-2개월에서 길면 6개월까지 함께 일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사회성은 어떤지, 얼마나 일을 빨리 파악하고 배울 수 있는 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회사들은 조금이라도 리스크를 덜기 위해 인턴제도를 운영한다.
하지만 연애할 때는 모든 것을 맞춰주고 잘해주던 연인이 결혼을 하면 돌변할 수 있듯이 막상 출근을 하면 완전히 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인턴들에 대한 평가는 다면적으로 이뤄진다. 만약 그러한 다면평가가 비슷한 사람 두 명이 한 명을 선발하는데 최종 후보로 올라온다면 어떤 사람이 채용이 될까? 그 기준은 조직이나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아마도 출신학교와 학점이 그 기준이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학벌주의가 심하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학벌을 더 노골적으로 많이 본다.
위에서 길게 설명했던 것처럼 학부에서의 경험과 능력치가 현실에서 제한적으로만 의미를 갖는다면 그들은 왜 학벌과 학점을 보는 걸까? 그건 그들의 특정한 능력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조건이 같다면 조금 더 '버티는 힘'이 센 사람을 뽑기 위함이다.
내 지인들 중에 우리나라에서 상위 0.1%에 속하는 학벌을 가진 사람들도 많지만 인 서울이 아닌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지인들도 있다. 상위 0.1%에 속하는 학벌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정말 천재인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고, 반대로 대학을 졸업하지 않거나 못한 사람들 중에도 천재 같은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의 학력 차이를 만들었을까? 다른 변수들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 두 집단의 가장 큰 차이는 '하기 싫은 것을 하면서 버티는 힘'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공부를 하고, 보기 싫은 시험을 쳐야 한다. 이는 대학에 가서 보는 시험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학벌과 학점은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사람이 하기 싫은 것을 하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는 될 수 있다. 물론, 하기 싫은 것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이제는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지만 통계적으로 봤을 때 어쨌든 학벌과 학점이 좋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하기 싫은 것을 하면서 버티는 것을 더 잘할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사회생활에 가장 필요한 능력은 뭘까? 그건 하기 싫은 것을 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아무리 좋아하는 일, 했을 때 행복한 일을 해도 부수적으로 하기 싫은 일들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냥 해야 하는 수준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 하나를 위해서 해야 하는 하기 싫은 일이 훨씬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회사생활은 그렇다. 기업들이 학벌과 학점을 보는 것은 그것이 그 사람의 '하기 싫은 것을 하며 버티는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걸 기업들은 듣기 좋게 '성실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버티는 힘'은 회사생활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이는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결과와 성과가 나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미래를 놓고 하루, 하루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버텨야 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 성공하거나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먹는 음식을 조절하고 꾸준히 운동을 수년간 해야 하는 것처럼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버티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꾸준히, 묵묵하게 버터는 힘과 능력 없이 성공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예쁜 몸을 만든 후에도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해야 하는 것처럼 성공한 후에도 꾸준히, 묵묵하게 버티면서 일하지 않으면 그 성공은 대부분 경우 거품처럼 꺼지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지나고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성공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묵묵하게 버티며 그 길을 가는 사람이더라. 버티다 보면, 자신이 예상하거나 계획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뭐라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과 내 삶을 통해 매일, 매일 발견한다. 결국은 버티는 게 힘이고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