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보는 세상. 10편.
이 주제에 대한 글을 한동안 쓰지 않겠다고 겨우 지난주에 공언했기에 이 주제에 대한 글을 다시 한번 쓰는 게 살짝 민망하지만 40대가 된 지금의 시선에서 이 주제를 뺄 수는 없었기에 이 주제로 글 2-3개 정도는 쓰려고 한다. 이 시리즈에 맞춰서.
나는 서른 살에 결혼을 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내 의지였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나는 정말 서른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려는 소망함이 있었다기보다는 어머니께서 항상 서른 전에는 결혼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씀하셨고,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내 생각이었던 것처럼 여겼던 것 같다. 만으로 마흔이 되어서도 결혼을 못한 지금 어머니도 이제 쉽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못하시는데, 두 달에 한 번 정도 나누게 되는 대화에서 나는 항상 '내가 서른 살에 결혼했으면 벌써 두 번 이혼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농담 같은 진담으로 한다.
진심이다. 20대에 내가 결혼에 대해 알았고, 결혼에 대한 생각했던 것을 돌아보면 나는 뭘 믿고 그런 생각을 했나 싶다. 당시의 나는 굉장히 이기적이었고, 다른 사람과 맞출 줄 몰랐으며, 결혼하는 것만 생각했지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결혼식과 결혼 후에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양가를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가 꽤나 깨어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삼십 대를 지나며 지인들의 결혼생활을 들으며 내가 얼마나 나이브했었는지를 알게 됐다.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소위 '결혼 적령기'라고 말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이면서 결혼 자체가 작지 않은 목표로 설정되어 있는 분들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소개팅이 많이 들어오고, 크고 작은 모임들이 많아서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을 때는 상대를 놓고 조건을 따지고, 썸을 타는 상대와 연애를 할지 여부를 고민하다 연애를 하면 '이 사람과 결혼하면 어떨까'를 생각하고, 아니다 싶으면 헤어지고 나서 곧바로 상대를 또다시 찾아나가느라 바쁘기 쉬운 게 현실이다.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결혼 후에 어떤 가정을 꾸려야 할지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게 결혼에 대한 초점이 거의 '상대'에게 맞춰져 있는 것은 내가 바뀌거나 맞추기보다는 당연히 내게 맞는 상대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구도 그 사람들을 탓할 수 없는 것은 가만히 앉아있어도 주위에서 소개팅을 하겠냐는 제안이 계속 들어오면 무의식 중에 그게 당연하고, 계속될 것이라 생각되기에 사람은 대부분 그렇게 된다. 20대에서 30대 초중반에 결혼한 사람들이 '싱글의 삶이 낫다'라고 하는 건 그들이 기억하는 마지막 싱글라이프는 그렇게 소개팅도, 만남도 자유로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싱글의 삶이 계속되지는 않는다. 여자는 30대 초반, 남자는 30대 중반을 넘어가면 들어오는 소개팅의 빈도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폭도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주위에서 '결혼하지 마'라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서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던 20대의 사회생활과 달리 30대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한창 일이 많고, 재미있어지면서 일에서 오는 성취가 커진다. 여기에 더해서 사회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다 보면 다양한 취미생활을 시작하기도 하다 보니 결혼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겠단 확신을 갖게 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결혼하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조언은 대부분 본인 경험에 기반해 있다는 오류가 있다. 그들의 말을 듣고 결혼에 대해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마치 파리에 여행을 다녀온 후 '파리가 왜 좋은 지 모르겠어. 더럽고, 물가도 비싸고, 숙소도 낡고 엉망이야'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만 듣고 파리는 여행지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파리는 첫 이미지는 그럴 수 있지만 오래 머무르면 머물수록 그 진짜 매력을 알게 되는 도시인데, 마흔 전후가 된 지금 결혼생활을 하는 지인들을 보면 그렇게 이혼하겠다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 닮아가는 것 같아'라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평가를 들을 때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좋은 것은 잘 얘기하지 않고 힘들고 부정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서도 좋은 이야기보다는 힘든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주위에 하는 사람들이 많고, 긍정적인 얘기보다는 부정적인 얘기들이 많이 들리게 된다.
물론, 결혼생활이 정말 힘들고 짜증 나기만 하고 후회되는데 사회적 평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결혼 자체가 필요 없고 나쁜 것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본인이 자신을 잘 모르고 상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일까?
파리와 여행의 예로 돌아가 보자. 파리에 한 번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나는 여행이 안 맞고, 안 좋아하는 것 같아'라며 파리에 대해 온갖 비난을 다했다고 치자. 그 사람이 정말 여행 자체를 안 좋아하는 것일까? 그 사람에게 파리는 매력이 없는 여행지였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발리나 하와이, 뉴욕, LA, 도쿄에 가면 자신이 여행을 좋아하는데 파리가 본인과 맞지 않는 곳임을 발견하게 될 수 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상대와의 결혼생활이 정말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결혼 자체의 무제는 아니다. 결혼 자체가 그렇게 문제라면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은 절대로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재혼을 할 때는 많이 신중해지긴 하지만 이혼한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재혼을 희망한다.
'나는 평생 연애만 할 거야'라거나 '너는 결혼하지 말고 연애만 해'라는 식의 말들도 꿈같은 이야기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상대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두 사람이 만나다 보면 어느 한쪽은 결혼을 꿈꾸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런 말이 비현실적인 것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과 맞는 연애 상대를 만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연애를 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연애에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지고, 서로 그러다 보니 연애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적당한 사람과 적당히 하는 연애는 노화로 인해 떨어져 가는 에너지를 더 갉아먹기만 하다 보니 그런 연애는 기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정말 자아가 건강하고, 혼자 잘 놀고, 외로움을 [전혀] 타지 않는 사람이라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본인이 그러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을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지는 않는지, 회사 사람들과 뭔가를 많이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혼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본인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주위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결혼을 하는 것 자체가 뭔가를 해결하거나 당연하게 해결해주지 않는다. 결혼생활은 결혼을 하고 나서 시작되고, 20년 이상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맞춰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할 때는 아무리 연애기간이 길었다고 해도 '나는 상대를 안다'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동거를 했어도 결혼한 후에는 긴장의 끈을 놓으면서 결혼하기 전에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보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결혼생활은 항상 상대의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할 것을 각오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람에게 그런 노력을 하면서라도 결혼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는 모두 우리 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일을 했고, 아는 사람도 많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서로를 구속해서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온전히 나의 편이 되어줄 수 없다는 사실만 분명해진다. 이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관점만 알고, 경험이 늘어날수록 사람을 잘 믿었다가는 본인이 상처와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누군가의 편이 되어주고, 그 사람이 내 편이 되어주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를 구속해서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려있지 않으면 절대로 온전히 상대의 편이 되어줄 수 없다. 그 사람도 본인의 삶이 가장 중요하고, 그 삶의 무게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따라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본인도 완벽하지 않은 데 상대가 그런 본인과 하나의 공동체로 구속되겠다고 다짐한 것이 아닌가?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그런 생각을 갖지 않는 순간, 그 관계에는 다툼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