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TC

벤투 감독을 보내며.

by Simon de Cyrene

스포츠는 좋아하지만 엄청난 축구팬은 아니다. 축구보다는 야구, 농구, 미식축구를 좋아한다. 진정한 축구팬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는, 거의 국대 경기 일부와 월드컵 때 축구를 보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와 관련된 글들은 브런치에서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최종예선에서부터 월드컵 전까지 벤투 감독에 대한 글을 종종 쓰고 싶었는데, 괜히 요란한데 감정 쏟아내는 글을 하나 더 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침묵하기로 했다. 스스로 당당하게 '축구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제발 좀 그냥 내버려 둬라'였다. 이 선수를 써라, 말아라, 왜 이런 애를 계속 쓰냐 등 참 말이 많았는데 사실 그때마다 개인적으로 벤투가 이해가 됐기 때문에 '좀 그만하지...'라는 마음이 항상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강인 선수를 쓰지 않은 것도 잘못이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난 지금도 이강인 선수를 월드컵 이전에 쓰지 않은 게 이강인 선수를 위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강인 선수 얘기부터 해보자. 이강인 선수는 2001년생이다. 이제 겨우 21살이다. 이 나이대의 선수들은 큰 좌절을 겪거나 첫 경험에서 트라우마가 생기면 그걸 극복하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하거나 극복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령대의 선수는 굉장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줘야 한다. 당장 기술적으로 실력이 되어도 심리적, 정서적으로 완성되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단 것이다. 안 그래도 발렌시아에서 마요르카로 옮기면서 여러 상황들을 경험했고, 마요르카에서도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여러 풍파를 겪었던 이강인이다.


그 와중에 국대를 계속 부르라고? 경기에 내보내라고? 그렇게 했으면 이강인 선수는 혼란스럽고, 힘들고, 방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상황에서는 이강인을 팀에 온전히 적응할 수 있도록 두고 국대에는 부르지 않는 게 이강인을 위하는 일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불러서 쓰지 않은 건 조금 다른 맥락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때는 이미 이강인을 써야 한다는 여론이 폭발하던 시기다. 오랜만에 소집된 선수를 그런 여론에 맞춰서 출전시키면 대표팀의 다른 선수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강인 선수 본인은 그 상황이 어떻게 다가올까? 선수들은 '뭐야, 갑자기 강인이 부르더니 그냥 출전을 시키네'라며 팀워크가 흔들렸을 수 있고, 이강인은 본인에 대한 기대와 분위기에 압살 당했을 수도 있다. 이제 겨우 21살인 선수이기 때문에.


벤투 감독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월드컵 직전까지 K리그 팀들이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들을 경기에서 뛰도록 한 것에 대해서 벤투 감독이 분노한 것에서 우리는 벤투 감독이 선수들을 어떻게 대하는 지를 알 수 있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강인 선수를 호출하지 않은 것도, 출전시키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강인 선수가 뛰었다고 해도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발렌시아에서, 그리고 나와서 마요르카에서도 많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멘털이 이미 훌륭해서 아무렇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혹시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결정은 보수적으로 하는 게 안전하다.


쓰는 선수들만 쓰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가대표팀은 클럽팀과 달리 매일 발을 맞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집이 되었을 때만큼은 국가대표팀에서 소화해야 할 전략과 움직임을 이론이 아니라 실전을 통해서 몸으로 익힐 수 있어야 한다. 그걸 확실하게 반복 숙달하기 위해서는 주전 선수들이 확실하게 그 틀을 잡아야 하고, 그런 틀이 만들어지고 나서 교체 선수들이 그 안에 들어와야 그 틀이 유지될 수 있다. 그 틀이 안정되지도 않았는데 어설프게 당장 조금 못하거나 누가 조금 나아 보인다고 넣어버리면 그 틀이 만들어질 수가 없다. 4년 4개월이 길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소집되는 날짜를 따져보면 조직력을 그렇게 갖추는데 4년 4개월이 사실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팀이 선전할 수 있었고, 이강인 선수와 조규성 선수 등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틀이 어느 정도 이상 수준으로 만들어져 있었던 영향도 크다. 국가대표팀의, 벤투 감독의 최종 목표는 월드컵이었다. 그는 월드컵만 보고 모든 일정과 팀워크를 그에 맞춰서 만들어 왔다. 그 과정에서 지거나 실패하고 실수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월드컵에서 잘하기 위해 다지고, 살피면서 가는 게 더 중요했을 것이다. 2002년 때 히딩크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이미 이런 일을 20년 전에 한 번 경험했다. 히딩크 전 감독은 월드컵 직전까지만 해도 별명이 오대영이었을 정도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월드컵을 앞두고 많은 비판에 시달렸었다. 그걸 경험했기 때문에, 그리고 벤투 감독이 최종예선을 어떻게 이끌었는지를 봤으면, 어차피 감독을 바꿀 명분이 없는 상황이라면 일단 믿고 지켜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본인이 벤투 감독보다 더 전문가인 것처럼 비판하고, 비난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누르고 누르고 눌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은 16강전 이후에 들려오는 얘기들 때문이다. 축구협회 임원 한 사람은 라디오에 나와서 마치 벤투 감독이 고집불통에 말은 하나도 안 듣다가 운으로 16강전에 간 것처럼 말하면서 2+2년을 말하지 않나...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에 '애국심'이 언급 되지를 않나... 축구선수, 그것도 국가대표 출신인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벤투 감독과 가장 직접적으로 접점이 많았던 국가대표 선수들이 벤투 감독을 이렇게나 아끼고 좋아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선수들이 바보인가?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선수들 중에는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있고, 만약 벤투 감독이 정말 고집불통이기만 했다면 선수단에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인 얘기들이 간접적으로라도 나왔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항상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번 국가대표팀은 그런 말이 내부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직접 지도와 훈련을 받는 선수들이 이렇게까지 좋아하고 지지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번 월드컵에서는 두 번째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우리는 왜 매번 월드컵에서 이래야 하냐고 따졌다고 하지 않나?


다음 국가대표팀은 외국인 감독일 수도 있고, 한국인 감독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의 국적이 중요하지는 않다. 그 사람의 축구 철학과 방향성이 벤투 감독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체계를 계승해서 더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은 이런 스타일의 축구를 하는 나라'라는 것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게 검증된 사람이라면, 벤투 감독과 그 스텝들이 남겨놓은 기록들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국가대표팀 감독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언급되는 이름들을 보면... 그걸 계승할 수 있는 한국인 감독은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고,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 감독이 맡으면 벤투 감독이 4년간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공들여 올린 탑이 정말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다. 경기를 직접 뛰는 선수들이 신뢰하고, 좋아하고, 따를 수 있는 감독이 선임되어야 한다. 축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는 기술력만 뛰어나다고 해서 이길 수 없다. 어떤 종목이든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집중할 수 있어야 결과가 나올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독과 선수들 간에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감독이 최소한 벤투 감독이 갖고 있는 축구에 대한 지식과 분석 능력, 사람을 대하는 태도, 유능한 스텝들 정도의 수준은 되는 사람이 감독이 되어야 한다. 선수들은 이미 벤투 감독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감독이 선임되면 선수들은 벤투 감독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고, 훈련과 경기에서 짜증이 나서 실력을 경기에서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다.


그런 선수들에 대한 고려나 배려 없이 '48개국이 본선에 나가서 어차피 월드컵은 나갈 수 있으니까'라는 식으로 말하는 건 선수들을 국가를 위한 도구로 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게 바로 벤투 감독이 비판한 '선수에는 관심이 없고 돈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2+2로 해서 첫 2년이 실패가 되면 그 과정에서 선수들이 받아야 하는 비판과 그들이 능력치가 부족한 감독 밑에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의심하면서 뛰게 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우리 사회는 중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기초를 쌓아서 가장 중요한 지점에 성과를 내기보다는 항상 단기적인 목표와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기초학문은 부실하고, 소위 말하는 실용학문의 영역만 집중을 받는다. 그게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면 기초가 없음으로 인해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고 그 결과 그러한 성과들이 지속 가능하지 못한 경우를 우리는 굉장히 자주 본다. 우리나라가 아직 문화적으로 선진국이 아닌 것은 그러한 기초를 중시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성과도 강조하지만 '기초'를 더 중시한다.


'과정'은 과정일 뿐인데, 과정에서는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할 수 있는데, 아니 과정이니까 실수하고 실패하면서 오답노트를 만들면서 배워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는 그걸 용인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한 번의 실수나 실패는 곧 인생의 실패인 것처럼 말하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너무 많다. 벤투 감독에 대한 비판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가준 벤투 감독에게 고맙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는 축구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축구에서도 그런 지점들이 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클럽과 엘리트 축구의 초점은 학생들의 실력 향상과 성장에 있어야 하는데 부모와 감독, 코치들이 그러한 중장기적인 목표에는 관심이 없고 조급증에 빠져서 당장 경기에서 이기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분위기는 분명 바뀌어야만 한다. 문제는 축구계만 그런 게 아니란 것이다. 빨리빨리만 강조하고 기초와 기본기는 무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축구계 외에 다른 영역에서도 만연해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과정은 과정으로 보고, 기본과 기초를 더 강조하는 문화가 이번 일을 계기로 조금이라도 더 생겼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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