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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Nov 28. 2022

느지막이 코로나에 걸렸다

회의할 때 바로 옆 자리에 앉았던 분이 코로나에 걸려도 나는 음성이 나오길래, 그렇게 코로나가 많이 걸릴 때도 나는 걸리지 않길래 신기해하며 지난 몇 년을 보냈다. 하지만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동거인이 코로나에 걸리니 나도 별 수가 없더라. 동생과 하루 차이로 확진. 동생 확진 걸린 날에 한 PCR에서는 음성이 나왔는데 음성 결과를 아침에 통보받고 저녁에 뭔가 이상해서 간이키트로 하니 양성 판정. 그렇게 7일간의 격리에 들어갔고 내일이 격리 해제일이다. 


많이 약해졌다는데 나는 왜 열이 38도가 넘게 올라가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목이 붓고, 코도 막히더니 어제부터 조금씩 후각과 미각이 무뎌지던지... 그러다 오늘은 결국 향수도, 식초도 코 앞에 대도 냄새가 나지 않고, 소금도 입에 그대로 넣어도 특별히 짜게 느껴지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하루 만에 38도를 지나 열이 내리기 시작해 다행이고, 지금은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이렇게나마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어 다행이다. 


더 심한 몸살을 앓은 경험이 있다. 어렸을 때 40도까지 열이 났을 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지금도 편도에 이상이 있고, 신종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을 때도 몸살 기운으로 따지면 더 오래, 많이 아팠었다. 하지만 그때도 미각과 후각이 상실되지는 않았다 보니 이 충격이 더 크게 다가온다. 빠르면 수 일, 보통은 2-3주, 길면 수개월, 심각한 경우에는 영구적으로 상실된다는데... 이 상실된 감각이 최대한 빨리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코로나 확진자들이 냄새가 맡아지지 않고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접했을 때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다시 돌아오겠지'라고 나이브하게 생각하고 넘어갔던, '훨씬 심각하게 많이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그 정도면 다행이네'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감각을 모두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후각과 미각이 거의 상실된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날이지만 난 치킨을 주문하지 않았다. 맛도, 향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데 굳이 치킨에 돈을 쓸 필요는 없지 않나.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되고, 어느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 위해 이 기록을 남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22년과 23년, 이렇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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