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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pr 22. 2023

브런치에서 계속 쓰기로 했다.

나이가 들었지만 스스로 이십 대에 생각했던 내 모습은 아니다. 서른에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고, 이 나이가 되면 결혼해서 집도, 차도, 아이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한 상태니까. 물론,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갖고 있었을 빚은 한 푼도 없는 게 위안이 될 수도 있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잠시 멈춰 생각하지 않으면 자신이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 않나? 나 역시 그런 인간이다. 


그렇게 내가 갖지 못한 것이 떠오를 때면, 내가 그 대가로 갖게 된 것을 돌아본다. 지난 세월을 한가롭게 놀면서, 백수로 산 것은 아니니까. 내 나름의 기준을 갖고 선택을 해 왔고, 그 대가로 내가 이십 대에 꿈꾸던 것들은 갖지 못했지만 그 대신 갖게 되고 알게 된 것과 보고, 듣고, 느끼게 된 것들이 있으니까. 


보수적인 부모님의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과 성공을 강요받으며 자란 나는 그런 삶을 살았다면 내 것을 챙기진 못했을 것이다. 아내와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서, 남자가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사고를 갖고 열심히 일하며 '내가 너희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라는 말도 하는 사람이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아버지께서 그런 말을 꽤나 자주 하셨는데, 그 아버지의 아들인 나는 아버지가 가셨던 길과 마찬가지로 회사를 다니며 경제적으로 가장이 되었다면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난 그 길을 가지 못한 것 절반, 않은 것 절반의 모습으로 살았고, 그 결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의 삼십 대를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일만 선택한 결과 가난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긴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긴 했다. 마음 한편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지만, 아니 사실 박사학위를 받기 전까지는 그런 불안한 마음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내가 하고 있는 것의 결과물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경주마처럼 시간을 보냈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쫓아서. 박사학위 논문 주제도 교수님들이 '의미는 있지만 쉽지 않을 텐데 괜찮겠니?'라고 걱정하실 때 내 마음대로 정했고, 그렇다 보니 심사를 받는 기간도 길어졌다. 


일이 계속 밀리고 쌓이면서 잠시 브레이크를 걸었다. 할 게 없어서 걱정하던 시절에 비하면 일이 넘치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 일들이 모두 당장의 돈과 직결되지는 않다 보니 불편하고 힘들고 고민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중에 문득, 내게 더 이상 글 쓰는 게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그게 어떤 글이든지 글을 쓰면서, 그것으로 성과를 내고 경제활동을 해내기로 마음먹었다.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브런치에 오기 전에도 페이스북에서 긴 글을 자주 쓰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사람이고, 부족한 글들을 고맙게도 좋게 봐주는 지인들도 항상 있었다. 페이스북에서 글을 길게 쓰면 '왜 그렇게 글을 길게 쓰냐?'라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었고, 읽으라고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넘기면 되지 않냐고 하자 글을 길게 쓰는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올라오면 열어보게 되고 열어보면 또 술술술 읽어진다는 칭찬인지 비판인지 모를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브런치에서 내가 글을 가장 많이, 하루에 2-3개도 썼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한창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던 시기였다. 유흥이나 술, 담배는 즐기지도 않지만 즐길 돈도 없던 시절에 내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운동과 논문과 관련되지 않은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글을 쓰는 일을 하면서 다른 글로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이상한 사람. 그게 나였다. 


그런데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이젠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이젠 돈이나 커리어가 되는 글을 써야 한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작년에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통해 감사하게도 출판계약을 한 이후에는 그게 예의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몇 달간 브런치에서 글을 의도적으로 쓰지 않고 있었다. 


문득, 왜 그랬을까 싶다. 나는 글을 가장 미친 듯이 많이 쓰던 시절에 글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사람인데, 그렇게 글로 스트레스를 푼 덕분에 학위논문을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언젠가부터 글을 통해 뭔가가 되고 싶어 하고 있었다는 것을. 


글 쓰는 건 원래 돈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오죽하면 '글쟁이'라는 말이 있었을까? 음악도, 글도, 미술도 원래는 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200-300년 전의 음악가, 작가나 미술가들은 집이 타고나게 잘 살았거나 가난했는데, 이는 당시에는 음악과 글과 미술을 유통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극소수의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벌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도 대부분 큰돈을 벌지 못한다. 이는 글, 음악과 미술은 우리 삶의 필수품이 아니고 사치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 음악, 글, 미술로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엄연히 말하면 자신의 음악, 글, 미술을 만들기보다는 자신의 기술을 사용하여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 글, 미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음악, 글, 미술은 엄연히 말하면 상품이지 그 사람 개인이 투영된 음악, 글이나 미술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했던 것은 '나의 생각'이 담긴 글이었다. 그건 원래 돈이 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든 돈이 될 수 있게 맞추고 싶어 했고, 그것으로 뭔가를 계산해서 빨리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음악, 글, 미술은 그걸 계산하고 맞춘다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글로벌 히트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해서 그렇게 히트를 쳤나? 아니다. 강남스타일 이후로 싸이가 얼마나 부담을 갖고 메가히트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다음 곡들은 그런 메가히트는 커녕 빌보드 순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그의 음악들에 대해서는 심지어 '빌보드에 들고 싶어서 싸이다움을 잃어버렸다'라는 평가가 이뤄지기도 했다. 


돈을 벌고 유명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음악, 글, 미술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안타깝게도 난 그런 부류는 되지 못한다. 내게 글이 뭐냐는 질문에, 나의 일부를 떼어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답을 한 적이 있고, 실제로 그렇다. 나는 내가 믿지 않는 생각을 글로 쓰지 못하는,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고 잘 읽히기 위해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저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많이 써야 하고, 많이 쓰기 위해서는 또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 브런치는 그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고로, 앞으로 브런치에서 글 쓰는 것을 멈추지 않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로 인해 눈치를 보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가장 구속받지 않고 쓸 수 있는 이 공간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남 의식하지 않고 이 공간에서 꾸준히 쓰겠다. 그래야 살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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