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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y 05. 2023

좋은 글이란 뭘까?

브런치에서 꾸준히, 글이 올라오면 쪼르르 달려가 읽었던 작가님의 책이 최근에 출판되었다. 작가님은 자신의 글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데, 그건 또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의 특징인 것 같다. 내가 봐 온 정말 글 잘 쓰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의 글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는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자신의 글에도 쉽게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게 좋은 글은, 자신을 꾸미지 않은 솔직한 모습이 묻어나는 글이다. 문장력이 탁월한 사람들은 기술자라고 할 수는 있지만 작가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고, 그런 사람들의 글은 한 줄, 한 줄에는 감탄하게 되지만 글을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없고 또 한 없이 감성적인 표현으로 문장과 글을 채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글은 읽으면서도 공허한 느낌이 든다. 알맹이도, 진짜 감정도 없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인 느낌에 브런치에 가장 많은 유형의 글은 자신의 일상을 담은 것인데 개인적으로 그런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글이라기보단 자신의 일기장에 가깝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검토 대상이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정말 좋은 글을 쓰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윗 문단에서 설명한 방식으로 변질되어 간다. 이젠 6년 넘게 브런치에서 글을 읽고 쓰면서 그런 분들을 브런치에서 꽤 많이 봐 왔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되어가는지도 꽤나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지켜봤는데, 그런 분들의 공통점은 초창기 글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뒤에는 책을 내거나 구독자가 늘어나면서 보여주기 위한 글을 많이 쓰기 시작한단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자신을 담아서 글을 쓰던 사람들이 관심을 받자 그 목적이 글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과 책 출판이 되다 보니 글이 망가지기 시작하더라.


그런 분들을 판단하거나, 평가하거나,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도 20대 초중반에 한창 글을 많이 쓸 때 그랬고, 지금도 글을 조금만 쓰다 보면 그런 마음들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20대 초중반에 엄청나게 주목받는 맛에 취해 쓴 글들이 혐오스럽게 느껴져 전부 삭제했다가 그 글이 올라가 있던 커뮤니티 담당자들에게 불려 가기도 했었고 (그 글들 때문에 상금도 받았었기 때문에 커뮤니티 담당자들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렸고, 철이 없어서 한 실수였다), 브런치에서도 지금 발행되어 있는 글들의 2-3배는 되는 양의 글을 발행취소하고 작가의 서랍에만 보관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자의식과잉이거나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글들을 쓸 때가 적지 않다. 그러지 않기 위해 스스로 브레이크를 잡지 않는 이상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변질되어 간다.


그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는 것은, 그 작가님께서 보여오신 패턴에 비춰봤을 때 그렇게 변질되지 않으실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작가님은 본인의 글을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쓰시는 게 느껴지고 본인이 글을 그렇게 쓰지 못하게 되면 글을 쓰지 않으시더라. 그렇게 오랜 공백을 갖게 되면 작가님은 또 구독자들에게 미안해하시는데 그 모습에서 나는 또 좋은 사람을 발견한다. 사실 브런치에 있는 글들은 돈을 내고 읽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해하고 민망해하는 모습에서 '이 분은 글에서 느껴지는 그대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더 응원하게 된다.


난 좋은 사람들이 쓰는 좋은 글이 관심을 받고, 그들이 쓴 글들이 책으로 많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이는 좋은 사람들이 쓰는 좋은 글은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의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게 되며, 그런 행동들은 그 사람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나비효과를 일으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은 점점 찾아보기가 힘들어진다. 자기 PR에 혈안 되고, 자기 브랜딩이란 이름으로 글을 쓰다 보니 본인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자신을 포장하려는 글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정말 자신의 내면의 일부를 도려내서 글이란 형식으로 풀어내는 사람들의 글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졌고, 그래서 그런 분의 글을 만나면 말 그대로 글에 반하게 된다. 글이 눈과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어서.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은데, 사실 머리가 너무 발달해서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글을 쓰는 재주가 부족하다. 친한 동생이 내게 극단적으로 감성적이고 극단적으로 이성적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는 내가 타고난 성향은 F이지만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T가 극단적으로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글을 일로, 그것도 논리를 강조하고 구성을 고민해서 만들어야 하는 글들을 주로 쓰다 보니 글을 쓸 때는 전형적인 T가 되어버려 마음에 닿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 글은 이성적이고 딱딱한 편이지만 그 안에도 어쨌든 다른 방식으로 내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글을 쓰는 사람이면 더 좋겠지만, 머리가 너무 발달되어 있다면 나는 누군가의 이성을 자극하는 글을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사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출판사에서 선정해 주신 책을 쓰면서도 그 과정을 부단히 거치고 있다. 나는 사실 내가 법학박사학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렇게 인위적으로 뭔가를 감추려다 보니 글도 엉망이 되고 여기저기서 횡설수설하고 앉아있더라. 절반 정도 썼던 초고에 대한 편집자님의 피드백을 종합해 보면 그게 글에서 그대로 드러났고, 편집자님은 내가 조금 더 법학박사의 입장에서 글을 썼으면 하시는 듯해서 그 글들을 전부 폐기하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니 내가 도대체 이 글을 왜 대중서로 쓰고 있는지, 그 목적이 혼란스러워지더라. 그래서 2주간 글을 놓고 있었고, 방향성이 잡힌 후에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진도가 안 빠졌고, 그 와중에 다른 일들이 엄청 밀려들어오면서 원고가 또 밀리고, 그 과정에서 문득 [이 글이 책으로 출판되어 나갈 가치가 있나?]라는 회의가 들었다. 그 고민 속에서 일주일을 또 방황하다 결국은 목차를 늘리기로 했다. 내가 '돈의 원리'란 시리즈를 쓸 때 정말 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도록.


이젠 진짜 미룰 수 없는 데드라인을 받았고, 아직 수정된 초고는 절반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만족스럽다. 이젠 정말 이 안에 나를, 내 생각과 마음을 차갑게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지난 몇 달간 힘들고 방황했던 것은 그게 안 되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무 머리가 앞서고, 너무 뭔가를 보여주거나 숨기려고 하는 나 자신이 느껴지다 보니 그게 짜증 나서.


그런 글을, 솔직하게 나 자신을 담아낸 글만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20년 넘게 여기저기서 글을 써온 입장에서 그건 힘들 것이란 걸 안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계속 검열하고 경계하면서 글을 쓰고, 그 뒤에는 반드시 글을 돌아보는 방법 밖에 없다. 글로 먹고 산다는 게 이런 의미고, 좋은 글이 아니라 내가 폐기하고 싶지는 않은 글을 쓰는 게 이렇게 많은 힘과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 줄 알았다면 글로 먹고살아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다른 길로 가기엔 너무 멀리 오기도 했고,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임을 알기에 또다시 글을 잡는다. 이번 연휴도. 프리랜서에게 연휴가 어디 있나.


아, 그리고 이 글에서 내가 계속 언급한 작가님의 책은 이 링크(클릭)에서 예약구매가 가능하다. 그리고 작가님 브런치는 여기(링크) . 좋은 사람들의 글이 많이 읽혔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쓴다. 내 브런치의 조회수 전성기(?) 때에 비하면 조회수가 1/10 이상 줄어 큰 도움이 되진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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