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에는 답이 있다. 13편
부모님께 듣지 않아도 되는, 아니 어쩌면 자녀라면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적지 않게 들으며 자랐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그렇게 무섭지 않은 놀이기구를 못 타서 그 앞에서 크게 혼난 것이고, 가장 오랫동안 들었던 말은 내가 유별나고 나의 부모로 사는 게 힘들단 얘기다. 어머니는 성경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구절을 들으면서 나를 코너로 모셨지만, 내가 그 바로 뒤에 네 자녀를 노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냐는 건 아냐고 묻자 그 뒤로는 그 구절을 인용하지 않으신다.
돈을 잘 벌고, 잘 나갔다면 부딪힐 일이 덜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30대는 실패로 가득 찼다. 또래들 중에 가장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다 대학원에 갔는데 그 뒤로 중요한 시험에 계속 떨어졌고, 그러다 보니 회사와 대학원 동기들은 모두 억대 연봉을 찍을 때 나는 방구석에서 찌그러져 갔다. 누가 봐도 내가 제일 힘든 상황이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24시간, 365일을 나와 붙어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지금도 가슴속에 비수처럼 꽂혀 있는 말들을 가족으로부터 들어야 했다.
방에서 공부는 하는 거냐는 얘기에서부터 정신병원에 가 보라거나 나 때문에 지인들에게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듣겠단 말까지, 레퍼토리는 다양했다. 그 뒤에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프리랜서로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2년 정도 수입금액이 매우 적은 편이었는데, 그때도 나는 '이 모든 게 투자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질 거고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 괜찮다'라고 했었다. 그에 대해 어머니는 내가 행복할 수가 없다고, 행복해선 안된다고 하셨다. 그 나이 먹었으면 부모를 봉양하고 돈을 줄 생각을 해야 한다고.
작년에는 그나마 조금씩 일이 잡히고 수입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올라왔고, 올해도 비슷한 흐름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당연히 모아놓은 돈은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께서 서울로 다시 올라오시겠다고 했고, 나는 그러면 독립하겠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부모님께서 집을 뒤집고 정리하실 줄 모르고 있었는데, 나는 밤을 새우고 들어와 피곤한 상태에서 쓰레기 더미가 마루를 채우고 있는 현장과 마주했다. 당혹스러웠지만 부모님 소유의 집이니 그렇다고 치자고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피곤에 찌들어 있는 내게 아버지께서 구석에 있던 내 짐 중에 남길 거랑 버릴 거를 구분하라고 하시더라.
나는 이미 독립하겠다고, 나가겠다고 한 상황이었다. 부모님 소유의 집이고, 부모님 물건들을 정리한 것이긴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한 마디 언질도 없이 어쨌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뒤집고, 그다음 날 아침에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내가 뭘 남기고 뭘 가져갈지를 분리해 내라고 하시니 쫓겨나는 느낌이 나더라. 내가 말을 퉁명스럽게 했고,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고 집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게 '그 나이 먹고 부모 집에 얹혀사는 주제에 말을 함부로 한다'라고 하시더라.
부모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20대까지 어떤 기준에서든 잘 나가는 아들이었고, 주위에 자랑하기 좋은 아들이었는데 그 아들이 결혼도 못하고 10년 넘게 헤매고 있어 보이니까 여러 마음이 들 수는 있다. 그런데 본인 일은 본인이 가장 힘들다. 나라고 실패하고 싶어서 실패를 했을까. 난 시중에서 파는 신경안정제를 사 먹다가 그게 잘 안 들어서, 정신과 의사인 친구에게 부탁해서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약의 이름을 듣고 가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은 뒤에 그 약으로 처방을 받을 정도로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준비를 했다. 그런 나를 개인으로 존중했다면 부모님께서 내게 수험생으로 있던 기간에 하신 말들은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두 분이 내게 하신 말들이 어떤 맥락에서 왜 나왔는지도 알고, 두 분이 살아온 세대의 특성상 자녀를 인격적으로, 독립된 존재로 존중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두 분도 그런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사회에서 사셨고, 그런 사회의 피해자임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내게 상흔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두 분이 최소한 내게 입힌 상처, 자녀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신 후엔 미안하다는 말은 하시는 게 맞지 않을까?
성장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미국인 학교에 다니며 미국적인 사고방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사과를 하지 못하시는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인은 모두 개인으로 존재하고, 그 영역도 개별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며, 그 이유가 어쨌든 간에 상대에게 상처를 남겼다면 미안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내게 돌아온 얘기는 '미안하단 말은 나도 듣고 싶어'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아버지한테 어떻게 한 번도 미안하단 말을 못 하냐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입에서 나온 말이다.
죄송하다는 말, 어렸을 때부터 많이 했다. 하지만 어떤 일도 내가 죄송하단 말을 하는 것으로 정리된 적이 없었다. 내게 항상 돌아온 말은 "너는 말로만 죄송하다고 하지?"였다. 죄송하다고 하면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내게 어차피 화살이 돌아오는 것을 나는 평생,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그런 내게, 그리고 나의 상황으로 인해 본인들이 힘들다고 해서 내게 하신 말에 대해 내가 분노했다고 내가 사과를 해야 한다면, 그건 결국 이 모든 게 내 잘못과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럴 수는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굳이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그걸 아냐'라고 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그 나이 먹고 부모 집에서 사는 게 뭐 자랑이라고 말을 그런 식으로 하냐는 얘기를 내게 하신 걸 기억도 못하셨고, 내가 그 얘기를 어머니께 했을 때 어머니의 반응은 '내가 실수했네'였다. 그런데 미안하다고 말을 하는 것과 내가 실수를 했다는 얘기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내가 실수를 했다는 건 나의 선에서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말이다. 반면해 미안하다는 말은 상대에게 내가 잘못했고, 자신이 상대를 다치고 아프게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이다. 전자는 고고하게 평가하고 판단하는 말인 반면 후자는 나를 낮추고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실수했네'라는 말은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반면, 미안하다는 말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게 작아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는 큰 차이가 있지 않은가?
연인관계에서 '뭐가 미안한데?'라는 질문은 사실 진짜로 구체적으로 미안한 내용을 듣고 싶단 의미가 아니다. 그 질문은 상대가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나오게 되는 말이다. 만약 상대가 말하는 표정, 말투, 뉘앙스에서 진심으로 미안한 모습이 느껴진다면, 화가 쉽게 풀리지 않더라도 '뭐가 미안한데?'라는 질문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형식적으로, 이 상황을 무마하고 넘어가기 위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같을 때는 상대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뭐가 미안한데?'라고 묻게 된다.
그렇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하거나 기대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건 어떤 형태로든 관계에 금이 갔고, 한 쪽은 마음이 상햇단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 사람은 절대로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애매하게 '내가 실수를 했네' 정도의 말을 한다는 건 결국 그 상황이 상대 탓이란 뜻이다.
무슨 말이냐고? 둘 사이에 갈등이 있는데, 한 사람은 자신은 그 갈등의 원인은 아니고 실수를 했을 뿐이라는 건 결국 상대에게 '너가 그걸 너무 크게 받아들이고 있는거야'라는 의미이던지 '내가 너한테 그런 의미로 한 건 아니니까 니가 알아서 받아들여'라거나 선해하더라도 '내가 실수 하긴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정도의 의미일 수밖에 없지 않나? 미안하단 말은 하지 않고 실수했다는 말만 하는 건 결국 이 세 가지 말 중 하나를 상대에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 건, 그 상황으로 100% 상대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이처럼 많은, 큰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한 마디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냐고?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 '겨우' 한 마디도 상대에게 잘 못하는 걸까? 그게 '겨우' 한 마디가 아니란 것을 그들도 알고, 그 말 한마디를 하는 것이 자신을 상대에게 낮추게 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결국 그 한 마디를 하고 싶지 않은 건 상대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상대보다 높은 위치에 있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말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위계가 중요한 게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인가? 그런데 그런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많이, 자주 일어난다. 말 한마디일 뿐이다. 그리고 그 한 마디가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면, 그 정도 투자는 충분히 해도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