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에는 답이 있다. 10편
프리랜서로 일할 때의 가장 큰 어려움은 내 몸값을 정하는 것이다. 그나마 정부의 연구용역과제들의 경우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와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비용을 산정하면 되는데,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내가 받을 비용을 정하는 건 꽤나 어렵고 귀찮은 일이다.
그중에 나의 나이브한 결정으로 인해 지금도 후회를 하는 계약이 있다. 지금도 후회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계약이 지금도 유효하게 돌아가고 있고, 나는 그 계약을 기반으로 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업계에선 모든 사람들의 연봉이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 때 조금씩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 작품을 했다는 건 그만큼 경험이 쌓였단 의미고, 그렇다면 그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이뤄져야 하니까. 나 역시 그랬다. 지금 들어가 있는 작품 이전까진 그랬다.
다른 사람 탓을 할 수 없다. 얼마를 받으면 되겠냐고 물어보길래 "지난번 작품에서 000만 원을 받았으니까 그 정도만 유지되어도 돼요."라고 답한 내 탓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항상 스토리 자문과 보조작가 사이 어딘가의 애매한 포지션으로 일하다 보니 다른 보조작가들과는 달리 출퇴근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제작사들이 나를 쓰는 걸 처음에는 달가워한 적이 없다. 나처럼 일하는 사람이 업계에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나는 계약을 할 때마다 눈치를 봤고, 위축되어서 주는 대로 받아왔었다.
운이 매우, 매우 좋은 편이었다. 그렇게 하면 제작사에서 알아서 조금씩 월급여를 올려줬으니까. 지난 작품 이후에 두 작품에 동시에 투입이 되어 있을 때도 있었는데 3개월 계약으로 들어간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내가 이전 작품에서 받았던 돈에서 월 50만 원을 더한 조건으로 계약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도 들어가 있는 이 작품은 지난번 작품과 같은 비용을 받고 있다. 계약서를 쓰기 전에 아무래도 단 얼마라도 더 받는 게 심적으로 편할 듯해서 작가님께 다시 비용 얘기를 해줄 수 없냐고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이미 얘기가 됐고 내가 출퇴근을 안 해서 제작사에서 더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단 것이었다.
더 받아봤자 월 20-30만 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20-30만 원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그 이상임을 비용이 지급될 때마다 느낀다. 만약 20-30만 원을 올려 받았다면, 출퇴근도 안 하는데 이렇게 고정적으로 비용이 지급되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있었을 텐데 작년과 같은 비용을 받는다는 걸 매월 입금되는 금액에서 확인할 때마다 짜증이 슬며시 기어오른다. 누구 탓을 하겠나. 내가 꺼낸 말인데.
나만 이런 게 어려운 게 아니다. 프리랜서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몸값을 책정하기를 어려워한다. 정해진 비용이 없고, 몸값을 너무 높게 부르면 프로젝트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하게 되는 결정이다. 이는 대행사를 비롯해 업계 자체가 '을'적인 성격을 갖는 경우에 대부분 그렇다.
물론, 초기에는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 일단 경력과 이력을 만들어야 하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 경력과 이력을 갖췄다면 공적인 관계에선 본인의 요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가 조건을 맞춰주지 못하겠다지만 당신과 일하고 싶다면 그에 대한 역제안이 어차피 들어올 테니까.
꼭 프리랜서가 아니더라도 공적인 영역에서는 계산을 하고, 그에 대한 요구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거기에서 "계산"은 제대로 되어야 한다. '나는 주 40시간 일하기로 했으니 이번주 일은 다했다'라며 퇴근을 해버리는 건 잘못된 계산법이다. 주 40시간은 보통 숙련된, 1인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에 대한 계산법이고 조직의 운영에 문제가 없는 범위 내에서의 계산법이다. 그런데 경력이 적어도 3년이 쌓이기 전에는 온전히 1인분만큼의 일을 해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본인은 스스로가 그러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ㅗ면 그게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근로계약은 회사가 노동을 착취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지 그만큼만 일해도 된단 의미가 아니다. 계약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과도하지 않은 수준에서는 40시간 이상 일하는 게 계약상으로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단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경력과 이력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돈이 아닌 다른 계산법이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한지 얼마 안 됐을 때 버는 돈은 금액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금액을 빠른 시간 안에 빨리 올리고 싶다면, 그만큼의 실력, 경력과 이력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주 40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업무방식으로는 실력, 경력과 이력을 빠른 시간 안에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실력, 경력과 이력을 잘, 빨리 쌓고자 하는 욕구와 욕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체력과 머리가 허락할 때 열심히 일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남는 투자다.
이처럼 계산법이 명확한 영역은 크게 어려울 일이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영역들은 현실에서 존재한다. 회사 선후배로 만났지만 사적으로 가까워진 경우가 그럴 수 있다. 나의 경우에도 그런 관계가 있고, 그 관계에서 나는 계산을 하지 않는다. 앞의 글에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그런데 그런 관계에선 오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최근에 책이 출판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나는 학부시절에 가깝게 지냈던 교수님들이 있었고, 그분들께는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도 인쇄된 논문을 갖고 찾아뵈었었다. 자주 연락을 드리고 싶지만 자리를 잡거나 안정된 게 아니라 4년 반 동안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오랜만에 연락을 드리고 찾아뵈었다. 그런데 한 분은 이메일 회신도, 문자에 답도 없으셨다.
확인을 못하셨을 일은 없지만 바쁘셔서 잊어버리시거나 회신을 못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혹시라도 내 의도가 순수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자리를 잡진 못하고 있기에 혹시라도 관계를 이어서 어떻게든 자리를 부탁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됐을 수도 있을만한 행동이었으니까.
그런 의도는 없었다. 학계에서는 많은 일들이 정치와 관계로 이뤄지긴 하지만 4년 반 만에 연락하는 관계에서 그런 부탁을 하는 게 먹힐 리도 없고, 내 성격상 그런 말을 할 생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더 연락을 해보지는 않았다. 그런 오해가 만약 있다면 그건 시간이 지나서 풀 문제고, 오해가 없으시다면 내가 계속 연락하는 게 그런 오해를 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공존하는 지점들이 가장 어렵다. 그런데 그런 관계에서는 계산을 철저히 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계산'이란 내가 상대에게 받고 싶은 게 있다면, 나도 뭔가를 줄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을 빌미로 공적인 영역에서 상대가 손해를 보고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을 주기를 바라곤 하는데, 그런 바람은 관계를 망칠 수밖에 없다.
사적인 관계를 넘어 공적인 관계도 형성되는 범위 안에서는 사적인 관계보다 공적인 요소들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는 어지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은 사적인 관계보다 자신의 이익이 우선일 수밖에 없고,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항상 계산을 돌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하고 사적인 관계를 빌미로 공적인 요구를 하는 것은 상대와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관계가 가미된 관계에서는 상호 간의 계산을 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사적인 관계도 유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