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남기지 않는 상처는 없다

모든 관계에는 답이 있다. 11편

by Simon de Cyrene

내가 상처덩어리인 줄 몰랐다가 내 마음의 상처들을 처음 발견했을 때였다. 피투성이가 되다 못해 썩어있는 내 마음을 마주하자 나는 처음 총을 맞았거나 칼로 팔이 잘려나간 사람처럼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주위를 탓하기 시작했다. 성숙한 반응은 분명 아니었고, 당시에는 부모님도 사실은 가해지임과 동시에 피해자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난 분명히 부모님께도 상처를 드렸고, 그래서 그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난 뒤에 사과를 했었다. 두 분이 그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동생이 내게 그랬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거냐고, 왜 애처럼 그러면서 집을 다 뒤집어 놓고 부모님을 힘들게 하냐고. 나도 그럴 수 있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현실에 짓눌리고 압박을 받다 보니 그럴 수 있는 힘이 없기도 했고, 이 상처를 해결하지 않고 가면 내가 살아가는데 지장이 있을게 분명했다.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면 아프고, 상처가 아무는데 시간이 걸리듯이 마음의 상처도 치료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에 바를 수 있는 약은 결국 사람에게서 받는 사랑과 따뜻한 말 밖에 없다. 내겐 그게 필요했다.


그렇다면 내 동생은 전혀 상처가 없고 괜찮았을까? 아니다. 물론, 내 동생은 나만큼 예민하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넘길 건 넘기는 편이라서 나보단 상처를 덜 깊게, 덜 많이 받았다. 그리고 대부분 부모님이 그렇듯, 우리 부모님도 동생보단 내게 더 엄격했기 때문에 동생이 상처를 덜 받은 면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반대로 동생은 내가 20대 때까지 틀에 박히고, 부모님이 시키고 하라는 건 투덜대고 짜증 내면서도 과도할 정도로 잘 지켰던 것으로 인해 (남자 대학생이 차 끊기기 전에는 반드시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으면 할 말 다한 게 아닐지...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비교를 당하면서 상처를 받은 부분들도 있었기 때문에 동생의 성장과정에서도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동생은 내게 받은 상처가 컸다. 부모님은 나를 대하듯 동생을 대하지 않았지만, 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나는 부모님이 나를 대하듯 내 동생을 대했고 동생은 그로 인해 나를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보수적이고 엄격한 편이었다 보니 동생에게 물리적으로도, 말로도 상처를 많이 줬다. 성인이 된 이후 나는 그에 대해서 사과를 몇 번이나 했지만 동생과 나의 관계는 엄청나게 친밀하진 않다. 나는 내가 줬던 상처 때문에 조심스럽고, 동생은 한 번도 편한 적 없었던 내게 다가오는 게 불편해하는 걸 느낀다. 나도 어렸고, 미숙했지만 이 관계에서의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그리고 내게 그렇게 말한 동생도 부모님께 받은 상처가 없었던 건 아니다. 동생은 나이를 더 먹고, 여러 상황을 지나면서 (나보다는 그 강도와 빈도가 훨씬 덜했지만) 내가 부모님께 언성을 높였던 것 같은 패턴을 그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동생은 회피하고 있었지만, 동생 안에도 어떤 이유에서든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그냥 괜찮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조금 더 둔해서 지금 느끼지 못하거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상처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다. 조금 둔한 사람들의 경우 그 당시에는 상처를 느끼지 못하지만 상처가 축적되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상처가 곪으면서 아파오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는 마음도, 체력도 상처를 버틸 힘이 있지만 생물학적으로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를 감당할 힘이 약해지고 그 과정에서 상처가 터지고 만다.


20-40대에 어른인 척 힘을 주고 살다가 50대가 넘어서 어린애 같이 작은 것에도 삐지고, 섭섭해하고, 짜증 내고, 화를 내는 것도 사실은 그 사람이 겉으로는 자랐을지 몰라도 내면은 성숙하지 못한 상태로 그 안에 상처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애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 나이가 들수록 애가 되는 어른들도 있지만, 더 성숙하고 멋있으면서 든든한 어른들도 있다. 그 두 사람은 성장과정에서 얼마나 마음이 성장했고, 상처들을 잘 봉합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상처를 준 사람이 사과하고, 그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으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상처가 꼭 상처를 준 사람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 내게 상처를 줬어도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고, 너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위로를 해주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면 상처는 조금씩,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 이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도 주지만, 그 상처를 결국 치료해 줄 수 있는 것도 사람뿐이다. 우리가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건 이런 인간의 특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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