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에는 정답이 있다. 4편
아버지와 많이 가깝지 않다. 아버지와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 아니고, 대화가 잘 통하지도 않는다. 아버지는 나를 안다고 생각하시지만 아버지께서 나에 대해 입만 여시면 아버지께서 나를 얼마나 모르시는지만 티가 난다.
나만 그럴까? 아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의 상당수는 아버지와 그런 관계를 안고 살아간다. 사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그런 부자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왜 그럴까? 왜 유독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와 딸 보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 그런 관계가 많을까?
과거 때문이다. 남녀가 과거에 비해 많이 평등해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대부분 국가들에서 가정에서 남자의 기본적인 역할은 돈을 버는 것이다. 남녀가 정말로 평등하다면 여자가 돈을 벌고 남자가 가정주부가 되어도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희한하게도 대부분 사회에서 남자들은 여전히 bread winner가 될 것이 요구된다. 여자들이 돈을 버는 경우도 많지만, 그런 경우는 대부분이 맞벌이를 하지 여자만 돈을 벌진 않는다. 남녀가 평등하다면서 돈을 버는 여자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은 본인보다 연봉이 높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도, 남자들도 본인보다 돈을 잘 버는 여자를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여튼, 그 문제를 변론으로 하더라도 분명한 건 이러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대부분 사회에서 남자들은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 최소한 돈을 벌기 위해 나가 있는 동안에는 아이들과 보지도, 연락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반면에 많은 경우 여자들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길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그 얘기는 곧 아내가 독박육아를 한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에 그게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건 피하거나 외면하기 힘든 사실이다. 주말에 거리에만 나가도 아이 손을 잡고 있는 어머니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아버지의 손을 잡은 아이들은 그보다 훨씬 드물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여준다.
지금 당장은 아이를 보지 않는 게 더 편하고 좋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이를 보지 않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 거리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 부모가 나빠서도, 아이가 상처를 받아서도 아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부모는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부모에게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엄연히 편집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 대해 선생님, 할아버지나 파트너에게 아무리 많은 얘기를 들어도 시간을 함께 오래 보내지 않은 사람은 아이에 대해 절대로 잘 알 수 없다. 그 아이가 어떤 마음이나 상태일 때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와 같은 작은 디테일들은 절대로 말로만 들어서 알 수 없다.
여기에 더해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아이에 대한 마음이 시간을 함께 많이 보낸 사람들만큼 클 수는 없다. 본인은 아이를 엄청나게 사랑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랑은 상대적으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낸 사람이 느끼는 사랑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둘 사이에 쌓인 경험과 추억이 없기 때문에. 연인이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데이트와 대화를 하지 않으면 사랑이 얕아지는 것처럼 아무리 본인의 혈육이라고 해도 함께 한 시간과 경험이 많지 않으면 그 마음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질 수 없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은 부모가 아이가 큰 뒤에 친하게 지낼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는 아들들과 대화를 할 줄 모르고, 정말 중요한 이야기가 있을 때는 마치 회사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말하듯이 이메일을 정리해서 쓰신다. 충실한 회사원으로, 대기업에서 정년퇴직까지 하신 아버지는 그 패턴이 익숙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들과 시간을 오래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줄 모르실 뿐이다. 그게 아버지의 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가 아들들을 회사 부하직원처럼 대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아버지께서 그러실 수밖에 없는 건 이해한다. 아버지는 항상 회사에 계셨고, 열심히 일하셨기 때문에. 사실 내가 그에 대해 불평하기 힘든 것은 나도 그 덕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도 그때 그렇게 하신 선택이, 가족보다 회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결과가 그렇게 친밀하진 않은 부자관계라는 것도 받아들이셔야 한다. 그게 아버지의 잘못은 아니지만, 현실은 그럴 수밖에 없단 것을.
이렇게까지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건 자녀의 입장에서 상황은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나마 머리로라도, 회사에서 힘든 순간을 버티면서라도 아이들을 떠올리고 기억했을 것이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가족사진을 보고, 퇴근 후에는 잠든 아내와 아들들을 보면서 일해야 할 이유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녀들은 다르다. 자녀들은 현실을 알 수가 없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가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일하시는 지를 자녀들은 알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오로지 본인과 함께 시간을 보낸 아버지의 모습들 뿐이다. 심지어 그런 시간 중 아주 어린 시절의 일들은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하필이면 아이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시절은 보통 다섯 살 이후의 일들이고, 그 시기는 아이들이 실수하고 말썽을 부리기 시작할 나이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평일에 잘 보지도 못하고, 놀아주지도 않았으며, 말을 잘 들어주지도 않는다면 당신은 그 사람과 10년 후에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가 하루아침에 친밀하고 가까워지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함께 보낸 시간들만 기억에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좋은 기억이 많지 않다면, 자녀들은 부모가 어색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돈을 벌고 나서 나중에 다 괜찮아지겠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제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오늘 친할 수 없고, 오늘을 함께 하지 않은 사람이 미래에 가깝기는 힘들다.
'내가 가족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라고 말한다면,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정말 '희생'이었는지를 묻고 싶다. 가족이 열심히 일한 bread winner의 덕을 본 것은 맞다. 그런데 가족이 없었다면 본인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됐을까? '희생'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오롯이 상대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타고난 금수저가 아니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한 것이 아니라 일할 유인을 준 가족들 덕분에 본인도 돈을 벌었을지도 모른다.
설사 돈을 버는 게 희생이라고 해도 그게 가족들에게 '이제 나를 편하게 대하고 잘 어울려야 한다'라고 말할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아무리 혈육이라고 해도 함께 축적한 경험과 감정이 많지 않으면 두 사람은 서로를 낯설어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서로를 경험적으로도, 지식적으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말은 가족을 비롯한 모든 관계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오늘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은 사람들은 내일도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오늘을 함께 보내지 않아도 내일은 함께 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건 경험하지 않은 것도 아는 척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래에 좋은 관계였으면 좋겠다면, 지금부터 좋은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망가진 관계에는 과거에 그 이유가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