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존중이 더 필요하다

모든 관계에는 정답이 있다. 5편

by Simon de Cyrene

심적으로 힘든 하루를 보냈다. 동생의 결혼과 부모님의 노후 준비가 겹치면서 동생과 둘이 살던 부모님 집에서 나가야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날 힘들게 하진 않았다. 그 집은 부모님께서 돈을 벌고 모아서 사신 것이고, 그렇다면 두 분이 그 집을 갖고 알아서 하시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에서 내 몫을 찾을 생각은 전혀 없다.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머리로는 연애, 사랑, 결혼 전문가인 내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려 또는 걱정이 되는 면이 없진 않지만 본인 인생이니 알아서 하지 않을까? 동생이라도 먼저 결혼을 해서 부모님께 손자, 손녀를 안겨드려서 그 짐을 내 어깨에서 덜어줬으면 하는 게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과정이 문제였다. 우선 부모님은 나와 동생이 부모님 명의의 집에 사는 것에 대해 종종 '그 나이 먹고 부모 집에 사는 게...'라면서 나를 종종 찌르셨는데, 이번 과정에선 개인적으로 존중받지 못한단 느낌을 받아서 힘들었다.


나의 현재와 미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문제인 만큼 나는 부모님이 답을 정해놓고 통보하는 게 아니라 '한 번 생각하고 고민해 봐'라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그러셨듯 회사일처럼 선택지 세 가지를 놓고 '이 중에 너희가 선택해'라고 하셨고, 여러 상황들로 인해 부모님께서 서울로 복귀하시기로 하시자 어떤 예고도 없이 서울 집을 정리하기 시작하셨다.


12월 초에 올라오실 것이라면서 이렇게 빨리 정리를 시작해야 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앞으로 이때 이렇게 정리해서 이렇게 할까 하는데 너희는 어떠니?'라고 의견은 물어보시는 게 '존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밤을 지새우며 보고서를 쓰고 들어간 집은 이미 이사를 시작한 듯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추석 때는 너희랑 집 정리할 거니까'라니... 난 그다음 주에 제출해야 하는 급한 보고서가 있는데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거기에 아침에 지친 몸을 끌고 일어났는데 오전 10시부터 한 상자를 놓고 거기에서 내가 버릴 것과 남길 걸 고르라니... 난 아직 내가 독립해서 나갈 때 어떤 짐을 얼마큼 가져갈지를 고민할 마음의 준비도 안되어 있는데, 아니 나는 당장 다음 주까지 마무리해야 할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이렇게 아버지 페이스대로 밀어붙이는 건 존중이 부족한 것이라고 느꼈다.


머리로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몇 달 전부터 서울로 복귀하시고 싶어 하셨고, 그럴 수 있게 되시자 신이 나 있으셨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는 짐을 빨리, 빨리 싸셨다. 자식들이 어떤 마음과 상태인지는 그 과정에 고려대상이 아닌 느낌이었다. 정말 급한 일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분은 12월 초에 올라오신다면서 이렇게 짐을 싸니 나는 마치 집에서 쫓겨나기를 종용받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의 행동이 잘못되었거나 이상한 게 아니다. 내 마음에 대한 고려와 배려 없음에 대한 섭섭함 올라오는 것을 넘어서 솔직히 화도 났다.


회사 상사가 이렇게 일을 했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 상사는 상사일 따름임이고,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면 되니까. 그리고 상사가 밀어붙이는 건 '일'일 테니까. 하지만 이건 나의 '생활'의 영역에 대한 것이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내 미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존중을 받고 싶기도 했고, 존중이 필요하기도 했다.


부모님의 마음은 어떨까? 부모님은 또 '자녀이기 때문에, 가족의 일이니까 그냥 좀 따라서 했으면'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추석에도 본인 일 때문에 손을 보태지 못하겠다고 하고, 전반적으로 퉁명하고 순응적이지 않은 것을 넘어서 짜증이 행동, 표정과 말에 배어 있으니 부모님은 또 '가족이고, 자식이란 게...'라고 생각을 하셨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 또한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가족이기 때문에' 배려를 하고, 맞춰줄 것을 기대한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가족 구성원이 자신에게 맞춰주기만을 기대한다는데 있다. 사회에서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섭섭하거나 화가 나지 않을 일도 가족이기 때문에 섭섭하고 화가 나게 된다. 부모님은 '자식이라는 게...'라는 말을 하고, 자녀는 '부모님이라면...'이라고 생각한다. 적지 않은 가족은 그 과정에서 망가지고, 심한 경우에는 무너지기도 한다. 서로 받고, 상대가 무조건 본인에게 맞춰주기만을 기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누가 맞추고 낮추기 시작해야 할까? 위계가 있는 모든 관계에서 나는 시작은 '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밑에 있는 사람들은 어쨌든, 어떤 형태로든,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말을 듣는 게 디폴트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막 나가는 사람이어도 우리나라의 문화상 그게 보통은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태로든 반응을 보인다는 건, 그 사람이 힘들고 불편하다는 표시다. 그런데 '윗사람'은 언제든지 힘들고 불편하단 표시를 할 수 있지만,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들어주고 배려하지 않는 이상 힘들고 불편한 것을 표현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경험과 생각이 더 많은 '어른'이라면, 나이만 먹은 게 아니라 진짜 어른이라면 더 어린 사람의 말을 당연히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 그 시기와 나이를 거쳤다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경험이 그만큼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위계질서로 본인이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권위를 세우려 하기보다, 손을 내밀고 들어주는 게 먼저가 아닐까? 그게 진짜 '어른'의 모습일 것이고, 여러 문화권에서 말하는 '어른 공경'은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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