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이 아니다

모든 관계에는 정답이 있다. 3편

by Simon de Cyrene

동생을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부모님은 미안해하신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옆에서 보는 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동생이 실수나 실언을, 아니 잘못을 해도 두 분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하시는 게 보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평생 처음으로 사과를 하셨다. 그런데 그게 돈에 대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돈을 잘 못 벌어서, 돈을 잘 못 모아서, 재테크를 잘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미안하실 일이 아니라고 했고, 진심이었다. 아버지께선 항상 돈에 대해서만큼은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안하실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500만 원을 가져가서 주식으로 날리신 것도 미안하실 일이 아니었다. 가족인데, 내가 더 알아보지 않고 맡긴 건데 그게 왜 아버지 탓인가?


아버지의 사과는 핀트가 조금 맞지 않았다. 500만 원에 대해서 아버지께서 내게 잘못하신 건, 그 돈을 날렸단 사실도 내게 말해주지 않으셨고 그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선 여전히 그 일을 콕 짚어서 사과는 안 하셨지만, 아버지께서 뭔가에 대해서 사과해 주신 것으로 충분했다. 그걸로 됐다. 아버지에 대해서 완전히 굳어있던 마음이, 그 일을 계기로 조금은 녹았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조금 더 일찍 풀렸다. 어머니께선 더 일찍 미안하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겨우 8살 때 다 큰 줄 알고 그 기준으로 날 혼내신 것도, 칭찬이나 따뜻한 말을 거의 안 하신 것도, 어머니는 진작에 사과를 하셨다. 그 뒤로도 여러 일로 부딪히고 언성이 높아졌지만, 어머니께 남은 마음의 앙금은 어머니의 사과로 없어졌다.


두 분이 칭찬도, 사과도 못하시는 것도 두 분 탓이 아니란 걸 안다. 내 상처가 터질 때도 알고 있었다. 두 분은 양가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셨고, 양가 모두 여유 있게 살다 가족의 사업으로 갑자기 가난해지셨으니 두 분의 어깨에 얼마나 많은 짐이 있었겠나? 두 분은 항상 잘해야 하셨고, 두 분은 칭찬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질 않으셨다. 두 분이 칭찬을 하지 않으신 건 칭찬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고, 두 분이 항상 채찍질만 하셨던 건 두 분이 스스로에게 그러면서 성장하셨기 때문이었다. 두 분은 경험하지 않은 것을 할 줄 모르셨을 뿐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답답해졌다. 내가 받은 상처는 있는데, 이게 누구 탓도 아니라니 이 얼마나 억울한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니, 아니 그 가해자도 피해자라니 그렇다면 나는 누구 탓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방황하는 과정에서 주위를 살폈다. 나만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게 아니더라.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칭찬하지 않고, 채찍질만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더라. 심지어 칭찬을 하면 나약해지고, 강하게 키워야 성장한다고도 하지 않나?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근거 없는 칭찬은 사람을 망칠 수 있고 적절한 채찍질은 자극제가 되지만, 근거 있는 칭찬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과도한 채찍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


아버지께서 해주지 못하신 게 있다면, 그건 돈도 경험도 아니다. 아버지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본인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주셨다. 그리고 나도 그 덕을 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건 사랑, 또는 마음이다.


오해하지 말자. 아버지는 아버지께서 아시는 최선의 사랑을 해주셨다. 아버지의 기준에서 사랑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서, 돈을 잘 벌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겐 그게 항상 가장 중요했고, 아버지는 본인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을 아들에게 주려고 하셨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셨다.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내가 프리랜서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그 덕분이다. 그런데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그렇게 아이를 키우는 건 기름은 넣지 않고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서 그 아이에게 주는 것과 같다. 무슨 말이냐고? 아무리 좋은 차를 사도 그 차에 기름이 없다면, 그 차는 고철덩어리일 뿐이 아닌가? 좋은 차를 주는 것도 좋고, 좋은 이력을 만들어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 차를 움직일 기름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차도 움직일 수 없듯이,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언젠가 지쳐서 뻗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은 뭘까? 사랑에 대한 나의 시리즈에서도 설명했지만, 사랑의 핵심은 '이타심'이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상대와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게 사랑의 핵심이다. 그런 존재가 있을 때 우리는 일상에서 지치고, 상처 입은 영혼과 마음을 회복받고 충전받는다.


돈이 없다고 해서 사랑을 줄 수 없는 게 아니다.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아이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해도 존중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봐주는 것.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도 존중받는다고 느끼도록 해주는 것. 혼내더라도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게 아니라 그 행위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왜 잘못된 건지를 설명해 주는 것. 무엇보다 본인이 잘못을 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상대에게 고마운 건 고맙다고 표현해 주는 것. 그게 사랑의 표현이다. 여기에 돈이 드는 건 없다.


돈이 의미가 없거나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다. 돈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하지만 평소에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함께 시간도 보내지 않으면서, 무슨 말을 할 때마다 혼내고 지적질을 하다 명품을 사주는 건 마음의 표현이 아니다. 돈이 사랑의 표현이기 위해서는 그전에 둘의 관계에서 존중과 신뢰가 쌓여있어야 한다. 돈이 있으면 그 표현을 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돈으로'만'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돈이 다른 것과 결합할 때는 그 효과가 배가 되지만, 돈만 가지고 해결되는 관계는 절대로 없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고, 신뢰와 존중을 받을 때 관계가 건강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많지 않아도 괜찮다. 돈이 없는 건 잘못이 아니다. 돈이 없어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존중한다면 그 관계는 물론이고 그 아이도 건강한 자아를 갖고 자랄 것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어도 자아가 건강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 건 그들이 부모님과 양질의 시간을 보내고, 존중받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부모님이 그런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게 본인 탓이 아니라는데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아보자. 조선 후기에는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엄청났고,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게 핍박받고 억압받았으며, 해방 직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나 한반도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선 항상 생존이 우선이었다. 우리의 조부모님과 그들의 부모님과 조부모님들은 그런 시대를 살았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칭찬을 하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그 경험을 자녀에게 물려주기도 쉽지 않다.


비극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역사가 만든 비극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흘러가도 괜찮은 게 아니다. 그 비극의 꼬리는 어딘가에서 끊어야 한다. 그걸 미루지 말자.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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