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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an 21. 2024

사랑과 소유욕의 상관관계

최근에 한 유튜브 채널에 나온 이효리 씨가 '내 진짜 꿈은 진짜로 사람을 사랑하는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굉장히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 수많은 연애를 했고, 지금도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며, 가족도 있는 사람이 자신이 진짜로 사람을 사랑을 한 적이 있는지를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사랑에 대해 본능적이고 감각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했고, 하고 있는 게 진짜 사랑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얼마나 솔직하고 또 깊은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사랑과 관련해서 가장 위험한 사람들은 반대로 자신이 사랑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다. 빙하가 물 위에 떠 있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얼음 덩어리 밑에 그보다 훨씬 크고 깊은 얼음 덩어리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도 모르고 물 위에 있는 빙하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신이 사랑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현상을 보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렇게 표면적으로 보이는 무엇인가는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소유욕은 결국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마음이 기초가 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내가 만나는 상대도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상대를 나의 남자친구나 여자친구 또는 배우자로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물리적으로 하는 사람보단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조금만 더 나가서 생각해 보자. 당신은 본인이 상대에게 뭔가를 해줬을 때, 상대도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내게 해주기를 바라지 않을 수 있나? 한두 번이야 그럴 수 있지만, 그걸 평생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상대를 갖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일수록 그렇게 일방적인 마음으로 상대에게 뭔가를 해줄 수는 있지만 그걸 평생 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인 중 누군가는 명품을 선물했는데 상대는 학을 백 마리 접어서 줬다는 식의 밈이 도는 건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안에 자신을 중심에 두고 어느 정도 계산을 하는 본성이 인간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본인이 어느 정도 배려를 했으면 상대도 일정 수준의 반응하길 원하는 건 상대에게 내가 투자한 만큼 상대가 자신에게 보상을 줄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이상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은 우리 안에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나 결혼초기에 상대가 자신에게 베푸는 호의가 곧 그 사람의 성품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건 많은 경우 이타심적인 성격보단 상대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싶어서 베푸는 떡밥과 같은 미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연인에게 어느 정도의 선물은 해야 한다는 식의 계산을 하는 문화가 꽤나 많이 퍼져있는 것도 결국은 상대를 소유하기 위해 어느 정도 대가를 지불해야 하느냐에 대한 인식이 우리 안에 암암리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다. 상대의 외모, 학력, 스펙, 연봉 등을 계산하고 따지는 자동차를 살 때 스펙과 디자인을 따지는 것이나 집을 선택할 때 집의 위치, 크기와 가격을 보는 것과 얼마나 다른가? 그 행위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 보니 그렇게 시작한 연애나 결혼에서 사람들은 물건을 놓고 따지고 계산하듯이 서로를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한 모습들을 비판하거나 잘못되었다고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두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고, 우리는 무의식 중에 그런 계산들을 어느 정도는 하게 된다. 사랑에 소유욕과 이타심이 같이 있다고 설명한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우리가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 상대에게 호의라는 떡밥을 던질 때의 감정이나 관계가 아직 사랑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그러한 소유욕을 넘어서 순수한 이타심이 생기기 시작할 때 싹트기 시작한다. 상대에게 무엇을 해줬을 때 상대가 그에 대한 대가로 무엇인가를 돌려주지 않아도 상대가 받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행복해질 때, 자신의 물질이나 시간이 잠시라도 실제로 상대의 물질과 시간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빈도가 늘어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상대에 대한 사랑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이타심이 한 번 생기고 나면 상대를 소유하려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상대에 대한 이타심과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사랑을 한다. 그 둘 중에 이타심의 비율이 조금 더 많아지면 사랑이 커졌다고 할 수는 있지만, 항상 완전하게 이타적이기만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소유해서 자신의 물건처럼 다루려는 수준에 머무르거나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받기 위해서 떡밥으로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포장한 관계를 오래 끌어갈 수가 없다. 이는 상대를 그렇게 대하는 모습들은 곳곳에서 드러날 것이고, 상대에게도 이기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 속에서 상대가 그 감정을 유지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애나 결혼 초기에 자신에게 지극 정성이었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목격하는가? 그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건 그 사람이 이중적이거나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상대가 연애나 결혼 초기에 잘해줬던 것은 자신도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새로움을 느끼면서 도파민이 분비되기도 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서 맞춰야 상대를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패턴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상대가 자신의 소유가 되었다고 느껴지는 순간 찾아보기 힘들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는 항상, 무조건 상대에게 모든 것을 퍼주는 연애나 결혼생활을 해야 할까?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누구도 평생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런 패턴은 절대로 지속가능할 수가 없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나 결혼생활에서도 두 사람은 어느 정도는 상호 간에 주고받는 패턴이 유지가 되어야 두 사람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는 계산을 하면서 주고받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 과정에서 주는 것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운동을 배울 때 처음에는 왜 시키는지 이해되지 않았던 동작들이 운동을 더 오래, 많이 하다 보면 이해가 되듯이 연애와 결혼생활에서도 처음에는 의지를 갖고, 계산까지 하면서 했던 것들이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소유욕과 이기심에서 이타심의 단계로 조금씩 넘어가게 된다. 야구에서 투수가 처음부터 시속 150km를 던지는 것이 아니고, 올바른 자세를 갖고 계속 연습하다 보면 구속이 올라가 있는 것처럼 사랑도 계속 이타심을 흉내 내다보면 진짜로 이타심이 생기기 시작한단 것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이기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전한 이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서 초반에는 필연적으로 상대를 갖고 싶단 마음으로 관계를 시작하게 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감정이 그러한 소유욕에서 이타심으로 전환되었는지, 되었다면 얼마나 되었는지일 것이다. 사랑이 어려운 것은 우리는 상대도 자신에게 이타적인 모습을 보이고 그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상대에 대한 이타심이 싹트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상대를 '신뢰'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결정적인 것이 있으니, 그건 우리의 과거 경험들이다.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부모 밑에서 자랐거나 과거 연인들이 이기적이었던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유욕이 이타심으로까지 전환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게 꼭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건, 상대의 마음에 신뢰를 잘 형성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 극복되면 그 신뢰는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에 반드시 12개월 이상을 만나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12개월을 만났다고 해서 상대를 다 아는 건 어차피 아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꽤나 독한 존재여서 상대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12개월 이상 숨길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거기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상당수라는 것을 감안하면 '12개월'이라는 기간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대원칙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상대가 살아온 삶과 상대가 했던 결정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상대와 어울리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상대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오래 만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파악하게 될 수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일정기간 이상 만나보라고 조언하는 것은 소유욕과 이기심으로 호의를 베푸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걸 '콩깍지가 떨어진다'라고 표현한다. 결혼을 하기 전에 최소한 그 관계가 소유욕의 단계를 넘어서야 할 필요가 있는 건 상대를 반드시 소유하고 싶단 마음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상대가 '객관적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설명이 말로는 쉽지만 현실에서 실행하기는 쉽지 않은 것을 안다. 그런데 자신이 콩깍지가 떨어진 상태인지를 알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건 상대의 단점이나 부족한 점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이 상대의 단점이나 부족한 점에 대해 말할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만약 상대의 단점이나 부족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아직 당신의 콩깍지가 붙어있거나 당신이 상대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단점이나 부족한 점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다른 사람이 상대의 단점이나 부족한 점을 지적할 때 반사적으로 화가 나거나 방어적으로 반응을 한다면, 그것 역시 아직 콩깍지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면 그 말을 곱씹어보고 그 말이 어떤 맥락에서 말이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차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 그 차의 부족한 점을 들어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자신의 차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이 강한 사람들은 그런 말에 분노를 하는 것처럼,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의 부족한 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반사적으로 반응을 하게 된다면 당신의 마음은 소유욕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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