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꽤나 친했던 지인은 연애를 10년 하고, 결혼한 지 1년 만에 이혼을 했다. 남자가 의처증이 있었고, 그런 모습들은 연애를 할 때도 간간이 보였지만 그 친구는 그럴 때마다 집이나 회사로 찾아와서 무릎까지 꿇고 비는 남자친구를 용서했었다. 그런데 그게 일상이 되어 버리니 도저히 버티질 못하고 결혼한 지 몇 달이 되지 않아서 친정으로 도피를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을 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다녔던 똑똑한 친구였다.
그 지인 외에도 이혼한 지인들 중 자신이 이혼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결혼식장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했다고 자부하고 식장으로 걸어 들어갔지만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싱글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지인들 중에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어쩌면 이혼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할 필요가 없다거나 하면 안 된단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주위에는 이혼을 했거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보다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들의 결혼생활이 완벽하냐고? 물론 아니다. 결혼을 함으로 인해 찾아오는 힘듦과 고통, 어려움은 당연히 있다. 무엇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 자신의 인생도 자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게 되는 지점들이 많다 보니 기혼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절대로 결혼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박탈당한 자유를 상쇄할만한 것들이 결혼생활에 있기 때문에 이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혼은 자신이 어떤 상태와 모습일 때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 천국행 기차표가 될 수도 있지만, 지옥행 비행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천국행 기차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옥행 비행기만큼은 피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말들이 '결혼은 현실이다'와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어떤 조건을 따져야 한다고 강변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게 핵심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그런 말들을 자세히 들어보고, 어떤 맥락에서 그런 조언을 하는 지를 들여다보면 그중에 말도 안 되는 얘기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맥락과 상황에서 하는 말이냐에 따라 그 말들은 완전히 틀릴 때도 있지만 맞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의 경제력이 중요하다'는 말은 현실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가정이라는 공동체에 중요하기 때문에 분명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경제력이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지금 당장 상대방의 경제력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때도 있다.
우리 외갓집에 큰삼촌만 봐도 그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리 큰삼촌은 결혼할 때 삼성에 다녔었다. 삼성에 다니는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나 결혼상대로 선호할만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런데 큰삼촌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했고, 그 뒤에는 목회를 하더니 급기야 교회를 개척했고 지금은 작은 마을에서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고, 삼촌이 목회를 한다고 했을 때는 우리 집 친척들도 모두 반대를 했지만 누구도 그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경제력만 놓고 생각해 보자. 두 사람이 결혼할 때 자신이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의 경제력을 중점적으로 보고 결혼을 한다면,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당신이 왜 상대와 결혼을 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런 상황이라면 상대는 경제력으로 당신을 인질 삼아서 당신이 자괴감을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가 가끔씩 듣게 되는 재벌가 며느리들의 삶 중에 그런 예들이 있지 않나? 그렇게 되어도 돈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
이와 같은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경제력적인 측면만 생각해도 지금 당장 따지고, 볼 수 있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지금 대기업에 다니며 연봉이 1억 인 사람이 있다고 상정하자. 그 사람이 50대 후반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에서는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50대 후반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회사에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그만두고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많지 않다. 대기업을 다닌 사람들의 경우 회사가 부품처럼 일하게 업무를 분할해서 할당하다 보면 대기업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사람들은 여러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작은 조직이나 사업에 익숙하지 않아 적응을 쉽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 이야기를 단호하게 할 수 있는 건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한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돈을 많이 벌면 퇴직하기 전까지 풍요롭게 살 수 있지 않냐?'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는, 연봉이 어느 정도 이상 되는 사람들은 보통 번만큼 누리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는 어느 정도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반대로 그 돈을 모은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그 사람은 돈을 많이 벌 때도 지출을 아끼고, 아끼고, 또 아껴야 한다. 대기업에 괜찮은 연봉의 사람이라는 사실'만' 보고 결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현실이 미래에 닥칠 것을 예상하고 결혼을 결심해야 한다.
대기업도 다니지 않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냐고? 결혼하고 나서 10년 차까지는 분명 연봉이 괜찮은 대기업에 다니는 배우자가 나을 수 있다. 그런데 10년이면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것에 대한 10년 전과 지금의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만 봐도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1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고 싶어 했는데, 최근에는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도 낮아지고 있고 시험에 통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만두는 고등고시 출신 공무원도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10년이면 중소기업에 다니던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해서 자리 잡을 수도 있고, 대학원생이 교수가 될 수도 있으며, 대기업에 다니던 사람이 희망퇴직을 할 수도 있는 기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을 놓고 결정하는 '결혼'은 지금 당장 상대의 상황을 보기보다는 그 사람의 기본적인 토대와 태도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 상대가 지금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다면 그게 준비하고 목표하는 바가 있기 때문인지를 봐야 하고, 상대가 계획이 있다면 그 계획이 현실성이 있고 상대가 그 계획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목표를 달성은 못해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밥벌이는 끝까지 해낼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 단순히 그 사람을 포장하는 '스펙'이 아니라 그 사람의 근본이 더 중요하단 것이다.
경제적인 부분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결혼을 한 뒤에 후회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왜 그런 것일까?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연애와 결혼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연애를 할 때는 당연히 지금 당장 연봉이 높은 사람과 만나는 게 좋을 수밖에 없다. 데이트를 하면서 더 좋은 곳에 가고, 더 맛있는 것을 먹으며 데이트를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결혼의 문제로 들어오면 이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의 사업을 하기 위해서 경험을 쌓으면서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잠을 줄여가며 일하고 있지만 통장 잔고가 얼마 되지 않은 사람과 대기업에 다니지만 칼퇴가 목표이고 일은 최대한 안 하기 위해 피해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10년, 20년 뒤엔 누가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전자의 인생이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온다면 전자가 더 안정적인 수입체계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처럼 연애는 지금 당장의 현실에만 발을 딛고 있는 문제인 반면 결혼은 평생을 두고 하는 투자라는 측면에서 그 성격을 분명히 달리한다. 지금은 규모도 크고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정점을 찍고 레드오션에 있는 기업과 지금은 작지만 시장이 커질 수 있는 시장에 있는 기업이 있다면 당신은 어느 기업에 투자를 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하겠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과 결혼하면 안 된단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요소들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말을 대기업과 경제력을 기준으로 설명하고 싶었을 뿐이다. 똑같이 아무 계획 없이 하루, 하루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보다 배우자로서 낫다. 그런데 입사 17년 차가 된 내 첫 직장의 입사동기들은 팀장이나 임원이 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경제력의 문제만 놓고 봐도 '결혼'의 문제는 이처럼 복잡한 지점들이 많다.
그런데 연애와 결혼이 가장 다른 지점은 연애는 일상에서의 탈출구가 되어주지만 결혼은 그 탈출구가 되어줬던 사람이 나의 일상이 된다는 데 있다. 아무리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는 사람도 하루에 2시간 이상 연락하거나 주 2회 이상 보기는 힘든 게 현실이다 보니 따로 사는 가족들이 만났을 때는 어지간하면 서로 배려를 해서 부딪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연인들은 데이트를 할 때 최대한 다투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리고 상대의 현실은 자신의 현실과는 분리되어 있다 보니 상대의 현실을 접했을 때 사람들은 상대의 편이 되고, 공감하고 동의해 주는 게 자신의 현실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보다 쉽다. 여기에 더해서 두 사람이 연애를 할 때는 자신의 마음과 시간에 맞춰서 통화나 데이트를 할 수 있지만 결혼을 한 뒤에는 주말부부이거나 집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상대와 접촉하는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가 연애할 때와 똑같은 모습이어도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하물며 단순히 경제력적인 측면뿐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상대는 지금 본인의 모습과 달라질 것이다. 10년 전 당신이 하던 생각, 보던 세상, 했던 행동들을 돌아보면 당신의 10년 후가 얼마나 다를지를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는데, 결혼은 그렇게 변하는 상대와 함께 가정이란 공동체를 꾸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 지인들만 보더라도 절대로 회사에 충성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이 임원 진급이 눈앞에 보이자 회사에 충성하며 가정에는 소홀해지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연봉이 높은 편인 금융회사에 다니던 사람이 파일럿이 되겠다며 결혼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그만두고 나서 백수가 될 뻔한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할 때는 상대의 '현재'만 보고 결정해도 되지만, 결혼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은 많은 면에서 바뀌기도 하지만, 그 근본은 바뀌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태도, 마음, 언행과 같은 요소들은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듯이 '별 이상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지나치는 지점들이지만 그런 요소들은 쉽게 바뀌지 않다 보니 장기적인 관계에서는 피로감이나 상처, 갈등을 누적시켜서 관계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갈 때는 스펙, 학력, 집안이 아니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살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스펙이나 상황은 의미가 없어지고 달라질 수 있지만, 사람의 근본과 성향은 잘 바뀌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바꿀 수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