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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ug 13. 2024

운동선수의 연봉과 협회에 대한 생각들

직전에 안세영 선수 관련 글을 쓴 뒤에 국면이 많이 바뀌었다. 이젠 '결국 돈이었냐'는 질문이 제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배드민턴 협회의 보도자료 이후에 선수 측에서 나온 얘기가 '싸우자는 것 아니냐'와 '스폰서와 계약은 열어줘야 한다'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협회의 경우 모든 부분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팩트를 나열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믿지 않고 분노를 협회에 일방적으로 뿜어낼 상황이었으니까. 


'결국 돈이었냐'는 반응은 단순히 돈 때문에 불만을 갖는 게 이해가 안된다는 게 아니다. 금메달을 따자 마자 이야기를 꺼낸 것을 보면 마치 더 큰 대의를 위해서, 정말 협회가 나쁜 놈들이기 때문에 말을 꺼낸 것 같았는데 '아닌 척했는데 결국은 모든 게 돈 때문인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시민권 얻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지 않는다. 이해가 되니까. 하지만 군대에 갈 것 같은 뉘앙스, 그리고 그런 뉘앙스 덕분에 축적된 바른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던 유 모 씨에게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갈 것처럼 하는 와중에 뒤에선 안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네'라는 포인트다. 후자가 더 질이 안 좋고 더 분노를 살 구조이긴 하지만 겉과 속이 달라 보이는 지점에 대해서 사람들이 분노한다는 면에서는 두 사례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런 문제들은 다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자. 돈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돈 얘기를 해보자. 내가 이 얘기에 더 깊게 꽂히는 건 어쩌면 이 얘기가 작년에 브런치북 프로젝트 특별상을 받아 나온 '돈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이 얘기가 이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단히 착각하는 게 있다. 그건 '실력이 뛰어나면 보상도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 한 사람들이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돈을 더 잘 버나? 아니다. 음식을 더 잘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 돈을 더 잘 버나? 아니다. 커피를 내리는 실력이 어마어마한 사람이 돈을 더 잘 벌까? 아니다. 돈을 버는 건 사람의 주머니를 열어서 그 사람의 돈을 내 주머니로 옮겨놓는 것인데, 사람들이 주머니를 여는데는 다양한 유인들이 있기 때문에 한 가지에 대한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돈을 반드시 더 잘 버는 것은 아니다. 돈을 많고 적게 버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변수들이 작용하게 된다.


최근에 나온 기사에는 세계랭킹 13위 선수가 돈을 더 많이 번단 기사와 개인 자격으로 대회에 참여하는 덴마크 선수에 대한 기사가 뜨더라. 그런데 13위의 선수는 인도선수였고, 인도와 덴마크는 배드민턴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인기도 많고 그에 따라 선수풀도 더 넓다. 운동선수가 국가대표로 나서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국가중심주의가 더 강한 국가일수록 '국가대표'로 나가서 주목과 보상을 더 많이 받고, 인구가 많은 국가일수록 마찬가지로 보상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제 '국가대표'로 나가 메달을 받는 것에 대해 과거만큼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인도는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20배 이상 많은 국가이고 배드민턴이 인기도 더 많다. 저변과 선수풀 자체가 다른 나라들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건 잘못된 비교다. 이는 저변이 다르다면 선수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협회 차원에서 이뤄지는 지원 등 시스템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프로축구 구단들의 시설이 유럽구단들보다, 프로야구 구단 시설들이 미국보다 못하다. 그건 그만큼 해당 스포츠 시장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슷한 구조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배우가 주연으로 연기를 했을 때 받는 돈은 미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드라마에서 주조연급으로 출연하는 사람보다도 적을 수 있다. 그들이 한국에서 갖고 있는 인지도만큼의 인지도를 미국에서 갖고 있는 배우들은 그들의 출연료의 수십 배를 번다. 왜 그런가? 그 첫 번째 이유는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시장이 비교도 안되게 크기 때문이고, 미국 배우는 영어로 대사를 하기 때문에 미국 밖으로도 그 작품이 팔려나갈 수 있는 반면 한국어는 제한이 더 많기 때문이다. 미국 배우들은 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 이는 미국 스포츠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도 개인이 낸 성취는 그만큼 인정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연봉체계는 말이 안 된다!'라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은 사실 보기 나름이긴 하다. 배드민턴이라는 스포츠 종목 자체가 구조적으로 한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상금'을 받는다. 그 상금을 협회에서 다 가져가고 연봉체계가 지금과 같다면 그건 말이 안 되지만 일종의 '기본급'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지금의 연봉 상한선이 과도한 것인지는 애매해진다. 배드민턴은 성적을 낸 만큼 상금을 더 많이 받는 구조니까.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가까스로 프로선수가 되어서, 배드민턴보다 훨씬 시스템화되어 있고 상금이라는 개념도 없는 프로축구와 프로야구에서는 수년간 3-4천만 원을 받고 있는 선수들도 있다. 물론, 프로야구 선수들 중에서도 탑인 선수는 연봉이 수억 대에 이르는데, 그들은 리그의 최고연봉자는 아니며 연봉과 초상권 등이 수입의 전부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손에 쥐는 돈은 안세영 선수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배드민턴과 같은 비인기종목과 프로스포츠가 굉장히 다른 지점이 또 하나 있다. 그건 비인기종목은 어렸을 때부터 선수로 자라는 과정에 협회가 지원과 투자를 하는 반면 프로스포츠는 협회나 단체의 투자가 없다는 것이다. 축구의 경우 육성시스템이 있는데, 그래서 그 육성시스템 안에서 지원을 받고 자란 학생은 구단이 허용하지 않는 이상 다른 구단과 첫 프로계약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프로산하가 아닌 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축구계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안세영 선수의 경우 성장하는 과정에서 물론 본인의 능력도 재능도 있지만 협회에서 지원해 준 부분도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단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같은 국가중심적인 국가들의 경우 이러한 시스템이 있지만 자유주의 국가들은 그런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이 대부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안세영 선수의 실력이 100% 순수하게 본인의 능력만으로 이뤄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사례와 유사한 업종이 또 있는데, 그건 연예기획사들의 아이돌 업계다. 연예기획사들은 연습생들을 어렸을 때부터 먹이고, 트레이닝시키면서 하나의 멋진 상품으로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그래서 연습생들은 데뷔 직후 첫 계약 하에서는 그들이 번 돈에서 더 많은 비율을 기획사에서 가져간다. 연예기획사들이 노예계약 수준의 기간과 내용으로 계약을 썼던 게 문제가 되는 것이고, 갓 데뷔한 아이돌들은 보통 10을 벌면 그중에 3만 가져가고 그 3중에 활동하는데 드는 비용도 기획사랑 나눠서 부담하다 보니 실제로는 10을 벌면 1-2 정도밖에 손에 쥐지 못한다. 그러다 아이돌이 유명해지면 그 비율이 아이돌 7, 회사 3 정도로 바뀌기도 한다. 아이돌이 데뷔하기 위해서 투입되는 초기 투자비용이 있고 불확실성이 있는 산업이기 때문에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계약기간 역시 마찬가지. 아이돌들은 보통 첫 계약기간이 7년이다. 대졸과 고졸을 왜 차등하냐는 댓글도 많은데, 그건 프로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고졸선수가 FA가 되는 service time과 대졸선수가 FA가 되는 service time에는 차이가 있는데, 그건 더 잘해서가 아니라 더 나이가 많고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투자한 시간이 더 길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까지 밝혀진 배드민턴 협회의 규정들은 크게 엇나가거나 이상한 건 올림픽 몇 개월 전에 만들어진 자격정지 관련 규정 정도가 아닌가 싶다. 


협회의 후원과 관련해서는, 당신이 협회를 후원한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후원을 왜 할까?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후원하는 사람들은 후원이나 스폰서를 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광고효과를 기대할 것이다.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대부분 그걸 기대하는 것이 현실인데, 대기업 홍보실에서 일해 본 경험에 의하면 기업들은 스포츠를 사회공헌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마케팅 효과를 기대한다. 그런데 배드민턴 협회를 후원, 스폰서 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협회가 안세영 선수 같은 스타선수는 무조건 경쟁사 제품의 스폰서를 받을 수 있는 정관을 가지고 있다면 후원금액을 늘릴까? 줄일까? 당연히 줄일 것이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스폰서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협회를 스폰서 하는 것보다 안세영 선수 한 명을 스폰서 하는 것이 마케팅 효과는 훨씬 클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되면 협회는 현실적으로 지속가능성이 결여되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양궁협회처럼 좋은 스폰서를 구하면 되지 않겠냐고? 그런 스폰서를 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현대자동차도 만약 양궁협회가 지금처럼 전 세계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둬오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은 지원을 이렇게 오래 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한화가 20년간 이어오던 사격협회 후원을 멈춘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현대자동차가 양궁협회를 오랫동안 후원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한 가지는 정의선 회장이 4년에 한 번씩 언론에 나와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현대자동차의 브랜딩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드민턴은 10여 년 만에 메달을 땄다. 이런 상황에서는 좋은 스폰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양궁은 성적을 잘 내고 깨끗하기 때문에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것 아니냐고? 현대자동차에서 1985년부터 양궁협회를 후원한 것은 결국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직전부터였는데,  그때는 국가에서 메달 유력 종목에 대기업들이 후원할 것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양궁협회가 지금까지 그 명성(?)을 이어올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후원과 성적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지 처음부터 양궁협회가 청렴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종목은 왜 박태환, 김연아 선수만큼 후원과 지원을 받지 못하냐고? 그 가장 큰 이유는 그 두 사람은 그 종목의 '첫 주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적이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천재가 나타났다 보니 주목을 많이 받았고, 그들이 유일하게 성적을 내는 사람들이었다 보니 그렇게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박태환 선수의 경우 압도적인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협회와 여러 가지 이슈가 발생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배드민턴은 오랫동안 성적을 내지 못했을 뿐이지 이번 올림픽 금메달이 유일도, 처음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상의 성적을 내는 선수들이 있는 종목에서는 그들과 같은 지원이 이뤄지는 게 현실적으로 힘든 면들이 많다. 이번 하계 올림픽에서 남자 자유형 선수들은 박태환 선수가 그 시절에 있던 포지션과 유사한 위치에 있는 선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태환 선수만큼의 지원은 받지 못하지 않았나?


위에서 수많은 예시를 들었듯이 프로스포츠, 아이돌 세계, 다른 종목들의 예에 비춰봤을 때 사실 배드민턴 협회의 연봉과 계약에 대한 제한은 말이 안 되진 않는다. 그리고 안세영 선수가 지금, 이 시점에 놓치는 게 있다면 그건 '배드민턴 협회와 업계'가 커야 본인도 은퇴 후에도 먹고 살 게 생긴단 것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20대의 배드민턴 스타가 나오면 그 선수는 개인 스폰서를 받게 되는 구조의 정관이 만들어지면 협회에 대한 스폰서는 당연히 축소될 것이다. 그게 시장논리니까. 그렇게 되면 유소년에 대한 투자와 지원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안 그래도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되면 배드민턴 선수를 하겠다는 사람은 없어질 수도 있다. 야구, 축구선수들도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건 이게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란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배드민턴 업계가 더 축소된다면 안세영 선수는 뭘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시작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배드민턴과 관련된 것일 확률은 낮고, 그렇다면 그 일에서 최고가 되는 데는 더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물며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가 없어지면 해설도 하지 못할 수 있다. 아니 사실 안세영 선수가 이번에 한 발언들로 인해 이미 안세영 선수는 은퇴 후에 배드민턴 업계에서 일할 기회가 제한될 수도 있다. 다른 선수들 중에는 '특혜를 받겠다는 거네'라거나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안세영 선수가 계속 배드민턴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프로축구와 프로야구가 업계를 계속 키우려고 하는 건 그래야 은퇴한 뒤에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가 인기가 없다면 '최강야구'가 이런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은퇴선수들의 유튜브가 지금처럼 흥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일본과 미국에서 날아다녔던 선수들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가 인기가 없다면 은퇴선수들은 박봉을 받으며 코치를 계약직으로 하는 것 외에는 야구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뛰어난 선수와 개인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지금 당장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는게 중장기적으로는 사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유럽의 축구나 미국의 야구에서 선수들이 왜 구단을 위해 자신의 연봉을 깎는 경우가 있을까? 그래야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출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폰서를, 후원을 받으면 그게 반드시 더 좋을까? 나는 대기업 홍보실에서 일하면서 한 특출 난 A선수를 후원하는 회사에서 일을 했고, 당시에 기업블로그를 운영하던 나는 선배에게 혹시 A선수 인터뷰를 영상으로 딸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런데 그 아이템이 너무 마음에 든 그 선배는 담당자를 엄청나게 구워삶아서 무리해서 A선수를 선수촌에서 나오게 하여 대회 직전에 인터뷰를 하게 했고, 난 그 선수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선수와 내가 다닌 회사들이 후원하는 다른 선수들은 주기적으로 회사행사에 얼굴을 보이고 사인회를 해야 했다. 후원을 받는 만큼 자신의 자유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그냥, 공짜로 돈을 주는 사람은 없다. 이건 개인에게도, 협회와 단체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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