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글을 이 공간에 쓸 것이라고, 너무 많이 쏟아낼지도 모른다고 굳이 글까지 남긴 게 민망했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때론 사무실에서, 때론 운동을 하다가, 심지어 때로는 강의를 하다가 10월 4일에 그런 글을 남기고 한 자도 이 공간에 남기지 못한 게 민망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때도 있었다.
왜 그렇게 글이 안 써지는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 한 때 미친 듯이,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내던 글이 왜 이제는 한 자를 시작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졌는지를 잘 모르겠어서 힘들기도 했다. 너무 쓰고는 싶은데 써지지를 않는 것이 힘들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내가 이제서야 진짜 내 글을 쓰고 싶어 졌다는 것을.
무슨 말인가 싶을 수 있다. 그렇다면 2017년부터 무려 7년 넘게 써온 글들은 내가 쓰기 싫은 것을 억지로 썼단 말일까? 아니다. 그때도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가 쓰고 싶은 대로 갈겨 댔다. 그렇다. 사실 2017년부터 작년까지 내가 이 공간에서 써온 글들은 내가 '썼다'기보다는 '쏟아낸' 글들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 단어 하나, 하나를 곱씹고 내가 기록하는 이 글이 상대에게 어떻게 닿을지를 고민하지 못하고 쏟아내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건 내 삶이, 내 안이 너무 고통스럽고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20대 후반까지는 또래들 중에 가장 잘 나간다는 평을 들며 살다 30대에는 실패를 거듭하며 가족까지 힘들게 한 시간을 보내며 나는 기댈 곳이 없었다. 재수할 때는, 군복무시절 휴가를 나왔을 때는 항상 내 곁을 지켜주는 강아지라도 있었는데 계속해서 실패만 거듭한 30대의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때 살기 위해서, 이 공간을 대나무 숲으로 삼아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며 글을 써 왔던 것 같더라.
지금도 내 삶은 만만치 않다. 서른 전엔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여전히 싱글이며, 나이가 듦에 따라 나만의 세계와 라이프 패턴이 너무 견고해져 부모님과 한 공간에서 사는 것이 힘들어 독립했고,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혼잣말 외에는 입 밖에 꺼내는 단어조차 없는 날이 대부분이다. 거기에 올해 하반기엔 여러 방면에서 내 글을 써내고자 일도 줄였는데 막상 돈 되는 일을 줄이니 돈 안 되는 일들이 늘어나더라. 이번 달 카드값은 이번 달 수입을 이미 넘어선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글이 쏟아내지지 않는다. 이젠 글을 쏟아내기보단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가능하면 내 의도를 명확히 담아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해석되는 지를 고민하며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젠 그럴 수 있을 정도의 마음과 생각의 근육이 내 안에 만들어진 느낌이다.
브런치 팝업을 가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머문 시간보다 그 공간을 떠난 뒤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솔직히 그 공간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 안에는 출판된 책들과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말들이 있었는데, 그 말은 글과 책을 '작가'라는 스펙을 주는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안에 기획하신 분들의 의도들도 보였지만 너무 '나'가 강조되는 분위기가 편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더라.
왜 심지어 불편하기까지 했는지를 놓고 또 고민이 됐다. 그리고 내가 이 공간에서 오랫동안 그렇게 글을 써 왔기 때문에 들었던 느낌이란 걸 깨달았다. 좋은 글에는 '나'와 함께 '우리'도 들어있어야 하는데, 이 공간에서 내가 써온 글들은 하나 같이 '우리'라는 탈을 쓰고 사실은 내 이야기만 쏟아내고 있었더라. 그랬던 내가 불편해졌다 보니 그 공간 안에서도 그런 지점들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그런 생각과 고민들을 할 때 즈음에 한강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소식에 흥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났다. 한강 작가와 그녀의 글은 계속해서 존재해 왔다. 그런데 그걸 인정해주지 않거나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심지어 금지도서로 여기고 비판을 넘어 비난까지 했던 사람들이 같은 국적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한강 작가를 칭송하는 모습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상을 받지 않으면, 1등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만들어내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단편이 그 현상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그렇게 한 번의 파도가 쓸려 가고 나서야 한강 작가님의 인터뷰를 봤다. 나는 글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대해 왔는지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저 마음을 닮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책장 구석에 오랫동안 꽂혀있었던 작가님의 책을 꺼내 먼지를 툭툭 털어 첫 장을 넘겼다. 그리고 이젠 글에 대해 어떠한 장담이나 약속도 하지 않기로 했다. 글은, 나와야 나오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