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TC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해 말하지 말라

by Simon de Cyrene

결혼한 지인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결혼하지 마. 혼자 사는 게 자유롭고 행복해'인 듯하다. 그런 말을 들으며 정말 그럴지에 대해 생각과 고민을 했던 적도 있고, 결혼을 굳이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의존적이지 않으면서도 의지할 수 있는 내 편이 될 수 있는 사람과 만나 내 모든 걸 희생해도 아깝지 않은 아이가 있는 삶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결혼생활을 듣고, 종합해서, 분석한 결과다.


싱글로 사는 건 최악도 아니지만, 최선도 아니다. 상대를 존중할 줄 모르고, 도구로 여기며, 들을 귀가 없는 사람. 아니 어쩌면 그중에 하나라도 갖고 있는 사람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삶은 최악의 삶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맞춰나가기 위해 노력할 줄 알고, 상대의 배려가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으면서 자신을 잘 표현하고 들을 줄 아는 두 사람이 가정을 꾸리면, 그 삶만큼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본인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단 게 전제된다. 본인이 그런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어떤 가정을 꾸려도 그 사람의 결혼생활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본인이 상대와의 관계에서 그런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상대가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상대를 도구로 생각하는데, 상대는 자신의 도구가 되어주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은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평가하고 판단하기 전에 본인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싱글로서의 삶은, 만날 사람이 많고 새로운 것이 많을 때까진 마냥 행복하고 좋다. 나도 하루, 하루를 내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할 때가 있었다. 그때는 연애도 필요하지 않았고, 내게 주어진 자유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때는 연애마저도 구속처럼 느껴졌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맞춰야 하는 삶은 갑갑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새로운 게 사라지고, 각자의 삶이 바빠지면서 이해관계없는 만남의 빈도가 줄어들다 보면 고립된 느낌을 자주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 취미, 물건이 주는 행복과 도파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서 자유롭기만 한 삶의 한계는 반드시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만약 그 한계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 충분히 새로움을 접하지 못했거나 다른 사람을 자신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집에 가기 싫어서 팀원들을 데리고 회식을 자주하는 팀장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극한의 I가 아니라면. 매일 집에만 오면 지옥 같은 삶보단 그게 낫지만, 의존적이지 않으면서도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가 있는 삶보단 힘들고, 덜 행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결혼을 했는지 여부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과 가정을 꾸렸는 지가 더 중요하다.


내게 결혼하지 말라고 한 기혼자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의 마지막 싱글은 결혼하기 전이고, 지금 나는 그들보다 많게는 10년 이상, 짧아도 3-4년은 더 나이 먹은 싱글이고 그들은 내 나이에 싱글이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반대로 싱글로 살며 자신이 기혼자들보다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그중에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정리한 사람도 있고, 평생 싱글이었던 분들도 있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의지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를 만났다면, 그들의 생각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생각은 자신의 경험을 위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결혼만 그럴까?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산다. 그건,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5천만 개 이상의 삶이 있단 것을 의미한다. 같은 직장을 다녀도 자신의 성향과 자신이 자라온 환경, 현재 처한 상황, 성장배경, 신체적 특성, 종교 등에 따라 사람들은 다른 세상을 보고, 다른 삶을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을 쉽게 평가하고 판단한다. 가정을 꾸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 결혼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월급쟁이들은 월급루팡이라고 말하며,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돈이 무조건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직접 경험해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니,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주관을 살짝 옆으로 치워놓고 상대의 말을 듣고, 상대가 처한 상황을 상상해 보면 자신의 생각이 옳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렇게 한 걸음 물러나서 상대의 말을 듣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단 생각을 하는 것이 '듣는 힘' 또는 '귀가 있다'는 의미다. 그렇게 곱씹어 본 이후에도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여겨지면 상대의 말을 일단 듣고 흘리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넘겼던 것들 중에 자신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 과거에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거나 상대가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알게 될 때가 있다. 상대의 경험과 배경, 성향을 전제하고 상대의 말을 분석해 보면 동의하지는 못해도, 상대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는 알게 될 때가 있다.


사람의 경험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확장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처럼 성공에 대한 정의가 규정지어져 있고, 모든 사람을 줄 세우고 눈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달리기를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그런 노력을 할 여력이 있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탓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상대를 이해하거나 상대의 생각을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상대가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의 생각과 삶도 존중해 주면 된다. 자신이 가보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은 길이니까. 개인의 주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자신이 잃는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자신은 옳고 상대는 틀리다는 것을 강요하는데 너무나도 많은 힘과 노력과 시간을 기울인다. 그럴 에너지를, 그 시간을 자신을 위해서 조금 더 사용한다면 본인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런 과정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상태로.


반드시 틀렸다고 주장해야 할 것들도 있지만, 다름이 다 틀린 것은 아니다. 달라도 되는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해서 전자에 대해서는 관용적이고 후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따뜻해지고, 갈등도 줄어들 텐데, 다른 것은 틀린 것이고 틀린 것은 다른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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