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TC

'쿠팡 멤버십' 해지 후 알게 된 것들

by Simon de Cyrene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소식을 듣고 나서도 한동안 쿠팡 멤버십을 유지했다. 처음엔 올해 터진 통신사들 개인정보 유출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현실적으로 이젠 어느 정도는 감당할 각오를 하고 살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테무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시절 링크들을 타고 들어가다 가입한 뒤 갑자기 스팸문자가 엄청나게 많이 온 경험을 한 입장에서 알리와 테무는 사용하면서 쿠팡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조금 유별나다고도 생각했다. 테무에서 탈퇴한 뒤 수개월이 지나자 스팸 문자도 확연하게 줄어드는 걸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내게 그 두 플랫폼은 위험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사건이 진행되고, 전모가 밝혀지면 질수록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지금까지 개인정보가 유출된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후적으로, 겉으로라도 반성하고 어떠한 조치를 취하는 척이라도 했다. 그게 진심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눈치는 본다는 걸 표현해 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알려진 이후 쿠팡이 한국대표를 미국인으로 바꿔서 국회의원 질의에 계속 허공에 떠도는 답변만 하는 영상들을 보고, 쿠팡 안에서 이뤄진 커뮤니케이션들이 공개되면서, 이런 비윤리적인 기업은 사용해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더라. 나 하나 탈퇴한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걱정이 안 된 건 아니다. 저녁 11시 넘어서 내일 필요한 걸 주문하면 다음날 7시에 와 있는 삶을 수년간 살았고, 이젠 퀄리티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쿠팡에서 야채를 시켰으며, 몇 백 원이라도 싸고 다음날 아침에 확실히 도착하니 라면, 물, 과자 등은 쿠팡 아닌 다른 곳에서 산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서 두려웠지만, 그렇게 망설이면서도 립밤을 주문한 뒤 내 자신에 대한 분노에 속이 느글거리는 게 느껴지자 멤버십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 탈퇴는 안 했다. 왜냐고? 혹시라도 보상안이 나오면 탈퇴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두렵기까지 했다. 멤버십을 해지한 직후 다시 가입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런데 멤버십을 끊고 나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집 근처에 있는 하나로마트에 가서 쿠팡과 라면 가격을 비교해 보니 300-400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흑토마토는 오히려 저렴했으며, 할인하는 야채는 내가 고를 수 있으면서도 저렴하더라. 무엇보다 직접 물건을 보고, 비교하다가 고르는 과정이 은근히 힐링이 되기도 했다. 이 몇 년 만에 내 눈과 손으로 내가 살 물건을 고르는 것인가... 조금 과정을 더하면 하루 종일 긴장하며 굳어있던 근육이 풀리는 느낌까지 들더라.


손에 라면, 30% 할인하는 파프리카, 흑토마토를 들고 집에 오면서 문득, 우리가 편리함에 물들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소하고 때로는 귀찮게 여겨지지만 사실 인간에게 쉼의 순간이 되고, 조금이라도 머리를 쓰게 되는 과정을 우리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상실하고, 비인간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비자들만 그럴까? 쿠팡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어쩌면 조금 돌아가고 힘들긴 해도 장기적으로는 본인이 더 행복하게, 잘하면서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삶을 당장 눈앞에 돈으로 유혹하는 단순노동으로 인해 잃어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쿠팡의 구조는 지금 당장 돈이 안되지만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자신만의 가게를 차렸다, 망했다, 보완을 해서 다시 일어나서 성공을 할 수 있다면, 짧게는 3-4년간은 더 힘들 수도 있지만 10-20년 후엔 자신이 일하지 않아도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드는 게 가능한 사람들도 그러한 투자를 하지 못하고 쿠팡에 의존적인 삶을 살게 만들고 있을수도 있단 것이다.


쿠팡이 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쿠팡은 단순한 물류회사가 아니라 영상 플랫폼과 배달 플랫폼도 갖고 있어서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구조를 21세기에 우리나라에서 바닥에서부터 만들어 거의 유일한 기업이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쿠팡에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당장 나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쿠팡에서 주문을 했는데, 우리 지역에 배달하시는 분은 그만큼의 비용을 덜 받게 되실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분들의 생계를 인질로 삼아서,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최소한의 윤리와 도덕도 지키지 않는 비상식적인 기업의 서비스를 사용하진 못하겠더라. 그게 조폭이 아니면, 누가 조폭인가? 사람들의 생계를 인질로 잡아서 정부에 협박을 하고 있는 건데. 새벽배송이 쿠팡에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아 새벽배송을 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제발 시장 점유율을 올려서 독점과 같은 형태가 자리 잡은 이 시장을 경쟁시장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난... 그렇게 되더라도 예전처럼 새벽배송은 사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오늘 하게 됐다. 오랜만에 맛보는 이 아날로그함이 꽤나 좋았고, 가격 차이도 크게 나지 않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우리는 편리함으로 인해 또 무엇을 잃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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