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TC

조기교육 받으면 성공할까?

by Simon de Cyrene

앞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개인적으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조기교육의 상당 부분은 잘못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유를 더 날카롭게 할 수 있는, 어쩌면 더 근본적인 질문은 조기교육을 시키면 과연 그 사람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케바케, 사바사 아냐?'라고 반응할지도 모른다. 맞다. 모든 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 글이 확률적으로 100% 맞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기교육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그로 인해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보면 조기교육을 정말 시켜야 할 지에 대해서는 유의미한 인사이트가 도출될 수 있다.


조기교육이 잘 이뤄지는 경우 아이는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조기교육은 대학의 입시전형에 맞춰서 진행이 되니까. 부모들은 그 한 가지를 위해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다. 여기에 더해 과학까지 배우는 아이들도 있으니 조기교육을 잘 받으면 대학까지 잘 갈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그렇다.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가서 원하는 전공을 하게 된 이후에 진정한 의미의 '성공', 아마도 돈, 명예 어쩌면 권력까지 갖게 만들어 주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뭘까? 그건 '사회성'이다. 의사가 되어서도 돈을 지속적으로 잘 벌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아야 한다. 평판이 엄청 좋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내원한 사람들이 다시 찾기 싫은 병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게 유지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 '사회성 없어도 돈 잘 벌고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반박을 할 수도 있다. 맞다. 지금, 현재 시점에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이기적이고 자신만의 욕구와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끝은 좋을 수가 없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게 되어 있고, 그로 인해 적대감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누적되다 보면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손해를 입힌 사람을 끌어내리기 위해 공격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국회의원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걸 우리는 종종 목격하는데, 그 이면을 자세히 보면 그들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게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게 쌓여온 업보들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회의원들만 그런가?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 향정신성의약품을 남용하거나 빼돌리는 의사, 반드시 취해야 할 조치들을 취하지 않고 수술하는 의사들에 대한 뉴스를 우리는 종종 접한다. 의사로서의 윤리와 환자의 건강엔 관심이 없고 돈 버는 것만이 목표여야 할 수 있는 일들인데, 그들도 외부에 그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돈을 잘 벌었을 것이다.


변호사들도 마찬가지다.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 책도 쓰고, 정당 행사에는 열심히 참여하면서 얼굴을 알리면서도 학폭 사건을 맡아놓고 한 번도 변론기일에 나가지 않아서 학폭 피해자가 패소하게 만든 변호사, 박리다매로 사건들을 수임한 뒤 제대로 변호하지 않고 연락이 두절되어 버린 변호사 등에 대한 뉴스를 우리는 주기적으로 접한다. 그들도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성공해서 잘 나가는 자들로 보였을 것이다.


이러한 괴물들이, 그것도 스펙만 놓고 보면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꽤나 자주 보이는 건 그들이 자신의 기준에서 성공만을 목표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공에 대한 공식을 강요하는 가정과 사회적 분위기가 그들을 그렇게 망가뜨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성공 자체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성공만을 추구하다 보면 낮은 단계에서는 당연히 성공을 맛볼 수 있는데, 그러한 성공을 맛본 사람들은 더 큰 성공을 추구하게 되고, 반복해서 자신의 기준에서 성공만을 추구하면서 그 목표를 달성한 사람은 어느 순간서부턴가 경주마가 되어 주위를 보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면 성공의 맛에 중독된 사람들은 더 큰 성공을 위해 무리하게 되고,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는데, 그들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누적되다 보면 결국 피해자들이 그를 끌어내리게 된다. 우리가 보는 '하루아침에 망한' 사람들은 그런 길을 걸은 경우가 많다.


'지속가능한 성공'은 결국 사회성이 있어야 이룰 수 있다. 이는 사회성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가지고, 직업인으로서의 양심을 포기하지 않고 일을 해야 적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가 많고, 쉽게 평판을 조회할 수 있는 21세기에 예민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과거에는 동네에 병원이 하나 있으면 사람들이 일단 그곳에 가야 했고, 변호사도 찾기 힘들었을 뿐 아니라 누가 어떤 소송을 잘하는 지를 아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어떤 사람이 어떻게 일하는 지를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고, 입소문은 더 빠르게, 멀리 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나마 샐로운 기술과 정보에 익숙하지 않으신 어르신들이 상당수 계시기에 기본만 해도 일정 직역에선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성인이 되어 자신만의 일을 하는 30-40대가 되었을 때는 이미 AI를 일상에서 쓰고, 뭘 해도 디테일하게 알아보는 게 습관이 된 현시점의 20-30대가 50-60대가 되어 주된 고객층이 될 수 있다. 40대인 나도 이미 뭘 해도 AI와 구글링을 통해 알아보고 찾아간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지금 조기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30-40대일 때는 전 국민이 그럴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는 평판이 중요할 수밖에 없고, 좋은 평판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성이 기반에 깔려 있어야 한다. 혹자는 실력이나 기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일반인들은 전문영역에 대해 실력이나 기술의 차이를 느낄 정도로 지식을 갖추기 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엉망진창에 최악만 아니라면, 최소한 돈과 명예에 있어서는 사회성이 더 크게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자녀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아이가 사회성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사회성은 학원과 조기교육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회성은 아이들이 함께 놀고, 어울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작은 실패들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이 모두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상대의 말을 들어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명예가 찾아올 수 있다. 이는 명예는 자신이 쟁취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어떠한 실패도 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는데, 어렸을 때 하는 실패는 독이 아니라 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어렸을 때 하는 작은 실패를 극복하는 경험이 누적되어야 성인이 되어서 경험하는 상대적으로 큰 실패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패를 직접 해 봐야 세상에는 생각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고, 함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 또한 그 사람의 사회성의 발달에 기여하게 된다.


그런데 유치원 때부터 수학과 영어에 대한 조기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이러한 성장과정을 경험할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학원을 돌고 돌아야 하니 다양한 관계를 형성할 일이 없으니까. 무엇보다 부모들이 만든 틀에 맞춰서 조기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한 적이 없기에 어떤 결정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게 정말 아이를 위해 좋은 일이고, 성공하는 길일까?


그렇지 않다고 치자. 학원에서도 아이들 간에는 어느 정도의 관계는 형성되니까. 그런데 만약 부모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삶이 누군가에게는 정답이지만 그 아이에게는 아닐 경우에는 어떨까? 그 아이는 하루, 하루를 불행하게 살거나 부모와 갈등을 겪으면서 튕겨나가게 될 것이다. 그게, 성공한 삶일까?


과거에는 부모가 아이들을 통제하려면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 또래들만 해도 그게 불가능해졌다. 우리 아버지의 친구 분은 서울의 최상위권 대학의 교수셨고, 그분의 아버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도 그 길을 가기를 바랐고, 그 아들은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입학한 뒤 유학까지 떠났다. 하지만 그 아들은 이건 자신의 길이 아니라며 공부를 중간에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제주도에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부모들이 조기교육을 시키는 것이 잘못된 가장 큰 이유는, 누구도 20년 후에 어떤 직업이 유망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만약 누군가가 엄청나게 많은 양을 먹는 영상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면 그걸 믿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됐을까? 90년대에 만약 가수는 저작권을 몇 십 개 갖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돈을 계속 벌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미친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90년대에는 공무원이 되는 걸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가 IMF 직후에는 안정성을 선호해 공무원 시험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었다. 그런데 그 열풍은 지난 몇 년 간 사그라 들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그렇게 비혼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젠 그런 이야기도 거의 들리지 않고, 비혼식까지 방송에서 했던 연예인이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가졌다.


이처럼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20년 뒤에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가장 성공한 것으로 여겨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이 자신들의 세대에, 자신들의 가치관으로 아이에게 조기교육을 시키는 게 과연 아이들이 부모의 기준으로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을 보장해 줄 수는 없다. 만약 20년 뒤에 AI가 의사들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고, 기업이 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의사가 되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거나 수입이 다른 직역보다 특별히 높지 않게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에게 부모가 보장해 줄 수 있는 성공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건 바로 아이들이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 지를 알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서 아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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