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TC

한국의 조기교육이 잘못된 이유

by Simon de Cyrene

아이가 없다. 결혼을 못했으니 아이가 없는 건 다행일 것이다. 결혼을 못했어도 아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만약 그랬다면 내 인생에 변수도 너무 많고 그 아이도 건강하게 자라기 쉽지 않았을 수 있으니까.


교육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수년간 사범대에서 교사가 될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젠 교육학을 조금 공부해야 되겠단 생각을 한다. 최근에 그런 시선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을 보게 된다. 이전에는 우리나라의 공교육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건 극성스러운 부모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범대에서 수년간 가르치면서 어쩌면 우리나라 교사들이 정말로 실력이 부족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교사들 탓을 하는 게 아니다. 사범대는 직업학교이고, 그렇다면 교사로서 필요한 지식도 충분히 대학에서 쌓아야 한다. 그런데 사범대 교수님들, 아니 어쩌면 대학들이 그러한 지식과 능력을 교사가 될 학생들이 쌓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있는 지를 잘 모르겠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런 환경을 조성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세 개 사범대에서 시간강사로 가르쳐 본 경험을 바탕으로 갖게 된 생각이다.


공교육은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부모들이 보내는 사교육시장은 어떠한가? 최근에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4살인 딸을 둔 지인과 식사를 하면서 사교육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미친 게 아닌가 싶더라.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하고 초등학교 때 고등학교 수학까지 마친다니. 그러는 이유를 고등학교 때 가면 수행평가 하느라 다른 공부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으로 든단 얘기에 당혹스럽더라. 그 지인은 아이들의 학습능력과 효율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조기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는데 그게 엄청나게 대단해 보였다. 본인도 서울대를 나왔고, 돈도 여유 있게 잘 버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고 있는 거니까.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이유가 이해가 안 된다. 이미 실시간으로 통번역을 하는 AI기기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걸 고려하면 지금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언어는 당연히 AI디바이스로 실시간 통번역이 될 것이 아닌가? 수학 역시 마찬가지. 트렌드는 계속 바뀌고 있어서 20년 뒤에는 어떤 직업이 어떻게 되어있을지를 아무도 모르는데 수학을 지금부터 그렇게 시키는 이유는 뭘까?


영어를 편하게 잘한다고 그 사람이 곧 성공하게 되는 건 아니다. 나는 무역회사를 다니는 아버지께서 지사에 나가셔서 8년 이상 해외에 살며 외국인학교를 다녔고 영어를 편하게 하는 편이지만 지금은 영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어를 '잘'하는 건 발음이 좋은 게 아니라 고급 어휘를 적시에 잘 사용하는 것인데, 그런 고급 어휘는 어렸을 때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표현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능력은 초등학교 때 길러질 수가 없다.


내 경험에 나처럼 어렸을 때 해외에 살다 온 사람들은 영어를 편하게는 하지만 고급스럽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에 본인이 영어가 좋아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깊게 판 지인들은 발음은 한국적이어도 고급스러운 표현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은 본인이 의지와 흥미를 갖고 공부를 해야 그것도 잘하는 것이지, 부모가 억지로 끼워 맞춘다고 해서 그 수준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


해외에 나가서 부모와 함께 3-4년 정도 사는 것 정도는 개인적으로 할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이는 해외에 나가서 살게 되면 다른 문화를 접하게 되고, 세계관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유치원이나 초등학생들이 성인이 된 세상은 지금보다 더 많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고, 그때는 TCK(third culture kids)인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5-8살, 그리고 사춘기 전체를 해외에서 보낸 나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그렇게 해외에 나게 살면서 아이를 키운 뒤에는 부모님들이 여러모로 힘이 들 수 있다. 이는 완전히 한국적인 부모님들은 다른 문화권의 사고방식을 탑재한 아이들의 사고체계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많은 갈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다. 전형적인 좋은 대학, 취업하기 좋은 학과, 안정적인 직장을 바라시는 부모님과 나의 성향, 내가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를 쫓는 성향은 계속 부딪혔고 부모님은 그로 인해 많이 힘들어하셨다.


그러한 갈등은 항상 힘들었고, 나는 유별난 애로 여겨졌다. 반면에 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7살 어린 동생은 전형적인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건 아마도 나는 가장 예민한 시기들을 모두 외국인 학교에 다니며 다른 세계관, 가치관을 접한 반면 동생은 4학년 이후로 한국에서만 살았던 영향일 것이다. 그만큼 교육과 환경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갈등을 겪었지만, 어린 시절을 다양한 환경, 특히 개인의 성향을 찾아갈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자란 것은 내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다. 그 덕분에 나는 힘들고, 넉넉하지는 않아도 내가 보람, 의미, 가치를 느끼지 않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있고, 내가 하는 일에 항상 진심일 수 있는데, 아직 결혼을 못하고 아이도 없는 상황에선 이만큼 큰 행복을 나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부족함 없을 정도의 밥벌이는 나를 찾아오는 구조의 기초는 만들어진 상황이다.


어렸을 때 영어와 수학을 시켜서 아이가 피부과, 성형외과, 치과 의사가 되면 행복할까? 그 길만 가서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할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우니까. 물론, 피부과, 성형외과, 치과 의사들 중에 진심으로 그 분야에 관심이 있고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그럴 수 있음에 행복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원해서 그 길을 간 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목표를 그렇게 설정해 놓고 경주마처럼 그 길을 갔을 뿐인 사람들이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건, 자신이 의미, 가치와 보람을 느끼고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을 할 때 느끼는 행복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돈, 권력, 명예가 주는 행복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그 권력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언젠가는 권력을 빼앗기게 되어있고, 명예 자체가 목표인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명예는 갖게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명예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명예로운 자리 나 결과를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명예 자체가 목표로 세팅된 경우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무리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명예는 내가 쟁취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주는 것이다.


돈이 주는 행복은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행복과 돈의 상관관계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위선자라고 생각한다. 돈은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돈과 행복은 분명 상관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우리는 최소한의 의식주는 해결되어야 그 위에 행복을 쌓을 수 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의식주를 해결할 수는 없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행복과 돈은 관련이 전혀 없다는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만큼은 사실일 수는 없다.


하지만 돈이 주는 행복의 유효기간은 굉장히 짧다. 내가 평생 먹어본 적이 없는 파인다이닝에 처음 가볼 때는 그 감동이 엄청나겠지만, 매일 한 끼 이상을 파인다이닝에서 해결한다면 그 음식에서 오는 효용감은 언젠가 정점을 찍은 후 계속 하강곡선을 그릴 것이다. 정말 비싸고 좋은 옷을 처음 입을 때는 내가 이 정도 옷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겠지만 그런 옷을 많이 갖게 되면 무감각해지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으면 그 효용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돈을 통해 얻는 효용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자극을 쫓게 만든다. 그리고 돈을 통해 얻은 효용감은 돈이 사라지는 순간 더 큰 불행으로 대체된다. 여기에 더해서 돈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주위에 붙는 사람들을 신뢰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돈을 노리고 주위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 명예, 권력, 성공은 일정 수준의 효용감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행복,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게 뭐냐고? 그에 대한 답은 없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 하루 일과 강의에 짓눌려서 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불행해졌고 이제는 시리즈도 연재하기 위해서 글을 하나, 둘씩 몸풀기 위해 이렇게 쓰는 순간이 행복하지만 누군가에게 글을 쓰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게 없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피겨에 수 억을 쏟으며 모으는 사람도, 음악이나 미술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그들이 틀려서가 아니라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사회로 나가기 전에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과정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렇게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에 맞는 일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 정도의 수준으로 사회와 경제가 발달된 사회에서는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고, 기회는 찾아오게 되더라. 이는 내게 맞는 일을 하게 되면 더 열심히, 잘하게 되는데 그렇게 열심히,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조기교육은 개인의 성향은 무시하고 부모가 강요하는 성공을 향해 아이들을 내몬다. 그러한 현상을 보면서 경주마를 채찍질하는 마부가 떠오르는 건 나뿐일까?


그러한 조기교육을 시키는 부모들이 맞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때 아이들을 영어와 수학으로 내모는 건 아이를 위해서 좋은 일은 아니다. 이는 현실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사회성이 좋아야 하는데, 유치원 때부터 학원으로만 내몰린 아이들은 사회성을 기를 기회 자체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의사로 돈을 잘 버는 사람은 결국은 영업을 잘하고, 고객들을 잘 대해야 하고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대인관계에 능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놀지 못하면 그런 능력치가 길러질 수가 없지 않은가?


인생에 답이 있다고 정해놓고, 각자의 개성은 무시하고 이뤄지는 조기교육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또 그 부모를 비난할 수 없는 건, 그 부모 역시 그러한 세계관 속에서 자라온 또 다른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갑갑한 마음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좋은 교사가 되는데 최대한의 도움을 주는 것뿐이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신께 맡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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