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TC

'사필귀정'의 원리

by Simon de Cyrene

'사필귀정'이란 말은 미신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모든 게 돌아서 바로잡히는 게 말이 되나? 사람들은 욕구와 욕망으로 가득한 상태로 살아가는데?"라고 생각했다.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한두 살씩 먹고, 다양한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하면서 '사필귀정'의 원리가 장기적으로는 작용할 가능성이 높겠단 생각이 든다.


사필귀정이 이뤄지는 건 정의를 구현하려는 관성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필귀정은 역설적이게도 모든 사람이 이기적이거나 최소한 자기중심적이고, 생존본능이 있기 때문에 이뤄진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도구로 사용하거나 망가뜨리기를 반복하면, 그 사람에게 적개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고, 그러한 부정적인 에너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축적되면 결국 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보복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 축적된 부정적인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누구도 그 사람을 보호하지 않으면서 사필귀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나의 이익을 위해서 권모술수를 쓰는 게 이익이 되는 듯하고, 정도를 가는 게 어리석어 보이지만 힘들고 피곤하고 지금 당장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정도를 가는 게 더 이익이 될 수 있다. 권모술수를 처음부터 엄청난 일에 쓰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이 정도는 누구나 하는 것이고 상식적인 거야'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의 술수를 쓰고, 그런 꼼수는 당연히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일에서 그러기 시작하는 습관이 들면, 사람들은 권모술수를 쓰는 것에 무뎌지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서부 턴가는 그걸 당연시 여기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의사의 비리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사고, 의뢰인에게 돈을 받고 변호는 제대로 안 하는 변호사들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분명히 처음에는 작은 일, 티가 나지 않는 일에서 스스로 '타협'이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라면서 정당화시키다 보니 그런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를 가는 건 쉽지 않다. 불안하기 때문에. 예를 들면 작년 하반기에 나는 한 기관에 내 전공과 딱 맞는 채용공고가 나서 지원을 했는데 그 뒤로 주위에서 온갖 유혹들을 다 하더라. 우리 전공에서 입지가 확고하신 지도교수님께 기관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하라는 조언부터, 그 기관에 내가 아는 시니어분께 연락을 드리라는 말까지. 학계에서는 박사들의 채용은 결국 인맥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돈다. 실제로 이 채용과정에서도 누가 어디에 어떻게 전화를 엄청 많이 한다는 얘기가 내 귀에도 들려왔다. 그러다 보니 그런 말들에 전혀 혹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성향상 차마 그러진 못하겠더라.


나는 '인맥'을 통해 일정 부분을 확인한 뒤 이뤄지는 경력직 채용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는 것을 넘어서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로지 인맥만으로 사람을 채용해서는 안되고, 능력치가 안 되는 사람을 누구의 제자, 동생, 자녀라는 이유로 채용하는 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특히 일정 수준 이상의 경력직이 아닌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지원자들 간에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진 않기 때문에 인맥을 통해 채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5년 이상의 경력이나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을 채용하는 경우에는 서류와 면접만으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5년 이상의 경력자를 채용하는 건 들어오자마자 1인분 이상의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거나 아예 중간관리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자리에 잘못된 채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가 굉장히 크지 않은가?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력직 채용과정에서 이전 직장에 전화를 해서 평판조회를 하는 것은 그러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내가 회사에 다닐 때 우리 팀장님께서 평판조회를 위해 걸려온 전화에 웃으시면서 '허허허, 저라면 그 사람 채용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나는 바로 앞에서 본 적이 있다.


이와 달리 '인맥'을 통해서 채용을 진행할 경우 그 사람을 최소 몇 년간 함께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채용이 진행된다. 이는 사람들이 '인맥'이라고 부르지만, 추천을 통해 이뤄지는 채용과정은 서류와 면접에 '직접경험'이라는 요소가 가미된 성격을 갖는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맥을 통해 누군가의 채용과정이 진행될 경우, 그 사람에 대해서는 서류에서 드러나는 것 이상의 것들을 일단 신뢰하고 갈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외국기업들의 경우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아예 투명하게 내부 직원들이 주위 사람들을 추천하는 referral제도를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Google에서 인턴으로 있었던 2014년에는 내부 직원이 추천한 사람이 서류와 면접전형을 모두 거쳐서 최종적으로 채용이 되면 추천한 직원에게 보너스를 주기도 했다.


박사급 연구원이나 교수임용과정에서는 이러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연구내용 발표, 강의 시연 등의 과정을 둔다. 하지만 그 역시 한계는 분명하다. 그 사람이 1시간 정도의 강의 시연을 잘했다고 해서 한 학기 동안 진행되는 수업을 잘 끌어가리란 보장도 없고, 나와 있는 연구성과가 곧 그의 연구역량을 보여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보니 박사급 연구원이나 교수임용과정에서는 검증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임용하기 위해 다각도로 검증을 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확인하는데, 그 과정에서는 당연히 임용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경로가 많은 지원자가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는 이런 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런데 나도 작은 기업에서 채용과정에 참여하고, 채용된 사람들과 일하는 과정에서 서류와 면접만으로 사람을 뽑는 게 얼마나 조직에 위험할 수 있는 지를 경험하면서 인맥을 무조건적으로, 아예 배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지를 온몸과 마음으로 경험한 뒤에는 인맥을 전면적으로 배제한 채용을 긍정적으로만 여기지는 않는다. 경력직이나 관리자를 한 번 잘못 채용하면 그로 인해 조직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경험을 통해서 추천을 받아 채용과정을 거치는 것과 연락을 해서 부탁을 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인맥이 있어서 추천까지 이뤄지더라도 그 뒤의 검증과정은 당연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전화를 거는 것은 결국 최소한의 검증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리고 전화를 거는 것은 결국 나의 욕구와 욕망을 성취하려는 욕심이 있기 때문인데, 한 번 해봤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그런 욕심에 한 번 잡아먹히고 나면 그다음에 또 그러는 것은 더 쉬워진다. 그래서 나는 전화해 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했고, 내가 아는 분께 연락을 따로 하지도 않았다.


정도를 가겠다는 고결한 마음만 갖고 그렇게 결정한 것은 아니다. 주위의 수많은 사례들을 보면,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서 자신에게 이익이 생기면 부탁을 한 사람은 부탁을 들어준 사람에게 빚을 지게 되더라. 그게 싫었다. 누군가에게 빚을 진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에게 일정 영역에서 종속된다는 건데, 그러고 싶지 않아서, 나 자신에 대한 것은 어떤 영역에서든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싶기도 했기에 빚을 지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선택했다.


작은 권모술수도 위험한 것은 그 빚 때문이다. 처음에는 꼼수를 쓰는 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꼼수를 쓴 사람은 그걸 알게 되는 사람이나 꼼수에 관여해서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는 빚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작은 연결고리는 많은 경우 주먹만 한 눈덩이를 계속 굴리다 보면 거대한 눈사람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권모술수를 저지르는 시작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권모술수가 자신에게 입힌 피해에 대해 보복함으로써 정의가 구현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보복을 한 사람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그 또한 자신의 이익을 권모술수를 쓰면서 추구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공격했을 수도 있다. 그 역시 어느 순간이 되면, 자신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어느 순간 넘어지게 될 수도 있다.


세상의 이치가 이렇기에, 지금 당장 손해를 보고 억울하더라도 일단은 꾸역꾸역 정도를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이익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주위에서는 조금만 타협하라고, 네 생각을 바꾸라는 게 아니라 굳이 목소리 높여 말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그건 연구자로서의 태도가 아니지 않나. 내가 거룩해서도, 정의로워서도, 잘 나서도 아니고 지속가능한 이익을 위해, 나는 최대한 FM적인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26년도 그럴 수 있기 위해 몸부림치며 노력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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