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첫 제목은 '강남 아파트를 산 지인이 부럽지 않은 이유'였다. 멈칫했다. 정말 하나도 부럽지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부러운 면이 있다. 곧 건축된 지 40년 되는 아파트에 월세로 사는 데 왜 그가 부럽지 않겠나? 강남에 수십 억으로 평가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도 부럽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자가를 갖고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그들의 삶을 내 것과 바꾸겠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해서는 확실히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그들이 부러운 건, 내가 지금 하는 일들을 하면서 아파트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인, 그리고 그 외에 집이 있는 지인들의 삶을 내 삶과 바꿔야 한다면 나는 지금 내가 사는 삶을 선택하겠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내겐 자유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 몇 번 했던 말이지만 나는 보람, 의미, 가치를 느끼지 않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있다. 내가 하는 일들이 모두 버겁지만 진심이 아닌 일은 하지 않고 있다. 그걸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학술대회에서 발제를 들으시는 분들도 모두 느낀다. 이성은 차갑기만 한 줄 알았는데 내 발제와 토론을 들으면 뜨거운 이성이 있다는 걸 느낀다는 말도, 너무 격양되어서 목소리가 떨리는 건 회의에서 처음 듣는단 말도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서 나는 돈을 잘, 많이 버는 사람들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맞춰야 하는 수업시간과 가끔씩 있는 회의 외에는 누구도 내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를 간섭할 수 없다. 내가 운동하고 싶어 하는 시간에 운동하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이 일어나며, 잠들고 싶은 시간에 잘 수 있다. 지난주에는 A형 독감에 걸렸는데 일주일을 어떤 마음의 거리낌이나 밀리는 일 없이 온전히 쉴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의 이런 삶의 대가는 돈이다. 누군가에게 맞춰 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오롯이 내 능력치에 대해서만 대가를 받기 때문에 큰돈을 벌진 못한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그만큼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돈을 받는다는 건 상대를 위해서 그만큼의 가치를 준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문성이 매우 높거나 상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많이 사용해야 한다.
집을, 그것도 강남에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집을 유지하면서 본인의 생계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살아낼 수 있는 수준의 돈을 지속적으로 벌어야 한다. 중개업을 해서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수수료를 자동으로 받거나 저작권료를 상당한 수준으로 받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중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시장을 따라가며 변화를 가져와야 하고, 항상 불확실성과 싸워야 하며, 자신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직원들과 감정싸움도 할 수밖에 없다. 사업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쉬는 시간 없이 사고가 돈을 계속 버는 것에 집중되어 있게 된다.
높은 연봉을 받는 회사원들은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관리하는 팀원들은 다독이고, 위에는 잘 보여야 하다 보니 위, 아래에서 치이는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한 지인은 우리나라에서 연봉 수준이 높을 때는 다섯 손가락, 낮을 때도 15위 안에는 있었던 회사에서 평생 일하다 최근에 퇴직을 하셨는데, 그 지인이 사는 집은 30대에서 40대, 40대에서 50대로 가면서 강남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봤다. 그리고 퇴직을 얼마 앞두지 않으신 시점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셨던 기억이 나 퇴직하신 지금은 그분께 연락을 드리지 못한다.
대형로펌 파트너인 한 지인은 최근에 '나는 일반 회사원이 평생 벌 돈 이상은 이미 번 것 같아서 사실 이제 돈 자체에 대해서는 큰 욕심은 없어'라고 하더라. 그가 오만하다고 생각하지도, 부럽지도 않았다. 그가 지난 10여 년을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렇다. 주니어일 때 저녁 12시에 '칼퇴‘한다고 말하고, 사무실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며 퇴근하기를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 번 하면서 번 돈이다. 그렇게 자신의 몸과 마음, 시간을 갈아서 최선을 다한 사람은 그 수고를 인정해 줘야 한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최선만 다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도 시장의 흐름이 맞지 않는다면 큰돈을 벌기는커녕 투자한 돈을 다 날릴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선호가 명확해진 뒤에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사람들의 선호가 명확해졌다는 건 선호를 만들어낸 선두주자가 이미 존재한단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의 선호, 유행, 시장의 흐름보다 앞서 있어야 하는데 그걸 항상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젊었을 때 그런 흐름을 몇 번 맞췄던 분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감을 갖고 투자를 했다가 흐름을 맞추지 못해 벌었던 돈을 탕진하는 사례는 AI에 몇 번만 물어봐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금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단 것이다. 몇 번의 성공을 거두며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겠다는 사람들이 20-30년 뒤에도 더 큰 성공을 거둘 확률보다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유지도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이는 시장의 흐름이 1-2년 안에 바뀌고, 변수가 많으며, 경쟁자도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그 흐름을 항상 완벽하게 잡아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1955년에 포춘 500 리스트에 있던 기업 중 2021년에도 순위 안에 있었던 기업이 52개뿐이라는 통계에서도 알 수 있다. 그중에 생존한 기업들은 주로 에너지, 자동차 부문에 있었다고 한다. 대기업들도 이 정도의 변화를 경험했다면, 작은 기업들은 더 많은 변화와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1950년대에서 2020년대까지의 발전과 변화 속도보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더 빠르고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성공해 있는 사람들이 내리막을 가게 되는 속도도 더 빠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소유하고 있는 집이나 자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비용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당한 수입이 있다고 해도, 그 수입이 줄어드는 순간 자산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자산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집을 강남에 한 채만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집을 팔 때까지 그 집의 가격은 본인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거래가 한 번만 일어나도 특정 단지의 아파트 가격이 그 가격으로 평가된단 점을 고려했을 때 그 사람이 팔 때의 가격도 그러하리란 보장은 없다. 지난 20년간 지역 별로 아파트 가격 편차와 변동폭이 얼마나 커졌는 지를 보면 이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이 부럽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나도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수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벌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내 몸값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일정 수준의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 즉 대가를 놓고 고민을 하면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계산과 상상을 하다 보면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벌고 유지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한 자산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에너지와 돈을 사용하는 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존중하고, 인정한다. 내가 그들처럼 돈과 자산에 상당한 수준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그들만큼 돈을 벌었을 자신이 없고, 그들이 얼마나 인내하고 버텨내면서 이뤄낸 성과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성과를 부러워하거나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내가 지금 갖고, 누리고 있는 것들을 희생하지 않고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그들이 무조건 부러울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렇게 쉽고 간단한 것은 없다.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번 것으로 인해 지불하게 되는 대가가 분명히 있다. 어느 연예인이 왜 유명하지는 않고 돈만 많이 벌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왜 다른 연예인들에게 공감을 받았는지를 우리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도 그 대가를 최대한 치르지 않으면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방법을 놓고 한 달에도 몇 번씩 고민을 해 보는데, 세상에 그런 완벽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은 없더라.
결국은 어디에선가 타협을 해야 하고, 우리가 아무것도 잃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다르기에 이 문제에 정답이 있을 수는 없다. 이에 대한 개인의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 또한 우리가 모든 걸 경험해 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으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괜히 인생이 어렵다고 하겠나?
20-30대에 시행착오를 거쳐서 40대 초중반이 된 지금, 내가 추구하는 균형점을 확실히 알게 됐다. 집을 가진 지인들을 30대에 부러워했던 것보다 지금은 덜 부러운 건, 내게 맞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왔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이 부럽지 않다는 게 아니다. 돈 버는 데 사용하지 못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결과로 내가 갖게 된 것이 적어도 내겐 돈 보다 소중할 뿐이다. 돈은 정말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대체하진 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