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TC

아름다움은 결핍과 실패에서 나온다

by Simon de Cyrene

나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큰 부족함도 없이 자랐다. 내 삶에 결핍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부모님의 칭찬과 격려였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기준이 굉장히 높으셨고, 칭찬에 인색하셨으며, 당근보단 채찍을 드시는 스타일이셨다. 그렇다고 해서 두 분이 나쁜 부모인 것도 아니다. 두 분은 자녀들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다만, 그 사랑이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다 보니 항상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보다 공부를 못해도, 내가 하지 않는 실수와 잘못을 해도 품어주고 사랑받고, 칭찬받는 친구들을 보며 '저렇게 자라면 구김살 없이 좋은 사람으로 자라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물질적으로 큰 부족함은 없었지만, 내 주위에는 90년대에도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재력을 갖춘 조부모님을 둔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또한 부러웠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해외에서 오래 살았지만, 결국은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대학을 가야 했던 것으로 인해 부모님을 원망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내가 자란 환경에 감사하게 된다. 다양한 환경을 거치면서 성장한 덕분에 나보다 훨씬 여유롭고 부자인 친구들도 많았지만, 반대로 정말 힘든 성장과정을 겪은 친구들도 내 주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 안에서 나의 결핍도 느꼈지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인지도 알게 됐다. 그리고 나보다 힘든 환경에서도 본인의 힘으로 일어서는 친구들을 보며 절대로 오만해질 수도 없었다. 또한 엄격한 부모님의 아들로 자라다 보니 칭찬과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되기도 했다.


이러한 '한 끗' 차이는 내게 일반적인 기준으로 성공을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내가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데는 분명 내가 성장한 환경이 큰 도움을 줬지만, 그 이후에 다른 시도를 하는 데 있어서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게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고, 그 결과 내 30대의 대부분은 실패로 채워졌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보니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수험생활에 집중하지 못했고, 학원 강의를 듣는 비용이 부담되어 제대로 시험을 준비하지 못해 내가 원했던 시험에서 계속 낙방했던 것이다.


실패라고 생각했고, 좌절했으며, 그로 인한 상처는 내 안에 깊게 새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면서 나는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을 품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봤기 때문에 나는 누구의 아픔과 상처도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게 되었고, 내가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이 듣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힘들고, 실패해 봤으며, 어둠의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터널을 수년간 지나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좋은 것만 접하며,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르더라. 내 주위에서 너무나도 많은 사랑을 받고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경로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을 쉽게 평가하고 판단한다. 당연히 자신들이 그러고 있는 것은 모르면서 하는 일이다. 그들은 결과에 대해 원인을 단정했고, 자신의 기준에서 옳고 그름이 분명했으며, 자신의 기준에서 다른 것은 틀린 것으로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맞추지 않는 사람은 밀어내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그게 불편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경향성을 가진 경우도 적지 않다.


그들이 나쁘거나 잘못되었단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들이 불편했지만, '좋은 사람인데도 왜 저렇게 바라보고, 말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더라. 자신이 경험한 세계도, 고민을 해본 영역도, 느껴본 감정도 제한되어 있다 보니 그들의 기준은 엄격하고, 그들에겐 항상 정답이 있으며, 자신과 다른 것은 이해하지 못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나?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 중에는 굉장히 똑똑하고 누가 봐도 완전한 엘리트들도 많이 있는데, 이는 머리가 좋고 나쁨이 아니라 자라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 보게 되는 시선과 시각,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범위와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패와 결핍은 필연적으로 사람이 사람과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보게 만든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내게 현실적으로 부족함이 있으니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보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다 보니 실패와 결핍을 경험한 사람은 더 어두운 곳, 잘 보이지 않는 곳도 혼자 탐험하게 된다. 그 결과 실패와 결핍을 경험해 본 사람은 자신의 인생은 물론이고 세상을 가지고도 요리할 수 있는 재료를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다.


반면에 성공만 하고, 좋은 것을 누린 사람들이 경험하고 바라본 영역은 눈에 보이는, 그들이 가진 것이 전부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항상 쟁취했기 때문에 다른 영역이나 길을 살펴보거나 경우의 수를 따져볼 필요도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항상 성공했기 때문에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리다 보니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알 수도 없기에 자신의 인생과 세상에서 요리할 수 있는 재료는 많이 가질 수가 없다.


배우들 중에서도 잘생기거나 예쁜 것은 분명한데 매력적이지는 않은 사람들이 있고, 외모는 평범하지만 연기와 삶에서 매력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성공하고 좋은 것만 누린 사람들의 삶은 예쁘지만 아름답진 않은 경우가 많고, 사람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그 이면에 여러 결핍과 실패들이 있었던 경우가 많다.


실패와 결핍이 좋고, 그것을 반드시 추구해야만 한다는 게 아니다. 그리고 실패와 결핍으로 인해 무너지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배우의 외모가 훌륭하면 일단 조연으로라도 데뷔를 할 기회가 더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많이 받고 실패를 하지 않으면 조건적으로는 평균 이상의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외모가 평범한 배우들이 빛을 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평범한 외모를 가진 배우들에게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덜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패와 결핍을 경험한 사람들이 빛을 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거나 기회가 덜 주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최근에 연기자로 오랫동안 인정받고, 사랑받는 배우들 중에는 외모나 연기가 평범해서 상당한 기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외모가 아무리 훌륭해도 반짝하고 사라지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외모만 가진 사람들은 금전적 성취는 이뤄도 훌륭한 배우로 빛을 보지는 못한다. 예쁘긴 하지만 아름답지는 않기 때문에 그렇다.


실패와 결핍을 경험하고 이겨내는 과정은 굉장히 고통스럽다. 그 과정에서 누구나 한 번 이상은 극단적인 생각도 해보게 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막은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내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부모님의 삶은 어떨까?'라는 생각이었다. 사랑을 잘 표현은 하지 못하셨지만 자신들의 모든 것을 쏟아서 준 아들이 세상을 떠난다면, 부모님은 그 뒤로 지옥 속에서 사셨을 것이다. 그 생각 때문에 나는 잘 마시지도 않는 술을 마시고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나의 실패와 결핍, 심지어 그러한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경험까지도 내게는 너무나도 좋은 일이었다. 지금의 나는 죽는 것이 너무, 너무 두렵고 나는 오랫동안 살고 싶다. 그리고 그 삶을 내가 보람,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 것들을 하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무엇인가를 주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 내가 수많은 실패와 일부의 결핍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생각이다.


내 삶은 많은 상처의 흔적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봐도 내 삶이 예쁘다고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들 덕분에 나는 과거보다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고,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은 예쁘진 않지만 아름다워졌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내가 지나갔던 것과 같이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지금 가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해서 먹고 살지도 모르겠고, 인생이 끝난 것 같단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건 힘든 자신을 폄하하지 말고, 힘든 것을 힘들어하며 울고 싶을 때는 울면서도 끝까지 버티고,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으시라는 것이다.


마치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갑자기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어둠 속에 있다 보면 눈이 적응해서 주위에 있는 것들이 보이듯이 그 시간을 인내하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이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내가 버텨내며 해야 할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하다 보면 기나긴 터널에도 끝이 있고 저 멀리서 조금씩,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그렇게 삶을 살아낸 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더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