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TC

돈을 버는 것의 기초

by Simon de Cyrene

돈을 버는 것의 기초는 "내가 이것을 통해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할 때 내가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부터 고민하니까.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는 지부터 생각해야 한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당신은 어떤 경우에 돈을 쓰는가?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해서 돈을 쓴다. 밥을 사서 내가 먹기 위해서, 옷을 사서 내가 입기 위해서.


그런데 단순히 먹고, 입는 것을 팔아서는 큰돈을 벌기가 힘들다. 그 정도 수준에서는 쓰는 비용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큰돈을 쓰는 지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어떤 경우에 비싼 밥을 사 먹는가? 연인과 '좋은 분위기'에서 밥을 먹기 위해서, 가족이 특별한 날에 '특별한 느낌'을 내기 위해서 우린 높은 비용을 지출하며 밥을 먹는다. 우리가 높은 비용을 낼 때는 재화 이상의 가치, 기분, 시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것들은 어떠한가? 사람들은 왜 같은 크기의 차에도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수억 원의 돈을 더 지불하고 사는가? 자동차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러 성능을 따지며 그 성능을 누리기 위해 그 비용을 지불한다. 그런데 또 많은 사람들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남들의 '시선'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특정 브랜드의 자동차를 산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벤츠 A클래스는 벤츠로 여겨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A클래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건 그들이 그 브랜드를 통해 남들의 시선과 평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밥 한 끼를 사 먹을 때 몇천 원도 맛이 없는 식사에 사용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라도 더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식을 살 때는 최소한 우리가 주식을 사는 기업의 고객은 누구이고, 그 기업은 고객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지를 알아보고, 많은 사람들이나 기업이 그것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될 때 그 회사 주식을 사야 한다. 이 정도 정보를 알아보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조차 알아보지 않고 주위에서 들은 썰을 바탕으로 주식을 사는 것이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지를 명확히 한 뒤에는 '사람들이 그것을 원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해야 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좋은 걸 파니까 사람들이 당연히 살 거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엄청나게 고급진 재료를 쏟아부어서 순대국밥을 만들어서 10만 원에 판다면 사람들이 그걸 사 먹을까? 호기심에 한 번쯤 사 먹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순대국밥에 그 비용을 지불하진 않을 것이다. 이는 사람들 머릿속에는 순대국밥에 대한 적정비용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단 것을 너무 쉽고, 간단하게 알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기업들이 하는 "시장조사"라는 것이 결국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우리가 무엇을 줘야 돈을 벌 수 있는 지를 알아보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을 하거나 자신이 취업을 하려고 할 때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유망하다는 아이템이란 말 몇 마디에 혹해서 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벌이는 사람, 회사들이 필요로 하는 능력치는 갖추지 못했으면서 취업이 안된다고 힘들어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모든 영역이 100% 그러한 것은 아니다. 한 영상에서 선배 가수가 후배에게 우리는 자기 멋에 빠지면 안 되고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지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봤다. 개인적으로 그 말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대중'예술이란 면에서 가수들은 대중이 원하는 바를 일정 부분 충족시켜줘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대중'예술'이란 면에서 개인의 캐릭터가 음악에도 들어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중'에 집중하는 사람은 음악 기술자가 되는 것이고, '예술'에 집중하는 사람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음악 기술자는 철저히 대중에게 맞추며 돈을 벌지만, 예술가는 자신이 세상에 내놓는 게 운이 좋으면 많이 팔리지만 운이 나쁘면 철저히 외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자신의 것을 표현하는 것 자체에서 돌아오는 만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남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을 버는 게 힘든 것은 그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해서는 안되고, 남에게 나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돈을 주는 것도 직원들이 회사에서 원하는 것을 하기 때문이지, 그 사람이 객관적으로 엄청난 능력치를 갖췄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능력치를 갖춘 사람이라도 회사에 들어오면 그 회사에서 원하는 바에 맞춰서 일을 해야 하고, 그러기 싫다면 회사를 나가면 된다.


이 구조가 역전되는 경우가 있다. 많은 회사들이 원하는 사람들의 경우 회사에 그렇게 맞추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많은 회사들이 원하는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른 회사에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다른 회사들이 그렇게까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기본적으로 '회사'라는 것은 한 사람이 빠져도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조직 안에서 일할 때는 그 조직이 원하는 바를 일단은 맞추며 지내는 게 맞다. 조직에서 돈을 주는 건 사람들이 맞추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상명하복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첫 직장에 들어갔던 18년 전에도 '사내구성원이 고객'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회사원이 부품이라면, 좋은 부품이 들어간 자동차가 성능이 좋은 것처럼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 회사가 성과를 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회사들은 어떻게 하면 능력치가 뛰어난 사람들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사내복지와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 회사들의 입장에서는 뛰어난 인재에게 무엇을 줘야 할지를 고민해야 그런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자본의 흐름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처럼 어떤 관계에서든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줘야 자신이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자신이 주고자 하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할 지를 현실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산다. 불평불만을 하나 가득 안은 상태로.


무엇인가를 갖고만 싶어 하고 아무것도 주지는 않으려는 사회가 되어가는 듯해서, 그게 너무 안타깝다. 그게 자본주의의 본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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