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매우 훌륭한 친구의 청첩장 모임이 있었다. 신학을 전공하고, 신대원까지 가서, 잠시 전도사를 하다 그만두고 완전히 다른 학문을 해서 교수가 된 친구다. 박사학위도 빨리 받았고, 박사를 받자마자 교수로 임용이 됐으며, 학교를 옮겨 우리나라에서 누가 들어도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돌아갔지만 빠르게,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 냈다.
나는 그와 상반된 길을 가고 있다. 그 친구보다 나는 네 살이 많고,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을 졸업했고,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의 로스쿨을 나와 그 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지는 못했고, 박사과정에서 본 교수로서의 삶과 대학의 현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내 전공과 공부는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교수 커뮤니티에서의 관계들과 학원처럼 변해버린 로스쿨을 보며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졌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다양한 일을 프리랜서로 했다. 내 전공의 연구도 할 기회가 감사히 있었고, 이대로 개인연구자로 살며 프리랜서로 살다 수입이 괜찮아지면 법인을 세우고 프리랜서로 사는 것도 방법이겠다 싶었다. 수입도 엄청나게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잔고가 조금씩 늘어날 정도는 벌었다. 그 과정에서 방향성이 정리되어 올해는 일과 수입을 줄이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기 위한 준비를 하려고 한다.
그 친구와 나는 매우 다른 길을 걸었다. 둘 다 방황도 했고, 길을 틀기도 했지만 내가 돌아온 길이 조금 더 길고, 실패도 더 많았다. 그 청첩장 모임에서 그 친구의 교육관을 들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그 친구가 틀렸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 친구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알고, 그 친구가 얼마나 훌륭한지도 나는 너무 잘 안다. 그렇기에 그 친구가 정말 좋은 교수가, 프로가 될 것이란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계 안에서 힘들었을 상황을 오로지 실력으로 직진하며 뚫고 나온 친구다. 나는 그를 존경하고, 인정한다.
그런 그 친구는 학생들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다. 그 친구는 이메일 하나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하고, 기본이 안되어 있는 학생들은 들을 귀가 있는 경우에는 직구로 할 말을 해줘야 하며, 듣지 않을 게 분명한 학생들에게는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 친구는 그렇게 해도 된다. 이는 그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잘 놀기도 하지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신에게 엄격하게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가 편하지 않았다. 왜 그런 지를 며칠간 고민했다. 그리고 어제 흑백요리사 마지막 편을 보고, 오늘 아침에 뒷부분을 돌려보면서 왜 그런 지를 알았다.
그 친구는 요리괴물로 불린 이하성 셰프와 같은 사람이다. 그의 서사가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하성 셰프가 미국으로 넘어가 자리를 잡기까지 얼마나 힘든 순간들을 많이 버텨내야 했을까. 사람들은 이하성 셰프가 방송에서 하는 말들을 보며 오만하다고 평가하고 비판을 넘어 비난도 하지만, 그건 성공한 사람들은 좋아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것을 드러내지 않기를 바라는 이상한 심리에서 발현된 것이다. 그렇게들 자기 PR시대라고 말을 하면서... 그가 요리사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길은 거칠고 험했지만, 그는 자부심을 가질만한 능력과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을 결승에 가기까지 증명해 왔다. 나는 직업인은 그 정도의 자존감은 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에서, 선생은 다르다. 연구자나 교수는 그래도 된다. 자신이 전공한 것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그의 업이니까. 자신의 전공에 대한 자존감과 확신, 주관이 없는 연구자, 교수자는 자신의 주장과 지식에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 나도 연구자로서의 영역에서는 그렇다. 내가 가장 나이가 어리고, 내 분야에서 20년 넘게 연구해 오신 분들이 수두룩한 회의에서도 나는 가감 없이 내 의견을 말한다. 그 안에서는 계급장이 없어야 하고 나는 내 주장에 확신이 있기 때문에.
'프로'를 길러내는 교수도 엄격해야 한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려면 능력치가 뛰어나야 하니까. 그 학생을 위해서라도 엄격해야 한다. 학문의 세계라는 게, 느슨해지거나 허점이 보이면 살아남지 못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으니까.
하지만 교수가 아닌 '선생'이라는 측면과 학부에서의 '교육'이라는 차원은 조금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선생이란, 먼저 길을 가본 사람이다. 한자로 선생은 먼저 살아본 사람을 의미하지 않나? 그렇다면 선생이라는 차원에서의 교수는, 프로페셔널함도 가르쳐야 하지만 길을 가는 법도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직업학교가 아닌, 학문의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교양 수준을 배우고, 현실적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 상당수, 어쩌면 대부분이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할 확률이 더 높은 학부와 직업으로서 전문인을 만들어 내야 하는 대학원은 달라야 한다.
교육은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주는 것"으로 정의된다. 대학원에서의 교육은 지식과 기술에 초점이 더 맞춰진 트레이닝에 가깝다면, 학부에서의 교육은 그 비율에서 인격을 길러주는 것이 더 높을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학부에서의 교육은 개인에 따라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데 초점을 두는 비율과, 인격을 길러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비율에 차이가 있어야 하며, 둘 사이에 균형이 잡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공을 살려 프로가 되지 못할 친구들도 품어줄 수 있어야 한다. 학부에서 전공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전공의 직업인으로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수업을 마치고 나면, 성적을 잘 받는 친구들이 더 예뻐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학기를 마치고 나면 눈에 더 밟히는 것은 시험을 잘 보지 못하고, 좋지 않은 학점을 받은 친구들이다. 내 경험상 그들 중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못함에도 보통은 이유가 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로스쿨에 있을 때 시험기간 2주 전에, 얼마 전에 송년회를 하자며 통화한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그 뒤에는 어떤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 그리고 로스쿨 2학년 2학기에 직업인으로서 변호사는 나와 맞지 않는단 생각이 들면서 '그러면 나는 앞으로 뭘 해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지, 나는 로스쿨에 왜 온 거지?'라는 생각에 휩싸여 학교생활과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교수님들 중 누구도 몰랐겠지만, 나는 그렇게 방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정과 상황이 있는 친구들이 있다. 그 사정, 상황과 무관하게 좋지 않은 학점을 받으면 힘든 건 당연하기에 그 아이들이 항상 신경이 쓰인다.
'선생'이라면, 그들 중 품을 수 있는 친구들은 품어야 한다. 공부를 열심히, 잘하는 친구들은 어차피 뭘 해도 잘할 친구들이고, 내 경험상 그들에게는 내가 다가가지 않아도 그들이 먼저 다가온다. 반면에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 든 학생들은 위축되거나 교수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선생'이라면 그들 중 다가가도 거부하지 않고, 품어줄 수 있는 친구들은 품어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명문대 교수가 된 그 친구와 나는 완전히 다르지는 않다. 나도 로스쿨에서 진행하는 내 수업에서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학부 수업에서도 기본은 지킬 것을 엄격하게 요구한다. 다만, 그 친구와 내가 학생들 중 일부를 바라보고 접근하는데 차이가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우리가 걸어온 길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 친구는 가던 길을 틀었기에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서 그 자리까지 갔기에 학생들에게도 자신이 가 본 기대로 요구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자의가 아닌 실패로 인해 본의 아니게 길을 멀리 돌아가게 된 나는 내가 걸어온 길 위에서 학생들을 보기에 실패한 친구들이 눈에 밟힌다.
다시 본 영화나 영상은 99.9% 돌려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흑백요리사에서 최강록 셰프의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울림이 있었다. 그는 어떻게 그런 말과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는 처음부터 요리를 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국외대에서 스페인어과에 진학했다 중퇴를 하고, 요리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30대 중반에 마스터셰프 코리아 2를 우승하기 전까지 창업을 했다 폐업하고, 빚을 갚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회사원으로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만 보고, 요리로 가장 높은 자리에 가는 것만을 목표로 살아온 이하성 셰프와 그의 글은 달랐다. 그리고, 다른 길을 걸어왔기에 두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걸어온 길에서 내가 믿는 신을 수만 번도 더 원망했고, 극단적인 생각도 수백 번도 더 했다. 지금도 내 삶은 누군가와 상대적으로 비교했을 때 여전히 미완성이고, 나는 가진 게 많지 않다. 한국에서 평균연봉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첫 직장에 계속 다니는 회사동기들, 그리고 대형로펌에서 지분을 가진 파트너로 있거나 독립해서 자신의 사무실을 잘 운영하고 있는 로스쿨 동기들에 비하면 시간강사이자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 나는 미생에 가깝다. 상대적으로는 물론이고 절대적으로도.
하지만 이제는, 나는 내가 그 길을 걸어왔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도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갈 것이다. 내가 그 길을 걸어왔기에 나와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단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걸어온 길 덕분에 나는 내가 믿는 종교에서 가르치는 더 낮은 곳, 더 힘든 곳을 보며 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삶이 물질적으로는 궁핍하더라도 정서적으로는 더 풍성할 수밖에 없단 것을 알기에 나는 다시 선택을 하더라도 내가 걸어온 길을 갈 것이다. 앞으로도, 이 길 위에서.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