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교회, 교회를 우상으로 만들다

by Simon de Cyrene

대형교회의 기준은 사람마다, 단체마다, 교회마다 다르다. 가장 보수적으로 '대형교회'를 분류하는 곳은 등록교인이 천 명이 넘으면 대형교회라고 하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만 명을 기준으로 삼더라. 보수적인 기준에 의하면 나는 네 개의 대형교회에 다녔고, 지금도 대형교회에 다니고 있다. 만 명을 기준으로 하면 나는 두 곳의 대형교회에 출석했다. 명성교회와 온누리교회.


명성교회는 초등학교 시절, 지금처럼 거대한 건물이 세워지기 전에 붉은 벽돌의 본당만 있을 때 다니다 아버지께서 주재원으로 해외에 나가시면서 아버지를 따라 해외로 갔고, 성인이 된 이후 군대에 가기 전에 부모님께서 출석하시던 교회 청년부에서 상처를 받고 제대 후에는 교회를 따로 다니겠다고 선포한 나는 온누리교회 본당이 있는 서빙고나 양재가 아니라 허리우드 극장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던 공동체에 정착했다.


그 뒤에는 온누리교회가 공동체들을 통폐합하면서 내가 속했던 공동체가 양재로 옮기면서 집에서 너무 멀어지기도 했고, 그 시점에 내가 속했던 공동체의 방향성에 물음표가 생겼다 보니 고등학교 동기가 출석하던 교회에 등록했다. 그 교회도 교인이 1,000명이 넘고 아는 사람들은 이름을 다 아는 교회이기에 누군가는 대형교회로 분류할 것이다. 그러다 그 교회의 방향성에 공감도, 동의도 못하겠는 일들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버티던 중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잠시 교회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1년만 떠나 있겠다고 했던 것이 군대선임이자 과선배인 형이 와보라고 했던 지금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다. 내가 왔을 때만 해도 우리 교회는 등록교인이 많아야 300-4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1,500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올 때는 대형교회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일부의 기준에서는 대형교회가 되어버렸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해외에 나갔을 때는 4-5 가정이 모이는 가정교회에서 예배를 시작해서 그 교회가 수백 명이 되는 교회가 되었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기숙사 학교에 다닐 때는 비가 새는 닭장을 개조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다 2층 건물로 건축을 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의도했던 건 전혀 아닌데 삶의 궤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교회를 다양한 곳에서 출석하며 경험했다.


그중에 내게 가장 공동체로서, 교회로서 기억되는 교회는 해외에 나가서 4-5 가정이 모이며 예배드린 가정교회와 한국으로 돌아와 기숙사 학교에 다닐 때 다녔던 비가 새는 예배실에서 예배드렸던 교회다. 그런데 그 교회들도 규모가 커진 이후에는 지금 나의 기준으로 '교회다움'의 기억은 많이 희석되었다.


내가 당시에 살았던 국가는 4-5 가정이 모여서 가정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국가적으로 종교활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외국인들도 자국민에게는 전도를 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목사님은 물론이고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고, 나는 초등학생이었을 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에 드렸던 예배와 그 안에서 느꼈던 감정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우리 집에 와서 성탄절에 찬양하고, 악기를 불며 선물을 나눴던 것도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분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 뒤에 교회가 커지고 예배장소를 옮긴 뒤에도 찬양집회를 하는데 경찰이 와서 자국민이 오는 지를 감시하던 기억과, 내가 입교를 하던 기억 역시 내 안에 깊게 새겨져 있다.


비가 새는 닭장을 개조해서 예배를 드렸던 교회에 다닐 때 그곳은 내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부모님은 여전히 해외에 계시고, 혼자 한국에 돌아왔는데 해외에 있을 때 나는 분명히 한국인으로 분류되었는데 한국에 와 보니 나는 완전히 이방인이 되어 있더라. 학교 친구들은 내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한국말로 진행되는 수업을 알아듣지 못했다. 오죽하면 첫 학기에 매일 저녁마다 라면을 야식으로 먹어도 10킬로가 빠졌을까.


그때마다 나는 논과 밭을 지나 예배당에 가서 펑펑 울며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 시절에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일 본예배는 물론이고 주일 저녁예배와 수요예배도 모두 출석을 했다. 그때 들었던 설교가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교회를 향하던 길의 포도밭과 아카시아 꽃의 향, 그리고 비가 많이 올 때 물을 예배당에서 퍼내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한데, 그런 기억들과 그 시기에 나의 간절함과 고통이 결합되어 그 시기 역시 내 안에 깊게 새겨져 있다. 가장 최근에 모교를 찾아가서 포도밭은 사라지고 공원이 되고, 아카시아 나무도 잘라진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누군가가 창고로 쓰는 예전 교회건물에 여전히 같은 예수님 그림이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규모가 1천 명이 넘어가는 교회에 다니면서 전혀 '교회다움'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다. 내가 찬양팀 싱어로 섬겼던 교회에서는 같은 멤버들이 5년 동안 예배를 섬기면서 찬양팀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고, 지금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그때의 찬양팀만큼은 깊은 나눔을 같거나 오랫동안 함께 한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부 자체가 내게는 공동체와 '교회다움'을 느끼는 곳이다. '교회 전체'의 교회다움을 느꼈다기보다는 함께 예배를 섬기는 분들과의 모임이 교회로 다가오고, 느껴졌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물론, 지금 출석하는 교회는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다른 교회들과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명성교회도, 온누리교회도, 내가 찬양팀으로 섬겼던 교회도 명확히 추구하는 방향성이나 지향점을 가진 교회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는 방향성과 지향점이 분명하고, 나는 그 방향성과 지향점에 동의하고 공감한다. 교회 자체는 규모가 있고, 내가 교회에 출석하는 다른 사람들과 엄청나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에 계속 출석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전교인 수련회를 가거나 소모임을 하면 우리 교회에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 많은지만 더 분명하게 느끼곤 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방향성과 지향점에 공감하고 동의하는 더 작은 교회가 있다면, 고민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뒤에 언제든지 옮길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이렇게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교회가 궁극적으로는 흩어지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우리 교회는 전체 예배는 주1회만 드리고 소그룹으로 매주 예배를 드리기도 했는데, 부모님과 연세가 비슷하신 분들과 소그룹 모임을 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때 나는 서로에 대해 더 깊게 알아가고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느꼈다. 모이지 말고 흩어져서 교회가 되라는 것이 우리 교회가 그렇게 예배를 진행했던 취지였다.


이 고민과 기도를 한 지는 벌써 3년이 넘었지만, 아직 그런 공동체를 찾거나 발견하지는 못했기에 내가 섬길 자리가 있고 방향성과 지향점에 공감하고 동의하는 우리 교회에 머물러 있다. 내가 다녔던 작은 교회나 이전 교회의 찬양팀만큼 사람들과 엄청나게 친밀하거나 관계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로서의 방향성과 지향점에 공감하고 동의한다는 측면에서 나는 우리 교회가 내게는 공동체와 '교회다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가장 '교회다운 교회'는 앞에서 설명한 두 작은 공동체였다. 그 공동체들은 모두 교회생활하는데 물리적인 불편함이 많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두 교회에서는 모두 사람이 없어서 모든 사람들이 교회 일에 참여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교인들끼리 자주 보고 소통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어느 교회에서보다 서로를 잘 알게 되었다. 그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서로 잘 알게 됨으로 인해 다툼과 분란도 많았고, 상처를 주고받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돌고 돌아도 결국은 교회 안에서 화해하고 함께 예배를 드렸다.


내게 교회는 인간적으로는 다르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나누기도 하지만 공동체라는 이유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라가고자 한다는 이유만으로 모여서 함께 예배하며 서로를 붙들어 주는 곳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갈등도 많지만 그 갈등으로 통해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성화되어 나가며, 또 온전히 하나님 안에서 서로가 치열한 사회에서 중심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공동체가, 내게는 교회다.


그런데 인류역사에서 대부분 시간 동안 교회는 원래 그런 곳이었다. 교회, 특히나 개신교 교회가 권력을 갖거나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 사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고 그 기간도 그렇게 길지 않았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유대인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억압을 받아서 지하에 공동체를 세우고 살아남기 위해 암호로 소통했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구교(천주교)에 의해 배척되었으며, 말씀을 전하러 한반도에 오신 많은 선교사님들은 순교하셨다. 그런 상황에서도 서로 같은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여기고 붙들며 의지하면서 그 믿음을 지키는 공동체가 '교회'였다.


그런데 미국에서부터 시작해서 언젠가부터 교회, 그것도 개신교 교회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고 규모가 커졌다. 그러한 미국교회들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한국에서도 메가처치라고 불리는 거대한 교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교회들이 갖는 장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교회들은 사람과 사람이 물리적으로 부딪히고 부대끼며 운영되지 않고, 대기업처럼 시스템을 통해서 운영되기에 효율적으로 유지된다. 그리고 시스템으로 운영되다 보니 개인의 개성이 약화되어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형식적으로 와서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것도 쉬워졌다. 또한 규모가 커지면서 교회들은 많은 선교사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커지고, 편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커지고, 좋아지면서 그 교회에서는 '관계'가 상실되기 시작했다.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회피하고 거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더 알아가게 해 준다는 명목으로 대형교회들은 청년부는 소그룹 모임을 주기적으로 재편성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처음에 낯을 가리고 서로를 파악하다 조금씩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을 때 즈음이 되면 소그룹이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을 얕게 알게 되는 것은 맞지만 관계에 깊이를 더하는 건 불가능하게 된다. 내가 20대 후반부터 청년부를 출석하지 않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스템'을 돌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해졌고, 그 결과 교회에서는 성도들에게 헌신과 봉사를 강요하고, 그렇게 섬기는 사람들을 믿음이 좋은 자들로 분류하고 대우하는 문화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말씀을 잘 몰라도, 교회의 '시스템'에 무엇인가를 공급할 수 있는 사람은 대접을 받게 되었고 그러지 않은 사람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전락해 버린다. 여기에 교회의 프로그램들이 계속 돌아가야 목회자들도 할 일이 있다 보니 강요는 아니지만 참석하면 안 될 것 같은 표현들로 실질적인 강압이 이뤄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거대한 시스템을 돌리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목회자들의 생계를 해결하고, 프로그램들을 돌리고, 선교사들에게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들은 십일조를 성경에서 어떤 맥락에서, 왜 내라고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으면서 마치 구교(천주교)에서 면죄부를 팔았던 것처럼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마치 죽은 뒤에 지옥에 갈 것처럼,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죄를 짓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한다. 십일조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교회의 거대한 시스템이 운영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목회자들 중에 현실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큰 교회에 가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그들 사이에서 '취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목회자들 간의 업무분담이 잘 이뤄져야 하고, 상명하복이 기본적인 문화로 장착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대형교회의 경우 목회자들 간의 위계와 서열이 존재하고, 주니어 목회자들 중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성경을 연구하고 성도들을 만나는 시간보다 교회 일을 하느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생긴다. 대형교회에서 설교는 어차피 담임목사님과 공동체 전체를 담당하는 시니어 목사님 몇 분만 하시면 되다 보니 주니어 목사님들은 말씀을 보지 않아도 목사 직함을 달고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목사라고 불리는 게 맞을까?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은 계속해서 보수교육을 받는다. 왜 그럴까? 교육을 받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되고, 새롭게 업데이트 되는 것들을 알아야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회자들은 그런 게 체계화 되어 있지 않다 보니 한 번 목사는 성경을 계속 공부하지 않아도 목사라고 불리는 지금의 구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공동체에서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말씀을 바로 세우는 것인데, 말씀을 보지 못하는 구조에서도 목사라고 불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만 봐도, 우리는 대형교회가 대기업과 굉장히 유사한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구조를 가진 대형교회에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와 욕망을 자극할 두 가지 요소가 중심에 들어와 있다. 돈, 그리고 위계에 따라오는 권력. 담임목사는 이 두 가지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갖고, 그러한 권력을 가진 목사는 성도들에게 우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여기에 더해 목회자들은 대부분 남자인 반면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여자이며, 목회자들이 '윗사람'으로 여겨지는 권위적인 분위기 안에서 성적인 문제까지 발생하게 된다. 구교(천주교)가 가장 타락했던 종교개혁 시기의 모습이 오늘날 개신교 교회에서 많이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교회가 커지면 이런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목회자들도 일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죄인이고, 죄인인 인간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보고 선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가도 자신에게 돈, 권력과 명예가 주어지면 그런 마음이 무뎌지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성과 인간의 본성에 비춰봤을 때 교회가 대형화되는 과정에서 성추행, 성폭행, 세습 등과 같은 문제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교회가 대형화 하면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예정된 일이나 마찬가지고, 사실은 그런 문제를 전혀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신 목사님들이 대단하신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과연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교회 밖의 기준, 방향성, 지향점과 다른 성경에서 말하는 기준, 방향성,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이 치열한 사회와 세상 속에서 중심을 붙들 수 있도록 서로를 붙잡아 주는 공동체여야 한다. 그런데 대형교회에는 사람은 없고 시스템만 있다. 그렇다 보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 수 없게 되고, 알더라도 그 시스템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는 피상적인 수준에서만 교제와 인사를 나눌 뿐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돈과 권위, 권력이 중요하게 되고 그것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을 보는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삶 속에서도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하나님'과 '비전'과 '소명'이란 포장지를 자신들의 욕구와 욕망에 씌운 상태로.


성경은 모든 인간 안에 창조의 원리에서 멀어진 죄성이 있고, 그 죄성 때문에 우리는 자아를 매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갖춘 작은 교회 공동체(교회가 작으면 교회다운 교회라는 것이 아니다. 작은 교회에서만 그런 교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작은 교회가 모두 그런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도 너무 잘 안다.)를 구성한 사람들은 그 관계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연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인들은 많이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사랑을 느끼고, 배우며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져 간다. 여기에 더해서 그런 습관과 패턴은 교인들이 다른 삶의 영역 속에서도 자아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들의 우선순위를 바꾼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다른 기준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그게 성경이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바가 아닌가?


이와 달리 대형교회에서는 관계가 단절되어 있고,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갈등은 회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 시스템을 잘 보호하는데 초점을 맞추며 의사결정권은 대부분의 경우 담임목사에게 집중되어 있다. 대형교회들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대형교회들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보면 개척을 하는 시점에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않은 목회자는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목회자들은 돈, 명예, 권력을 손에 쥐게 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씩 변질되어 가면서 그 '성공'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이뤄졌다고 믿기 시작한다. 전부는 아니어도 최소한 자신의 지분은 있다고 믿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은 최근에 발생한 한 유명한 설교자이자, 많은 책을 쓰신 목사님이 자신이 원로목사로 있는 교회에 요구한 것들을 담은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목회자들은 물질적인 것을 누리면 안되는 것이냐고 누군가는 반문할 수 있다. 아니다. 목회자들이 물질적인 것을 누려도 된다. 다만, 우리는 그때 목회자들에게 비용이 어떻게 지급되는 것인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일반 성도들은 자신이 피와 땀을 흘려 노동한 대가로, 스트레스를 하며 사업을 한 대가로, 상대에게 그 대가를 받을만한 무엇인가를 주고 돈을 번다. 반면에 목회자들이 월급을 받는 돈은 성도들이 피땀 흘린 돈 중 일부를 목회자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회' 앞에 내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돈을 목회자 개인이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사용하고, 세습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회의 돈을 도둑질 하는 것이 아닌가?


목회자라면,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떳떳한 수준으로만 사례비를 받는 게 이상적일 것이다. 다만, 목회자가 그렇게만 받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우리를 위해 애 쓰시는 목사님을 그렇게 힘들게 지내게 할 수는 없다며 더 많은 것을 드리려고 한다면, 조금 더 넉넉한 사례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나 목회자는 그때도 자신이 그 사례비를 받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당당한지를 고민하고 기도해 볼 필요는 있다. 그 돈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회에 내놓은 것이니까.


하지만 목회자들은 교회가 커지면 그 돈을 자신이 수고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번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개척할 때 자신의 자녀에게는 더 많은 지원을 해달라고, 현실적으로 개척하려면 그 정도 돈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말을 들으면서 과연 저 목사님이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지, 저 분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묻고 듣기 위한 시간을 보내시기나 하는 지에 물음표가 생겼다. 그런 시간이 없다면 그 분은 성경을 읽고 공부해서 글 쓰고 썰 푸는 기술자일 수는 있어도 목회자일 수는 없다.


이런 사례들은 대형교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그 안에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은 기준과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목회자들은 물리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은 하지 않으면서 성도들의 헌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니 교회 안에서 세상보다 더 악랄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장사하는 자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일들은 하나님이 이 땅의 주관자이심을 온전히, 100%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일하기도 하지만 나도 최선을 다했기에 가능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단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그렇게 변질되는 건 커지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죄인인 그들이 너무 많은 것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은 껍데기만, 무늬만 교회인 교회들이 너무 많아졌다.

교회가 우상이 되어버린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그리고 교회가 곧 하나님도 아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