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TC

글을 계속 쓸, 쓰는 이유들

by Simon de Cyrene

나는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지, 읽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나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경우가 매우, 매우 드물다. 나는 논문을 학술지에 투고하거나, 게재가 확정되어 오탈자와 수정되어야 할 부분을 찾을 때 외에는 내 글을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 내 브런치북과 매거진들을 훑어보다 작년 초, 정확히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사랑, 연애, 결혼의 이유들>이란 시리즈를 시작했고 겨우 글 다섯 개를 3월 14일까지 쓰고 연재를 중단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2025년을 얼마나 정신없게 보냈는지 이 시리즈를 시작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린 것이다.


내 브런치 구독자 수와 조회 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 주제를, 내 동생의 결혼 이후 깨닫게 된 사실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정리하고 싶었던 기억이 났다. 평생을 결혼을 '못'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사실은 '안'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결혼을 '못'한 상황이 되어서 깨닫고 나서 시작한 시리즈다. 문득, 이 시리즈를 이어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써놓은 글들을 읽어봤다.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그런데 한 문장, 한 문장에서 저 시기에 나의 마음과 상태가 다 그대로 느껴졌다. 내가 정확히 1년 전에 어떤 상태와 마음인지를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같은 공유사무실을 쓰는 분과 대화를 나누다 '이 분 나랑 되게 비슷하네'라는 생각과 함께 호감이 생겼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 그 시리즈에서 '소유욕'이라고 표현하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고, 그로 인해 어쩌면 상대는 불편하게 느꼈을 수도 있는 내 관점에서의 호의를 베풀었으며, 상대가 불편할 수 있겠단 생각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누르며 쓴 글들이었다. 글 전반에서 내가 스스로를 이성으로 계속 누르기 위해 노력하는 게 느껴져서, 유치했고 민망했다.


민망하지만 그 글들을 크게 수정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시리즈는 이어갈 예정이다. 작년보다 훨씬 안정되고, 차분한 상태에서. 이 주제를 지금처럼 안정되고 평안한 상태에서 담담하게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사람의 마음과 상황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그러나 지금, 싱글로서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차분하게 목차를 수정 및 보완하며 시리즈를 이어가야겠단 생각이 어제 들었다.


부끄럽고 민망하단 생각에 글을 삭제하고 싶단 생각이 너무나도 간절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이 글로 기록되고, 남아 있는 것이야말로 내가 글을 계속 써야 할 이유라고 생각됐기 때문에, 민망한 글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누군가는 읽히기 위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팔리기 위해 글을 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던 것 같다. 많이 읽혀서 팔리기 위해 이 플랫폼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계속 쓰면서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하루에 과장 하나 없이 수만 명이 내 브런치를 방문하는 경험도 했고 수개월 이상 일평균 방문자수가 수천 명대를 기록하는 것도 경험했으며, 브런치에서 소소한 이벤트(?)의 혜택을 보고 심지어 책도 나왔다. 그 과정에서 흥분하고, 즐겁고, 다음을 기대하곤 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누군가는 해보고 싶을지도 모르는 그런 경험들을 하면 할수록, 그게 큰 의미가 없단 생각이 들더라.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드는 다른 것들이 그렇듯이, 이 플랫폼 안에서 받게 되는 인정들 뒤에도 허무함만이 남았다. 작년에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그 허무함이 나를 지배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어제 처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안에서 계속 글을 써 나가고, 심지어 비공개인 개인 인스타계정에서는 이 공간에 나누지 못하는 아주 사적인 생각과 경험들을 주로 글로 정리하게 되는 것은 내 안에 기록하고, 미래의 내가 돌아볼 나 자신의 모습이 그 시기에 쓴 글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게 글을 쓰는 여러 이유들 중 작은 부분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그게 내가 글을 쓰는 주된 이유가 되었다.


구독자 수가 줄어도, 조회수가 높지 않아도,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내 안에 드는 생각들을 이 공간에 정리하는 것은 철저히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그때는 또 '이때 왜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진지했지?'싶어 부끄럽고 민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민망해진다는 것은 내가 또 다른 사람이 되었고, 어쩌면 조금 더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줄지도 모르고, 유치하고 부족했던 내 모습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운이 좋게 선택되어 책이 나왔을 때 사실 내 책을 선택해 준 출판사에게 좋은 감정만 있지는 않았다. 그 책에 실린 문장들은 내가 쓴 원고를 바탕으로 편집자가 상당 부분 말 그대로 '뜯어고친' 것이어서 그 문장들이 내 글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그랬다. 지금은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 당시에 내가 넘긴 원고를 보면, 내 글이 책으로 나올 수 없고 나오면 안 되는 이유가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출간되었을 때는 내가 낳은 남의 자식 같았던 그 책이, 내 생각들은 그 안에 그대로 살아있기에 이제는 내 자식 같이 여겨진다. 그리고 그 난잡한 글들을 간결하게 다듬어 주신 편집자님께 고마운 마음이 든다. 시간이 지나서, 이제야 내 모습을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드는 마음이다.


예전에 써놓은 글들을 보면 삭제하고 비공개로 전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여전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 모습도, 내 안에 있었고 어쩌면 여전히 어느 정도 남아있는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글은, 결국 나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세상에 보여주는 통로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써 나갈 것이다. 그 대신 이제는 좀 내가 쓴 글들을 다시 돌아보고, 읽어보는 시간은 가져야겠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