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정일보다 2주 정도 늦게 태어났다. 오늘 나오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병원에서 말했는데 내가 정확히 그날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워낙 우량아로 태어나서 어머니께서는 나를 낳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우셔서 '얘가 무사히 태어나기만 하면 다니엘처럼 키우겠다고 기도하셨단다. 어머니께서 내 결혼 문제에 대해 말씀하실 때면 나는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다니엘처럼 키우겠다고 하셔서 하나님께서 혼자 살게 하시는 것일 수 있으니 어머니는 아무 말씀하시면 안 된다'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하곤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학부시절 '진리'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다른 종교들을 들여다본 적은 있지만, 무신론자였던 적은 없었다.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시험에만 집중해서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계속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번에는 정말 될 것이라 믿고 결과를 기다렸음에도 다시 한번 불합격이란 결과를 받은 뒤 나는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합격을 허락하지 않는 신은 존재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며 '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진지한 무신론자가 되었다. 일주일 동안 그랬다.
마음이 굳었고, 힘들지도 않았다. 내 모든 걸 희생하면서, 막판 한 달 동안은 매일 신경안정제를 먹으면서까지 시험을 준비했는데 결과가 이런 것은 신이 없거나 내가 믿는 신이 가짜여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마음이 굳었고, 당신에 찬양팀 싱어를 하고 있었는데 찬양도 나오지 않았다. 설교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기도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앉아있던 중 나도 모르게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그 순간 '나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신이 없으면 지금 나는 누구한테 말하는 거지?'란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내 안에 쌓여있던 아픔이 터져 나오며 나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내게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그냥 시험을 포기하라고 말해주면,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포기를 할 텐데 왜 이러는 거냐고 원망을 쏟아냈다.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런 기도를 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개신교에서 말하는 '믿음'을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내가 구하면 주실 것을 믿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런데 개신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내가 최선을 다하거나 정성을 다하면 신이 내게 좋은 것을 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지점이 사실 다른 종교와 개신교를 구분 짓는 가장 결정적인 지점이다.
모든 종교들은 신을 도구로 여긴다. 신에게 정성을 보이면, 성의를 다하면 신이 결국은 현생에서 좋은 것을 주거나 다음 생이나 사후에 좋은 것, 정확히 말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줄 것이라는 게 모든 종교가 주장하는 보편적인 가치다. 유대인과 무슬림 들도 결국은 자신들이 승리하고, 자신들이 온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란 것을 믿는 것이고, 사람들이 종교기관에 돈이나 재물을 바치는 것은 그만큼 정성을 보이면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받게 될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모든 종교는 끝으로 가면 '내가 원하는 것을 받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렇다 보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개신교도 그렇다고 착각한다. 만약 개신교도 그런 성격을 갖는다면, 개신교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성경은 어디에서도 인간이 신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면 인간이 원하는 것을 신이 줄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의 내용은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망하고,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칭찬받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개신교 신자로 사는 것, 그리고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오히려 이 땅에서 내 욕구와 욕망이 현실화되지 않을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다만, 그러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개신교에서 말하는 믿음이 있는 자들은 궁극적으로 절대자는 모든 상황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더 좋은 것이 이 땅에 구현되도록 할 것을 믿는다. 그게 성경에서 말하는 신에 대한 믿음이다.
개신교에서 말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이 벌어지고, 자신이 욕구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진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오히려 매일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내려놓고, 자신이 아니라 신의 뜻이 자신의 삶에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그게 개신교에서 말하는 '나 자신을 매일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의 모습이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 것이 모두 직접 절대자가 개입한 결과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최소한 그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신 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고 믿고, 일단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알고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이 그러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믿고 사는 게 개신교 신자로서의 삶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혹자는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신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우리가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고 즐겁게 만드는 지를 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하는 생각이다. 이쯤에서 생각해 보자.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은 행복할까?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은 어떨까? 나는 이렇게 나열한 것들 중 어느 하나도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돌아봤을 때 돈, 명예, 권력이나 본인이 원하는 것을 다 가져본 사람들 중에 '그 뒤로 죽을 때까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와 같은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다른 지점에서 행복을 느끼기에 무엇이 누구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지에 대한 답은 제시될 수 없다. 행복에 대해서 돈, 명예, 권력과 같은 것들이 완전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 만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유일한 사실이다.
이제부터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면, '창조'의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개신교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우리의 삶을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획하셨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모든 사람들 안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계획에 맞는 DNA를 심어놓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DNA를 통해 이 땅에서 성경에서 나오는 질서를 이루기 위한 계획도 갖고 계실 것이다.
나는 우리가 그 계획을 따라 사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행복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이 없을 것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모든 인간은 돈, 명예, 권력에 대한 욕구와 욕망이 있고 그것이 100% 충족되지 못하는 이상 어느 정도의 고통과 힘듦은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놓으신 계획에 따라 산다고 해서 모든 게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힘든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고통, 고난과 함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심어 놓으신, 우리를 창조하면서 만들어 놓으신 계획에 따라 우리가 살아갈 때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힘들면서도 행복하게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태어나는 환경을 조성해 놓으셨다고도 믿는다. 그 환경이 반드시 엄청나게 화려하고 좋으면서 모든 것을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결핍들로 인해서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사랑하며, 더 행복해질 수도 있기에 사회적으로 결핍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오히려 인생 전체에 비춰봤을 때는 선물일 수도 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그렇게 만들고, 결핍을 그대로 두신 것은 우리는 그래야 다른 사람을 품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방학에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에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격주로 줌으로 수업 비슷한 세션을 하고 있는데, 그건 내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그들은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내가 실패하고 넘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그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결핍이라고,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것들이 우리를 상처받은 치유자로 만들어 주고, 그로 인해 우리가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단 것이다.
그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완벽한 조합으로 우리가 태어나는 환경을 만들고 우리의 삶을 이끄신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사회가, 세상이 말하는 길이 아니라 그 길을 따라가면서 사랑하고 베풀 때 우리는 진정한, 지속가능한 사랑을 경험하며 행복해 줄 수 있다고도 나는 믿는다. 우리가 행복해지지 못하는 건, 우리가 그러한 절대자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과 행복을 좇기 때문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렇게 믿고, 지금 보이지 않고 이해되지 않으며 힘들더라도 결국 선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다 합력하여 선을 이 땅에서 이루실 것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것. 그게 개신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다. 우리는 때때로 모든 것을 알고 가고 싶지만, 모든 걸 알고 길을 가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지 믿음이 아니지 않나? 다른 사람들이 비웃어도, 내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믿는 것, 지금 당장의 불행과 힘듦, 실패도 결국 나를 (다른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게 아닐 수는 있지만) 내게 가장 맞고 좋은 길로 이끌 것이라는 것을 믿고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개신교에서 말하는 '믿음의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