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가 지고 있는 이유.

by Simon de Cyrene

'한국 영화랑 드라마도 예전 홍콩영화 처럼 되는 거 아니니?'


업계 얘기를 들으신 아버지의 반응이었다. 나는 모든 생계를 드라마와 콘텐츠로 해결하진 않는다. 프리랜서로 여러 일을 해왔다 보니 누군가 주업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명확히 답을 못하겠더라. 내가 하는 일들의 수입이 거의 비슷하게 1/n이어서 그랬다.


어쨌든 드라마 일을 우연히 시작한 지 6년이 되었고, 그동안 6개 프로젝트에서 일했으며 올해 하반기 온에어 예정 작품까지 하면 내가 참여한 작품 중에 3개가 온에어 되게 된다. 업계 사람들은 알겠지만, 현장 스텝이 아니라 작가님들 서포트하는 위치에서는 운이 꽤나 좋은 편이다.


그런데 업계에 있지 않은 지인들을 만날 때면 사람들이 우리나라 콘텐츠가 여전히 세계에서 엄청나게 주목받고 제작이 많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황하게 된다. 아니다.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내가 아는 조연급 배우들은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고 있고, 주연급 배우들이 뮤지컬이나 연극무대에 서는 가장 큰 이유는 현실적으로 찍을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글로벌하게 히트했던 작품들이 있었지만,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제작되는 작품 편수를 줄이고 일본에서 제작을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제작비용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작비용이 커진 주된 이유는 주연배우들의 몸값이 과도하게 높기 때문이다.


제작사에서 일하는 분께 들은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하는데 드는 비용이 미국, 영국 다음으로 높다고 한다. 미국과 영국은 다른 물가도 비싸고, 특히 미국은 시장 자체가 우리나라보다 크니 그렇다고 치자. 두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 콘텐츠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모두 자막으로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비가 전 세계 3위라는 건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다.


배우 전체의 몸값이 높은 게 아니다. 우리나라 조연배우들의 몸값은 결코 높지 않다. 그런데 확인되진 않았지만 소문으로 들리는 주연배우들, 그중에서도 남자 배우들의 몸값은 누가 들어도 믿기 힘들 정도로 높다. 누가 봐도 시장규모에 비해서 과대평가되어 있는 수준이다. 개인적으로는 결국 넷플릭스가 배우들의 몸값을 이렇게 올려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이제 와서 다른 나라에서 촬영을 한다는 게 짜증이 나긴 하는데, 현실이 그런 것을 어찌하겠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발굴하면 된다. 아직 출연료는 낮지만 스타성이 있고 연기력이 괜찮은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방영하면 된다. 그런데 드라마와 영화업계에서는 그런 새로운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렇다. 안 그래도 방송국들은 광고매출이 줄어들어서 경영이 힘든 상황인데,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와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올리면 리스크가 그만큼 더 커지기 때문에 방송국들은 팔릴 것 같은 아이템과 몸값이 높아도 알려진 배우들이 캐스팅된 작품만 찾는다.


그런데 또 방송국들에서 방영되는 시리즈물들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 밖에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원인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어떤 작품을 방영해야 사람들이 많이 볼까'에만 집착을 한 결과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대중의 관심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대중'이라는 풀 자체가 이제는 존재하는지가 애초에 확실하지 않다. 세대별, 연령별, 직군별, 성별로 사람들의 취향이 워낙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보니 20대 초반 여성이 즐겨보는 작품과 20대 후반의 여성이 즐겨보는 작품도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심지어 같은 20대 초반의 여성들 중에서도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작품을 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공'을 예상하고 작품을 고르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 더 세밀하게 들어가서 어떤 특징을 가진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볼 것이며 어떤 매체들에 팔 작품인지를 분류해서 작품을 기획해야 하는데, 방영되는 드라마들을 보면 그런 노력을 하는 제작사와 방송사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물음표가 생긴다. 유행을 따라가려는 사람들은 많은데, 작품성을 높여서 사람들을 끌어오려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단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가 '대중' '예술'이라면 제작사와 매체들은 '대중'만 의식하고 '예술'은 아예 생각하지 않는 느낌이고, 그러다 '예술'을 추구한 작품이 한번 터지면 모두 그 길을 따라가려 한다.


영화와 드라마는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업계다. 짧은 시간 안에 관심을 받고 길어야 4개월 동안 그 관심이 이어지니까. 그런데 영화는 거의 제작되지 않는 느낌이고, 그나마 제작되는 시리즈들도 하이 리스크를 감당하려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스타를 캐스팅해도 그 작품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란 건 수많은 작품들이 입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체들은 회당 수억 대를 지불하며 여전히 스타만 찾고, 좋은 이야기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스타가 사라지면 업계도 몰락하게 되어 있다. 영화와 드라마의 핵심은 결국 '이야기'이다. 좋은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작가와, 그런 이야기를 알아보는 제작사와 매체들이 일하는 생태계가 있어야 사람들이 말하는 K드라마가 계속 각광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에는 전략과 기획은 없고 사람에 의존하는 구조가 만연해 있으며, 그런 구조가 바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는 결국 액션이 이끌었다. 우리나라 드라마의 전성기는 스타들과 로맨틱 코미디가 만든 게 현실이다. 지금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 글로벌하게 팬덤이 있는 스타들의 인기가 낮아지고 반복되는 패턴의 로맨틱 코미디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면 우리나라의 콘텐츠 산업도 홍콩 영화와 같은 길을 가게 될 수 있다.


'같은 업계'를 위한 대승적인 결정들이 필요한 시기다. S급 배우들이 자신이 빛나는 것보다 의미 있는 작품을 찾고, 더 많은 작품이 제작될 수 있도록 자신의 몸값을 러닝 개린티 같은 조건을 붙여서라도 조정하면 더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들은 그런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그리고 사실은 장기적으로 볼 때는 그게 그 배우들도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길이다. 업계가 살아나서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면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더 올 것이고, 그러면 돈도 더 벌 수 있을 테니까. 반면에 지금과 같은 흐름이 이어지면 그들은 지금까지 번 돈으로 잘 먹고 잘 살겠지만 일할 기회와 팬들은 사라질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고 움직이는 배우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알려지면 그들이 동료들에게 '당신 때문에 몸값이 낮아진다'라는 비판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일까? 그런 이야기들이 널리 알려지진 않는 듯하다. 반면에 소속사 계약하면서 몇 십 억을 받았다거나 회당 출연료를 절대로 양보하지 못한다며 계약을 거절했다는 등 돈을 더 받으려고 하는 이야기들은 다양한 형태로 들려온다. 생태계가 죽으면, 결국 본인이 일할 기회도 줄어들텐데 왜 그런 생각을 하는 배우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이 양보한 게 대중에게 알려지면 본인에 대한 호감도도 높아져서 캐스팅 될 기회도 많아질텐데 거기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느낌이다.


그리고 업계에서도 돈을 버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알아보고, 영화와 시리즈도 대중예술이라는 걸 기억하면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좋은 이야기라면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캐스팅해서 세상에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이 생겨야 한다. 진짜 대박은 트렌드의 꽁무니를 따라가면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좋은,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다 보면 앞서가는 작품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징어게임이 엄청나게 좋은 콘텐츠나 작품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은 어디에도 없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흥미를 끌 법한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장만 보지 않는다면 오징어게임은 제작해야 하는 작품이었는데 제작사와 매체들은 우리나라 시장만 보고 있다 보니 오징어게임은 대본이 업계에서 수년간 돌고 돌았다고 한다. 관점을 넓히면, 한국시장만 타깃으로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현상인데, 그런 전략과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업계에 잘 보이지는 않는다. 심지어 대본을 제대로 일어낼 줄 아는 제작사 대표들도 드문 게 현실이다.


사실 엄청난 위기다. 이제 방송국의 시대는 완전히 지나간 것 같고, OTT들도 제작비가 많이 드는 영화나 시리즈물이 아니라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덜 드는 예능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업계에 있는 어떤 분은 '항상 이랬어. 이렇게 안 좋다가도 좋아지고, 또 좋았다가도 안 좋아졌어'라고 말씀하시던데, 우린 차원이 다른 변화 속에 살고 있다. 그건 너무 나이브한 생각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데이트를 극장에서 했지만 이젠 집이나 카페에서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데이트를 하고, 과거에는 시간에 맞춰 방송을 돈 내지 않고 봤지만 이젠 OTT를 구독해야만 콘텐츠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콘텐츠에 맞춰서 움직이지 않는다.


감독, 배우, 작가들 개인의 권리를 챙기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콘텐츠 업계는 '반짝' 타오른 뒤 이미 조금씩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방송국은 드라마들이 편성되던 시간대를 예능으로 대체했고,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제작되는 편수를 줄이고 있으며, 한국 OTT들은 성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예능과 스포츠에 초점을 맞춰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의 직역을 넘어 대승적인 차원에서 함께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럴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 흐름이 바뀌지 않는 이상, K드라마도 홍콩 영화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