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쓰레드에서 '속궁합이 이렇게 중요한 걸 나는 이번 남자친구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어!'라는 글을 봤다. 오늘은 유튜브 알고즘에 남녀 간의 성생활에 대해 패널들이 대화를 하는 채널이 추천으로 떠서 왜 이러나 싶었더니 내가 최근에 봤던 영상의 출연자가 그 채널에 출연하고 있더라.
그 글과 영상 모두 불편했다. '속궁합'이라고 불리는 합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두 콘텐츠 모두 한 가지만 보고 다른 건 놓치고 있기 때문에 불편했다. 우선 영상의 패널들로 들어가 보자. 그 영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 그와 유사한 콘텐츠들은 다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스킨십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패널들 중 절반 정도는 '지금은 부부 간에 스킨십이 거의 없다'라는 말을 하면서 성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모두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들이다.
만약 스킨십과 성생활이 부부와 가족관계에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요소라면 그들은 왜 이혼을 하지 않은 것일까? 그건 스킨십과 성생활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부부와 가족의 관계에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과거 경험을 팔면서 말하지만, 그러한 영상에서 공유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는 편집 또는 각색된 내용들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정 부분 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을 모두 신뢰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자극적으로, 보는 사람들을 영상에 잡아두는데 효과적일 법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눈다. 그게 어떻게 100% 진실일 수 있을까?
쓰레드에서 내가 봤던 글은 20대 여자 분이 작성한 것이었다. 그런데 개인적인 경험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속궁합이 중요하다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가야 관계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알 수 있다. 관계에서 중요하지 않은 게 뭐가 있을까? 상대의 외모, 지적 능력, 성격, 재력, 말투, 센스, 키, 머리크기 등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갖춘 사람을 만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는 지를 놓고 따져보기 시작해야 한다.
속궁합이 중요하다는 건 결국 자극과 엔돌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엔돌핀을 돌게 하는 모든 자극이 그렇듯이 스킨십을 통해 느껴지는 자극은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 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익숙함을 돌파하기 위해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이지 않고, 자극적인 요소를 계속 스킨십에 더해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다 한 사람에게서는 도저히 새로운 자극을 찾을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잠자리를 찾아 나선다.
연애에 있어서는 속궁합과 스킨십이 중요할 수 있다. 데이트를 하면서 즐겁고 행복해야 하니까. 그런데 연인관계에서 스킨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그 관계에서 두 사람의 대화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리고 그 관계에서 자극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스킨십만 남게 될 수 있고, 그러한 관계는 오래갈 수가 없다.
결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생물학적으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회복능력이 뛰어나며 상대적으로 사회생활로 인해 소모되는 에너지가 적은 20대에는 불타는 사랑을 하는 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20대 중후반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30대에 본격적으로 일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40대에는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20대 중반 이후 모든 인간에게 노화가 시작되고, 늦어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되면 체력과 회복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물리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 뿐인가?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신경써야 할 게 늘어나게 된다. 20대까지만 해도 부모님께서 경제활동을 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30-40대가 되면 부모님께서 경제활동을 하시지 못하는 상황이 될 때가 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이가 들어가면 성생활은 커녕 스킨십에 대한 생각도 사라지기 시작한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면 자신 뿐 아니라 새로운 생명체를 먹여 살리고 돌봐야 하는 책임까지 가중되어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20대 때보다 최소 몇 배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속궁합'이라고 표현되는 스킨십의 자극과 도파민은 인생에서 그다지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일 때부터 스킨십이 자극과 도파민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경우 부부는 결혼기간이 길어질수록 섹스리스가 되고, 스킨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경제활동을 하면서 바쁘게 지내는 와중에 책임은 가중되고,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스킨십을 통해 받는 자극과 도파민은 피곤하고 귀찮게 여겨지고, 그 시간에 잠을 일분이라도 더 자는 게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속궁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연인과 부부라는 남녀관계에서 중요한 요소들은 굉장히 많고, 그 중에서 사람들이 속궁합이라고 부르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덜 중요해 지는 게 현실이다. 가끔씩 보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성생활과 스킨십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초점은 '속궁합'에 맞춰져 있지 않다. 그런 부부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 보면, 그들은 연애를 할 때부터 다양한 가벼운 스킨십을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연스럽게 한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자극과 도파민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보다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스킨십이 많기에 성생활도 그러한 큰 틀 안에서 지속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연애를 할 때 상대가 힘들 때 안아주고, 지칠 때 손을 잡아주면서 위로를 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면, 그리고 그러한 소소한 스킨십들이 두 사람 사이에서 마음을 전하는 또 하나의 표현으로 자리를 잡았다면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 떨어지고 일이 많다고 두 사람 사이에 스킨십이 없어질까? 아닐 것이다. 스킨십을 통해 서로 위로하고, 마음을 전해 온 커플은 오히려 힘들고 지칠수록 자연스러운 소소한 스킨십을 통해 힘을 주고 받을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스킨십이 어떤 기능과 역할을 했는 지에 따라 두 사람은 섹스리스가 될 수도 있고 건강한 부부관계를 이어가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속궁합'은 마음과 감정을 표현하는 스킨십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표현은 아니다. 그 표현은 성생활을 하나의 오락이자 자극으로 볼 때 사용되는데, 앞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압도적인 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오락이자 자극으로서의 성생활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져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거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보다 중요한 것들이 인생에 생기면서 피하게 될 수밖에 없다. 성적인 자극에서는 가장 개방적으로 보이지만 자연스러운 스킨십에서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일본에서 섹스리스인 부부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한국인 반면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스킨십이 많은 미국과 유럽에서 섹스리스인 부부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관련 기사 링크).
당연히 잘 맞고 좋은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당장 나을 수는 있다. 그런데 릴스와 쇼츠를 보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어느 순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다른 건 잘 못 느끼게 되는 것처럼 스킨십에서 자극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순간 우리는 상대의 다른 점들을 보지 못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애야 헤어지면 되니까 그렇다고 치자. 결혼은 개인이 하는 게 아니라 가족과 가족이 결합하는 것이고, 만약 아이까지 생겼다면 부부관계는 쉽게 헤어져서도 안되고 헤어질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스킨십에만 돋보기를 들이밀면서 자극적인 글과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현상들이 안타깝다.
스킨십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나는 스킨십 밖에 남지 않은 관계로 인해 상처를 받아 손 잡는 것 외에 어떤 스킨십도 하지 못하는 사람과 만났다 힘들어서 이별을 하기도 했고, 스킨십에 관계가 잡아먹힌 결과 서로 간에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경험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스킨십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아름다울 수 있으며, 그렇게 사용되어야 한단 것이다.
이 공간에서 과장 하나도 보태지 않고 "스킨십은 매우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에 그쳐야 하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브런치에서 수십 번도 더 쓴 것 같다. 그 말을 다시, 살짝 다른 각도에서 하고 싶어서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