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 엄청나게 충격을 받는 일이 있었다. 나는 해외에서 외국인 학교를 다녔고, 한창 이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중학생이었다. 그런데 내 주위에는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피임기구를 종류별로 모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나는 부모님 장롱에서 무엇인가를 찾다가 그 안에서 피임기구를 발견한 뒤에는 부모님 얼굴도 한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다. 상상이 안 됐다. 그리고 동생과 내가 있는데 도대체 언제...라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내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사춘기에 한창 예민할 때, 그리고 주위에 이미 피임기구를 취미로 종류별로 모으는 친구가 있었고 그 기구가 언제, 어떻게 사용되는 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같은 기구를 봤다면 그걸 뭐라고 생각했을까? '이건 풍선인가?' 싶었을 것이다. 굳이 피임기구까지 가지 않아도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인 아이들은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알지 못하고 어른들이 설명을 해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서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바다가 갈라지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질병이 한 번에 낫는 내용 때문에 성경을 믿을 수 없고, 기독교인이 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현대자동차 AS센터에서 현대자동차에서 출시한 자동차를 수리하지 못하는 게 말이 될까? 현대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 자동차를 수리하지 못하지만 그걸 만든 사람은 당연히 수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만약 절대자가,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이 안에서 신은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아닐까? 만약 신이 인간이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것만 할 수 있다면, 그 신은 절대로 신일 수 없다. 신이 인간과 할 수 있는 것이 비슷하다면 그게 어떻게 신일 수가 있나?
아이들은 아이가 생기는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우리가 초자연적이라고 부르는 현상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초자연적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신의 관점에서 그건 아무 일도 아니다. 현대자동차를 소유한 우리는 자동차가 고장 나면 어떻게 수리할 줄 몰라 쩔쩔매는 것과 달리 전문가가 붙으면 5분 만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으면 성경에 나오는 '기적'이라고 부르는 일들은 신의 주관 하에 당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여기까지 믿는 사람들은 때때로 하나님께 '제게 기적 같은 일을 일어나게 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기도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서 곧바로 믿음이 생기진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성경에서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하나님께서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주지 않을 수 없게 하신 뒤, 홍해 바다가 갈라져서 그 사이로 탈출을 한 뒤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고기를 달라고 해서 고기를 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자신이 간절할 때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 가질 수 있으면 하나님을 무조건 믿을 것처럼 기도하지만 정작 그것을 손에 넣게 되면 그건 자신의 노력으로 획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도, 그 순간에는 감사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신에게 기적처럼 주어진 그 경험을 잊어버리고 또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초자연적으로 느껴지는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누군가의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자. 기적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면, 이 세상의 질서는 어떻게 될까? 모든 사람들이 서울대 의대만 가고, 연봉도 수억 대를 받게 되어야 할 텐데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는 실익도 없다. 이는 만약 모든 사람이 의사가 되고, 수억 대의 연봉을 받으면 인간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요구해서 그것을 받았다는 식의 간증은 매우 위험하고, 그렇게 주어진 것이 기도의 응답이 아닐 수도 있다.
성경에서 우리가 '기적'으로 여기는 일들은 분명한 목적이 있을 때 일어났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필요할 때 우리에게 기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이 일어났고,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 자신이 구원자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징으로 기적을 일으키셨다. 이는 성경에서 일어나는 '기적'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현상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관점에서 성경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그러한 표적이 반드시 필요했다. 우리는 지금 편안하게 집에서, 아니 심지어 집이 아니라 이동 중에도 유튜브로 녹음된 성경말씀을 듣거나 핸드폰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지만 구약과 신약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읽을 수 있는 경전조차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표적을 보여주시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표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성경 어디에 앞으로 표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나와 있었나? 지금도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에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해서 표적을 사용하셔야 하는 상황에서는 우리에게 기적으로 느껴지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할 것이다. 개인과 사회, 국가가 처한 상황은 다르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나라와 같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는 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을 드러내서 보여줘야만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논의는 잘못되었다. 이렇게 길게 써놓고 무슨 말이냐고? 이 논의가 잘못된 것은 사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기적은 항상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을 계산해 보면 많은 일들은 일어날 확률보다 그렇지 않을 확률이 훨씬 낮다.
두 사람이 첫눈에 반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연애를 하고 싶어서 죽어라 소개팅을 하고 데이팅 앱을 써 본 사람들은 서로 오랫동안 알아가던 사람들도 함께 호감을 갖기가 힘들단 것을 너무 잘 알고, 그런 관점에서 사실 첫눈에 반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는 사람들은 어떤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어도 순간 실수를 해서 시험을 망치는 경우도 있고, 면접을 보러 들어갔을 때 면접관이 면접자를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점수가 부족하지만 미친 척하고 지원했다가 합격을 하기도 하고, 다른 건 다 부족한 게 분명한데 면접관이 너무 좋게 봐서 합격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기적으로 여기지 않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하나, 하나를 확률로 따지며 계산해 보면 기적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 나만 해도 그렇다. 나는 사실 박사학위를 받는 것만을 목표로 2년간 학위 논문을 쓰면서 심사를 받았는데, 학위를 받은 뒤에는 뭘 해야 할지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학계에 대해서도, 내가 프리랜서로 참여하는 드라마 프로젝트들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은 상황에서 한 가지를 포기하려고 하면 그쪽에서 일이 들어왔고, 다른 걸 포기하려고 하면 또 그쪽 일이 들어오더라.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자신이 없었고, 학교로 갈 기회가 언제, 어떻게 생길지도 모르기에 그것을 목표로 무엇인가를 하는 게 맞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수업을 한다는 건 너무나도 중요하고, 신중해야 하는 일인데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지를 모르겠더라. 그렇게 방황하며 먹고살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하며 살면서 5년이 흘렀고, 박사학위를 받고 5년간 강의를 하지 못했다면 이제 학교로 가는 건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정확히 2주 뒤에 이메일만 한두 번 주고받고 얼굴은 보지도 못한 교수님께서 갑자기 전화가 오셨다. 본인이 안식년을 다음 학기에 가는데 1년간 강의를 부탁하려고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나는 모든 학교 강의를 갑자기 강의를 할 수 있겠냐고 연락이 와서 맡게 되었다.
이런 게 기적이 아니라면 뭐가 기적일까? 이 외에도 내가 기적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일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이런 일들은 기적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고맙게도 '그건 네가 열심히 살고, 네 능력치를 아니까 연락이 온 거지'라고 말하고, 나는 그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 칭찬을 내가 거부할 이유는 없으니까. 나와 그들 시선의 차이는 우리가 주위에서 일어나는 기적들을 사실은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은 하나님이 개입해서 일어나게 하시는 일을 우리는 우연이나 누군가의 노력에 의한 결과로 여기는 경우가 굉장히 많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그게 기적이 아니라는 것 역시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그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정말 신이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게 당연한 것이니 그걸 굳이 기적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