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었다. 지인이 운영하는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할 때 인턴으로 있던 두 친구와 1년에 한두 번씩 만나는데, 몇 년간 연애하고 있는 한 친구가 자신의 연인을 자신이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고쳐줄 수 있다는 말을 하더라. 그 친구도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고.
내 안에 있는 극 T가 발동했다. 그리고 난 그 친구에게 말했다. 연애할 때는 몰라도 결혼한 뒤에도 그 말을 상대가 지킬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또 지금 상대에게 보이는 부족한 면들이 바뀔 것을 기대하지 말고, 결혼하기 전에 일부 고쳐지는 것으로 보이는 습관이나 패턴들이 다시 나타나도 본인이 그것을 평생 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결혼을 결정하라고. 품을 수 있을 것 같아도 안 품어지겠지만, 그나마 본인이 그렇게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그 정도 생각이 들었다면 버텨질 거라고.
결혼은 안, 혹은 못했지만 결혼과 이혼을 한 수많은 지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은 잘 바뀌지 않고, 두 사람이 모두 노력해야 맞춰가면서 살 수 있단 것이다. 적어도 내가 들은 이야기들 중에서 이혼한 사람들이 상대에 대해서 몰랐던 것 때문에 갈라서게 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알고 있었지만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넘어갔거나, 자신이 참고 지나갔거나, 상대가 고쳤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같이 살아보니 품어지지 않아서 이혼을 결정하게 되는 듯하다.
그들이 어리석거나 멍청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다. 내게 그 말을 했던 친구도 이기적이거나 사람들을 자신에게 맞추려는 성향을 갖고 있지 않은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좋은 친구다. 그 친구가 말하는 연인의 부족한 지점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할 영역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연애를 할 때 일주일에 평균적으로 한 번, 많아도 2-3번 만나고 메시지나 전화로 연락하면서 불편하지 않게 넘길 수 있었던 것들을 함께 살게 되면서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이별을 결정한다.
이혼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적어도 내 주위에는 없더라. 고등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다 결혼한 나의 고등학교 동기 부부도 이혼을 고민했던 적이 있고, 누가 봐도 완전한 잉꼬부부로 보이는 지인 부부도 이혼 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있을 정도로 '평생'을 두고 약속한 결혼을 한 사람들은 '평생' 감당할 자신이 없어지면서 이혼을 고민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평생 함께 살아온 가족도 불편해지는데, 평생을 따로 살았던 두 사람이 한 집에서 같이 살기 위해 맞추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이 몇 번씩 드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그런 순간을 넘긴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는 항상 대화와 양보가 있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를 하거나 맞추는 경우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상대의 말을 듣고 존중할 줄 모르는 경우에는 결혼생활이 유지되지 않더라. 상담을 통해서 그나마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상담받는 걸 꺼리는 경향이 많다 보니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혹은 자신이 상대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하면서 결혼을 하면 안 된다. 당장 눈앞에서, 만날 때는 상대가 달라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 상대 인생의 대부분 시간과 영역 안에서 상대는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후드티나 편한 옷만 입던 사람도 면접을 보거나 결혼식, 장례식에 갈 때는 TPO에 맞는 옷을 챙겨 입고 가는 것처럼. 연애 초기에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데이트를 할 때마다 외모를 가꾸며 나가지만 평상시에는 다른 사람 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처럼, 말과 행동도 그럴 수 있단 것이다. 상대가 만약 본인이 감당하지 못할 단점이나 다름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과 연애는 몰라도 결혼은 하지 않는 게 맞다.
그걸 알면서도 결혼을 결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적어졌다고 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런 결정을 하는 사람들의 나이대가 올라갔을 뿐이지 그 숫자가 절대적으로 줄어든 것 같진 않다. 바로, 결혼해야 할 것 같아서 결혼하는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만났기 때문에, 이번에 헤어지면 다시 누군가를 만나기가 힘들 것 같아서,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결혼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오랫동안 만났다고 해서 두 사람이 잘 맞고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잘 맞아서 오래 만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가 얕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유지되었을 수도 있고, 불편한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표현하지 못하거나 이별 자체가 두려워서 연애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도 있지 않은가? 오랫동안 만난 사람들 중에는 특히 연애 초기에는 많이 다투고, 맞춰가기 위해 노력하고, 대화도 했지만 익숙해져 감에 따라 만남이 루틴화 되고 형식적이 되면서 서로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결혼 생활을 뒤로하고 이혼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마치 차선을 선택하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든지 지금 만나는 사람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 듯해서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기준에 어디에 설정되어 있는지에 따라 관계의 명운이 갈린다. 만약 상대의 성품과 태도가 너무 훌륭하고, 두 사람의 대화가 너무 좋고 잘 맞지만 상대의 스펙이나 외모, 경제적인 수준이 마음에 걸리는 상황이라면 그 결정이 맞을 수도 있다. 후자는 보완되거나 달라질 수도 있지만 전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만약 전자는 모르겠고, 후자만 보고 결혼을 결정한다면 그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후자는 그 중요성이 덜해지거나 달라질 수 있는 반면 부부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이기에 전자가 맞지 않는다면 '평생'을 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결혼은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잡히는 사람과 결혼을 결정하는 건 최악의 결정이다. 그런 마음으로 산 물건이나 옷이 있다면 한 번 생각해 보자. 당신은 그 물건이나 옷을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가? 거의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도 똑같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그저 지금 만나고 있기 때문에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주위 사람들 말 때문에 결정하는 결혼은 불행해질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스펙, 외모, 경제적인 요소만 봤는데 성향도 잘 맞아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도 있고, 나이 때문에 결혼을 했는데 살아보니 좋을 수도 있다. 또 반대로 신중에 신중을 기했음에도 결혼생활이 얼마 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은 결국 '확률'의 문제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 갈등과 불편함은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자신의 성향과 함께 했을 때의 모습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결혼을 결정하는 건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사람들이 결혼할 때 상대만 봐서는 안되고 가족과 지인들까지 봐야 한다고 말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상대는 자신의 연인이나 약혼자 앞에서 얼마든지 가면을 쓸 수 있지만, 그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까지 노력할 유인이 없기 때문에 그 가족과 친한 사람들을 보면 상대의 미래를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상대의 가족이나 지인들에 대해서 불편하거나 물음표가 생기는 지점에 대해 상대와 대화를 해보면 두 사람만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상대의 모습이 보이거나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잘 알게 될 수도 있다.
그 불편함과 물음표에 상대가 공감하고, 그에 대한 대화를 편하게 나눈다면 걱정을 덜해도 되겠지만 그에 예민하게 반응할 경우에는 일단 브레이크를 잡는 게 안전할 수 있다. 상대와 그런 대화를 할 수 없다면, 두 사람은 결혼한 뒤에도 솔직한 대화를 하기가 힘들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결혼을 해도 하루의 대부분을 따로 지낸다는 사실에 비춰봤을 때, 지금 대화가 안 된다면 결혼한 뒤에는 더더욱 대화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한 결혼의 끝은 시작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