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가질 이유

by Simon de Cyrene

내 아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아이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정리해 봐도 내가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영역이니까. 그런데 조카가 생기고 보니 확실히 알겠다. 가능하다면 아이는 가져야 한단 것을.


여러 가지 상황과 사정으로 인해 조카가 100일이 될 때까지 보지 못했다. 조카의 100일 잔치 때는 독감이 걸려서 참석하지 못했고. 부모님은 첫 손자를 보고 잘생겼다, 귀엽다 하면서 난리법석인데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더라. 그냥, 내가 SNS에서 봤던 수많은 지인들의 아기들이 신생아일 때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특별히 잘생겼다는 느낌도 없었고.


그 뒤, 몇 번의 가족 모임에서 조카를 몇 번 봤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이 작은 생명체가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 지를.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더라. 조카가 태어난 뒤 우리 가족이 모였을 때 다른 대화 주제는 아예 없다. 조카가 꿈틀대고, 우유를 먹고, 뒤집고, 허우적 대는 움직임 하나, 하나. 심지어 침을 흘리는 모습까지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세상에 뒤집기만 한다고 칭찬과 환호를 받는 세상이라니.


그렇게 몇 번을 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조카가 잘생겨 보이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 싶더라. 콩깍지가 씌워지면 안 되는데, 사람이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이러면 안 된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성으로 내 마음을 다잡을 수는 없더라. 그때부터 똑같아 보였던 신생아들이, 내 조카 외에는 다 왜 그렇게 못 생겨 보이는지... 그제서야 비로소 부모님이 손자를 보는 시선이 이해되었다.


나는 혈연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 아니다. 혈연을 기준으로 한 '민족'의 개념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객관성을 이렇게 빠르게 상실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는 동생의 변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신다. 아들을 위해 출산휴가를 하고, 아들의 모든 것을 챙기는 동생을 보며 어머니는 내게 넌지시 '난 정말 쟤가 저럴 줄은 몰랐어'라고 하셨다.


조카만 생겨도, 이처럼 내가 전혀 몰랐던 세상을 경험하게 되더라. 내 아이를 갖게 된다면 어떨까? 그건 경험해 보지 않은 나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어머니께 크게 대든 후에,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네가 나한테 이렇게 대해도 내가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지금까지 내게 준 기쁨과 행복의 총량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나는 쉬운 아들이 아니다. 어렸을 때 오랫동안 외국인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주관이 명확하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셔도 곧바로 순종하진 않는다. 나는 이해와 수긍이 되어야만 부모님의 말을 들었고,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지 않으실 경우 물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대들기도 했다. 그런 내가 어머니께 드린 기쁨과 행복이 상처보다 더 크다는 건, 내게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들은 아이가 있는 지인들은 모두 대략적으로나마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고 하더라.


아이를 키우는 건 분명히 힘든 일이다. 동생이 조카를 키우는 과정을 보기만 해도 그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우리는 왜 다이어트를 하는가? 배고픔을 참은 결과물로 내가 원하는 몸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힘들어도 공부를 하는가? 그 힘든 시간을 버티면 조금 더 나은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건 분명히 힘든 일이지만, 정상적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크 힘듦을 넘어서는 기쁨과 행복, 즐거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힘듦은 감당할만한, 투자할 수 있는 힘듦이 아닐까?


이처럼 아이가 주는 기쁨과 즐거움이 아니더라도, 노총각으로 분류되고 나니 결국 남는 건 가족밖에 없음이 분명해진다. 20대의 나는 무조건 사랑보다 우정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친구의 전 여자친구에게 호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백조차 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각자의 인생경로를 가게 되고, 서로 속한 영역이 달라짐에 따라 결국 어느 정도의 거리가 생기고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게 된단 것을.


그 정도에 머무르면 그나마 양반이다. 나는 굉장히 친했던 지인들이 자신들이 힘들어지자 나를 도구처럼 사용하려는 시도를 하는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그리고 주위에서 연애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들어왔던 사람(남자)들과 다시는 보지 않을 사이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며, 자신이 힘들어질 때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고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것을 보며 결국 그나마 가족 외에는 평생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관계가 있기는 힘들단 걸 알게 됐다.


그렇다면 부부는 결혼을 했기에 문제가 없을까? 아니다. 연인과 부부는 형식적으로나 법적으로는 다른 면이 있지만, 그 실질에 있어서 크게 다를 건 없다. 애인이 있는 미혼인 사람보다 기혼자가 바람을 피우는 게 사회적으로 더 비판은 받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물리적으로 가로막는 무엇인가가 생기는 건 아니다. 두 사람이 같이 가게나 사업을 하는 게 아닌 이상 결혼 전과 결혼 후의 삶은 사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본다는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질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된 연인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서로에게 소원해지는 것처럼, 신혼부부도 처음에는 새로운 것들이 있어서 알콩달콩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사람은 결국 거기에도 익숙해진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매력적인 새로운 것이 나타났을 때 그것에 몰입하고 흔들린다. 바람을 피우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결혼을 한 뒤에 서로에게 새로움을 찾지 못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만의 취미를 찾기 시작하거나 일에 과몰입하면서 그 안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배우자보다 그 대상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사람은, 결국 적응하고 익숙해지기 때문에 그렇다. 그나마 두 사람이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거나 비슷한 일을 해서 서로 대화할 소재가 많은 경우에는 그러한 흔들림이 생길 가능성이 적다. 그런데 사실 두 사람이 평생 같은 취미를 유지할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고, 두 사람이 같은 업계에서 일해도 대화할 소재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관계에 공통적인 관심사가 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대상은, 두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다. 정상적인,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에 비슷한 관심사를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두 사람의 이해관계와 관심사를 통일시켜 주고, 그 덕분에 두 사람은 대화도 늘어남과 동시에 함께 보내는 시간도 늘어날 수 있다. 거기다 아이는 성인이 될 때까지 하루,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달라진다. 이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아이를 통해 새로움이 가족에 지속적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처럼 아이는 부부 사이에 절대로 틀어질 수 없는 공통의 관심사가 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시켜 줄 수 있다. 물론, 아이의 양육방법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다투게 될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정도 다툼은 아이가 없어도 서로의 일상 영역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부모에게 대들고, 부모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아이가 없어도 부부가 서로에게 그런 힘듦을 줬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 년에 몇 번은 소리 지르고 대들고, 문도 닫고 들어가고, 자신의 인생을 자신 멋대로 살았던 아들도 삼십 대까지 부모에게 준 기쁨과 행복이 더 컸단다. 그러면 이건 해볼 만한 투자가 아닐까?


주위에 결혼할 때 딩크족으로 살겠다던 사람들이 많았다. 내 주위에서는 그중에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서로 자신의 일을 하며 딩크족으로 살기로 약속하고 결혼했던 한 형은 형수님이 뒤늦게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해서 아이를 가진 뒤에는 아이를 너무 늦게 가진 걸 후회했다. 두 명을 키우면 좋을 것 같은데 둘째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최근에는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친했던, 결혼한 지 10년도 더 된 친구가 갑자기 카톡 프로필 사진이 바뀌더니 인스타 계정을 만들더라. 그리고 아이 사진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너무 일찍, 본인이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보이는 것, 또는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예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렸을 때는 보이지 않고 몰랐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 그런 것 중 한 가지는 결국엔 그나마 가족이 마지막까지 내 옆에 있어주는 내 편일 수 있고,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가족을 만들어 주는 건 결국 두 사람이 공유하는 이해관계인, 자녀라는 것이다.


가끔씩 이젠 현실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듦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을 완전히 놔버리지는 못하는 것은, 아이의 존재가 얼마나 크고 중요한 지가 한 살, 한 살 먹어감에 따라 더 절실하고 분명하게 느껴지고 다가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