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과의 관계에 대하여
남녀차별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역사적으로 남자가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사냥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 것이, 그리고 힘을 쓰는 작업을 하는 것이 거의 전적으로 남자의 역할로 맡겨졌을 것이며,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생존에 필요한 건 무엇이든지 힘을 동반해야 했기에 남자가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잘 드러나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이 항상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었고,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일을 한다는 이유로 열위에 있었을 것이다. 남자들 중에서도 '힘이 센' 남자들이 많은 경우에 더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왔었던 것은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인류 보편적인 그와 같은 역사적 배경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남녀차별을 구조화시키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건 한반도에서의 불안정한 안보상황, 공식적으로는 휴전상태인 남북관계로 유지되고 있는 '의무복무'가 남자에게만 부과됨으로 인해서 우리나라에서의 구조적인 남녀차별을 고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지도 모르고, 어떤 이들은 남자들의 유치한 발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것이 옳다, 그르다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러한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는 여전히 일제 치하에 이 땅에 뿌려진 문화가 남아 있고, 그러한 문화가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문화와 결합하면서 어느 사회보다 가부장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일제 치하의 문화라 함은 결국은 어느 정도의 계급주의를 의미한다. 군국주의를 지향했던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이 얼마나 계급적인 요소를 안에 강하게 갖고 있었나? 그러한 문화 속에서 군인으로 있었던 이들이 80년대 초중반까지 이 땅에서 권력을 쥐고 있었으니 그러한 문화가 이 땅에 더 깊게 박히게 된 것은 비극적이지만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문화가 '보통 사람'인 남자들은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군대에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데 있다. 아직은 자신이 접하게 되는 문화의 영향을 받는 나이라고 할 수 있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남자들은 군대에 가서 그와 같은 계급주의적인 문화와 사고방식을 접하게 되고, 그러한 문화는 자연스럽게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까라면 까야하는 한국의 기업문화, 상명하복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기성세대, 소위 말하는 '라인'을 타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모두 군대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문화가 남녀관계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주제에'라는 표현으로 드러난다. 물론 그 표현 자체가 남녀차별적인 것은 아니다. 이는 남자들이 군대 다녀오지 않은 남자들에게도 사용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들 중 대부분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의무복무를 하는 반면, 여자들은 의무복무를 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표현이 남녀차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 표현이 여전히 관용어구처럼 사용된다.
사실 유치하기는 하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군대를 다녀왔는지 여부가 서로의 우열을 따지는 기준이 된다. 나이가 들어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몸이 편한 곳에서 군 생활한 사람들은 군대 얘기가 나오면 머쓱해하며 별 얘기를 하지 않고, 공익이나 면제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며 몸이 힘들고 거친 곳에서 군 복무를 한 사람들이 목소리가 가장 큰 경우가 많다. 이렇듯 남자들은 남자들 간의 관계에서도 '어떤 식으로 군 복무를 했느냐'를 기준으로 우열을 가리는 경향이 없지 않다.
남자들이 그러하는 것은 사실 어느 정도의 피해의식이 있고, 그로 인한 보상을 받고 싶은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은 사람이 지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가 아닌가? 그시기 중 일부 기간을 철저하게 자신의 욕구, 자유와 자율성을 통제받고 억눌러야 하는 상황에 처할 뿐 아니라 심한 경우에는 가혹행위나 언어폭력에 노출되는 환경에서 지내야 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그렇게 '적응시키기 위해' 기초교육을 하는 훈련소가 있고, 그 훈련소에서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조교와 교관들이 윽박지르면서 특정한 패턴에 맞춰지도록 훈련병들을 강제하는 것이 아닌가?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어려움과 고통의 양에는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그 과정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 보니 남자들 중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그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든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군 복무를 어디에서 했는지, 군 복무를 어떻게 했는지를 기준으로 사람들을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계급화시키기도 한다. 그걸 겉으로 드러내거나 표현하지 않을 뿐. 사실 그래서 남자들만 의무복무를 하는 이상 우리 사회에서 구조적인 남녀차별의 문제가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건 잘못된 것이지만, 그래서는 안되지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현실이 그럴 것이란 의미다.
'평등'이란 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루는 것이다. 그래서 남녀 간의 신체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 매거진에 <임신>이라는 글에서도 썼지만 여자만 임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측면에서 여성들의 '다름'을 존중하고 여성들이 그 다름으로 인해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땅에서 타고난 신체적인 차이가 아니라 남녀 간의 '사회적인 차이'가 군 복무를 매개로 일어난다는데 있다. 그리고 여성들은 그 차이는 '다른 것'이라고 보지 않지만, 남자들 중에는 그것을 '다른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차별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은 분명하다. 비단 여자들 뿐 아니라 군 복무를 하지 않은 남자들에 대해서도 '쟤가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래'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지 않는가?
하지만 누구도 이와 같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이런 얘기를 적나라하게 하면 '못난 놈'으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에 침묵하고, 여자들은 누가 봐도 현재의 군 복무제도가 분명 '평등'하다고 볼 수는 없기에 침묵한다. 어떤 이들은 '여자는 임신을 하지만 남자는 하지 않지 않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여자가 임신을 해야 하는 사회적인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하는 여자들도 있는 반면, 남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으면 감옥을 가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닌가? 그리고 여자들이 임신을 하게 됨으로써 입게 되는 손해는 그와 관련된 노동시장에서 법제도를 통해서 적절한 보상이나 보완책을 마련해줘야 할 성격을 갖는 것이기에 여자의 임신과 남자의 군 복무를 연관 짓는 것은 분명 이상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에게 군 복무를 강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남녀차별이 군 복무를 의무로 하고 있는 법제도로 인해서 발생한다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남녀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결되어야 할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많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의무복무가 아닌 희망자들만이 군 복무를 하는 형태로 법제도를 바꾸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군대의 문화와 사회의 문화 간의 연결고리가 단절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남북한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현실화될 수 없는 옵션이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는 군대가 갖추고 있는 시설들의 특성상 여자들에게 의무복무를 강제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남녀가 군대와 같이 폐쇄적인 공간에 함께 있는 경우 어떠한 폭력이 그 안에서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상상하기조차도 싫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여자들에게도 <군 복무>를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한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남자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제도들을 군대에서 만들면 되는 것이지, 여자들에게 군 복무를 강제함으로써 해결될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떠한 형태로든 이 국가와 사회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남녀에게 최대한 비슷한 수준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여자들도 '너희만 의무 복무했냐? 우리도 국가와 사회에 대한 우리 의무를 다했으니까 이제 좀 그만하시지?'라는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는 있으며, 그러한 법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차별적인 시선을 완화하는데 일정 부분은 역할을 할 것이란 뜻이다.
이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남자들이 속 좁게 왜 그러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들에게 '여성성'을 강제하는 것만큼이나 남자들에게 무조건 강하고 듬직해야 한다는 '남성성'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10대 후반, 20대 초중반의 한창때에 본인의 삶과 무관하게,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부과되는 <사회적 의무>라고 느껴지는 상황에 '왜 남자만 해야 돼?'라는 감정이 드는 것은 평등의식에 기반한 본능적인 것이지 남성성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닌가?
분명한 것은 사회적으로 남녀차별은 법제도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인식의 변화를 통해서 이뤄질 수 있단 것이다. 이는 현시점에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너무나도 많은 기득권을 갖고 있기에, 그 기득권을 해체시키기 위해서는 그 기득권 내에서의 자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단 뜻이다. 그리고 남자들의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하면서도 남자들에게만 부과되어 있는 국가와 사회적 의무를 남녀가 같이 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