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2

왜 성문화에 대한 논의는 없는가?

by Simon de Cyrene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7조(성폭력 전담의료기관의 지정 등) ① 여성가족부장관, 특별자치시장ㆍ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국립ㆍ공립병원, 보건소 또는 민간의료시설을 피해자등의 치료를 위한 전담의료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라 지정된 전담의료기관은 피해자 본인ㆍ가족ㆍ친지나 긴급전화센터, 상담소, 보호시설 또는 통합지원센터의 장 등이 요청하면 피해자등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의료 지원을 하여야 한다.
<3.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신체적ㆍ정신적 치료>

제9조(그 밖의 치료의 범위) 법 제27조제2항 제3호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신체적·정신적 치료"란 다음 각 호의 치료 등을 말한다.
<3. 성폭력으로 임신한 태아의 낙태>
*어느 매거진에 발행할지를 고민하다가 궁극적으로는 남녀관계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사랑학개론"에 발행했습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청와대에 20만 명이 이 청원함으로 인해 청와대가 낙태에 대한 답변을 제공해야 했고, 그에 대한 답변이 나왔다. 그래서 낙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듯하다. 위에 성폭법에 대한 내용을 앞에 쓴 것은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낙태를 유일하게 허용하고 있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강간 또는 강제적인 근친상간의 성행위로 인한 낙태는 지금도 합법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합법화를 주장하는 건 지금의 법제도와는 사실 거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가 아니고 남자인 내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법제도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고 해서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을 한 사람이 낙태를 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의사와 병원에서는 낙태를 하려는 사람의 말만 믿고 시술을 했다가는 어떤 상황에 처해질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것이고, 여자는 그 가해자와의 관계나 시술 과정에서 가해자의 신상이 드러남으로 인해 가해자가 할 수 있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낙태의 문제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개인적으로 강압적으로 이뤄진 성행위에 의해 임신이 되었다면 그 경우에는 여성의 건강에 이상을 야기할 우려가 없는 기간이라면 이는 허락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자발적으로 남자와의 관계에 임한 모든 경우에도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낙태를 금지하는 입법취지는 '낙태를 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성생활에 신중을 가하라는 경고로써의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예방적인 차원에서 입법이 이뤄진 성격이 있을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예방적인 조치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가 되었다. TV에서는 결혼하기 전에 남녀가 잠자리를 갖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는 듯한 소재가 드라마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잠자리를 가졌는지 여부'가 문제가 될 뿐, 그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여자들의 마음은 어땠을지에 대한 것은 생략되어 있다. 또한 잠자리를 전후로 여자들이 물리적으로 취하는 조치들에 대한 내용은 생략되고 모든 잠자리는 아름답게만 그려진다. 그리고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면 잠자리를 곧바로 해도 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여자들이 그 과정에서 어떤 마음을 거쳐가는지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여성들의 입을 막아버리고,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여성들은 본인이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에 이른다. 이런 현상이 정상은 아니다. 사람이 먼저라면.


낙태의 문제를 둘러싸고도 낙태를 허용해도 되는지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낙태를 한 이후에 여성들의 신체적, 심리적 후유증에 대한 얘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낙태만 하면 모든 것이 괜찮을 것 같은 분위기다. 낙태와 관련하여 아이가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인 면까지의 담론이 형성되려면 그 논의는 시작점은 사실 남녀관계에서 여성의 인권이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다. 그저 기술적으로 낙태를 해도 되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그게 불편한 건 나뿐일까.


낙태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남성의 책임>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람이 자웅동체도 아니고 아이가 혼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치 낙태가 합법화되면 '처녀성'을 가진 여자들이 걸러질 것이라는 투의 댓글을 보면서 같은 남자로서 부끄럽고,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어쩌다 이렇게까지 천박한 세상이 되었나? 그렇게 천박한 세상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잠자리를 강요할 수 있고, 그것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게 되었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천박함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조건 낙태에 찬성하는 페미니스트들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이라면, 진짜 여성을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낙태의 문제 이전에 우리나라의 성문화에 대한 담론을 끄집어내는 것이 맞다. 마치 여자들은 자유롭게 잠자리를 하고 낙태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듯한 얘기도 말이 안 된다. 잠자리를 하고 나서 혹시나 아이가 생겼을 까 봐 상대에게 말은 못 하면서 피임약을 먹고 나서 그 이후에 오는 신체적인 반응과 후유증을 혼자 감당하고, 그런 후에도 주기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불안해하는 게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자유로운 성관계'일까? 낙태를 한 이후에 여성들이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 혼자 감당해야 할 신체적, 심리적 후유증과 고통이 있을터인데 여전히 낙태가 여성들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것일까?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이라면 여성의 잠자리를 갖지 않을 자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잠자리 전후에 여성들의 심리에 대한 연구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주장을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여성운동이 아닐까...


만약 본인이 100% 자유의사로 잠자리를 가졌다면, 그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것이 맞다. 그러한 과정에서 생긴 아이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그렇게 하나의 생명체를 죽일 자유까지 보장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기 이전에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100% 자유의사로 편안한 마음으로 그 관계에 임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 말을 꺼내기라도 한다면 돌아오는 반응은 보통 '본인도 좋으면서 도도한 척한다' 라던지 '여자들이 더 즐긴다' 또는 '사랑한다면' 정도인데, 여자가 되어보지 않은 남자들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참으로 모순적이다. 남자들이 동굴로 들어가거나, 남자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을 때는 여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라며, 남자들의 세계를 여자들은 모른다고 하면서 마치 본인은 여자들을 다 이해하는 듯한 얘기를 늘어놓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여자들에게는 남자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고 해보라면서, 왜 여자들에 대해서 그런 노력을 하려 하지 않는 걸까? (물론 모든 남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경험해 본 '남자들만 있는 자리'에서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그런 분위기가 남자들 사회 안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정말 필요한 경우에 대해서는 낙태가 제한적으로는 허용되어야 할 것이고, 실제로 그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법제도를 손질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이뤄지고 있는 낙태에 대한 논의가 불편한 것은 그 과정에 <사람>에 대한 얘기는 빠져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어쩌면 아직도 그 점잖은 선비문화로 인해서 그 과정에 대한 적나라한 신체적, 심리적인 차원에서의 입체적인 논의를 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떻게 한 사람의 신체적, 심리적인 요소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 통계와 기술적인 논의만 오간단 말인가? 낙태에 대한 논의가 불편한 것은 다름이 아닌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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