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연맹의 문제를 보며
올림픽과 빙상연맹
난리다. 김보름, 노선영 선수 사태(?)로 인해 터뜨려진 빙상연맹 사태(?)가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는 느낌이다. 올림픽 이후에 본격적으로 말이다. 우선 김보름, 박지우 선수 인터뷰와 관련해서 얘기를 하자면 난 이미 온라인에서 난리가 난 이후에야 인터뷰를 봤는데 처음 인터뷰를 보고 나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무 4가지가 없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한걸음 더 물러나서 그 친구를 둘러싼 환경, 분위기, 그리고 노선영 선수의 발언들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성적지상주의에 빠진 우리나라 체육계, 아니 어쩌면 우리 사회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말이다.
부모들의 폭로와 파벌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 빙상연맹에 대한 폭로는 그 부모들이 열심히 터뜨리고 있다. 그리고 그 폭로의 주체는 대부분이 전직 국가대표나 자녀들이 주요 대학에 진학해서 스케이트를 탔던 부모들이다. 최소한 지금까지 봤을 때는 이번 폭로가 대부분 이승훈 선수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데, 노선영 선수가 폭로를 했던 것까지 종합하면 내용은 이렇다.
매스 스타트를 할 때 다른 선수들이 앞에서 페이스메이커를 하는 '탱크' 용도로 이용되고 버림받았다.
모든 훈련이 이승훈 선수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김보름, 박지우 선수와 이승훈, 정재원 선수가 특혜를 받아서 한체대에서 따로 훈련을 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여기에서 우리가 빠지면 안 되는 오류가 하나 있다. 그건 '스케이트 선수들의 부모가 절대적인 선'이라는 전제를 하는 것이다. 위 사실들이 객관적인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스케이트 선수를 키운 부모들이 그 자녀들을 봤을 때 어떤 심정일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특징들은 아래와 같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녀에게 운동을 시킨다는 것은 엄청난 자원,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녀가 운동을 한다고 할 때 필연적으로 '투자 대비 효과'를 따지게 된다.
문제가 되는 선수들은 최소한 또래 중에서, 혹은 중고등학교에서는 가장 운동을 잘하는 선수였다.
이러한 전제를 깔아놓고 봤을 때 그 선수들이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 마주하게 되는 또 다른 무리의 '또래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들'과 함께 했을 때 어떤 심정일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 기사에서는 특정 선수가 '다른 사람에게 몰아주기 위해 내가 희생된다'라며 분노했다며, 쇼트트랙으로 전환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거기에 가봤자 또 다른 애들을 몰아주다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그 부모가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그 선수가 진학한 학교, 그리고 속한 집단은 전국에서 각 연령별로 가장 잘하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 연령대에서 가장 운동을 잘했어도 그 집단에서는 실력이 가장 처질 수 있는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을 보면 각 연령대 대표를 다 지냈던 선수들이 프로에 가서는 후보에도 못 들고 2군에서 전전하는 경우를 우리는 쉽게 보지 않나? 또 본인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했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오히려 본인보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학점을 깔아주는 경우도 보지 않나? 이와 마찬가지로 본인 연령대에서 제일 잘한 선수는 운동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더 큰 물'을 만나게 된다. 문제는 워낙 잘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경쟁력이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 선수의 부모가 한 인터뷰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는데 그건 'A는 훈련을 따라가지 못하겠어서 좀 쉬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계속하게 하더라'라는 부분이었다. 여기에서 그 훈련은 A에게는 무리가 가는 것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그 훈련이 다른 선수들에게도 무리였을까? 아마 힘이 들어도 다른 선수들은 그 훈련량을 따라가지 않았을까 싶다. 즉,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결국 'A가 부족해서 훈련을 따라가지 못했다'라는 말이 된다. 만약 그것이 '선수별로 맞춤형으로 다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주장이라면, 그게 어느 스포츠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그리고 그렇게 주장을 한다면 그건 오히려 김보름, 이승훈 선수를 한체대에서 따로 훈련시킨 것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논리가 아닐까?
'실력'의 문제
만약 이승훈 선수가 나이가 더 들었어도 실력이 더 뛰어나다고 코치진이 판단했다면 사실 다른 선수는 필요에 따라 팀으로서 다른 역할이 부여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빙상계 전문가는 아니지만 만약 코치진이 이승훈 선수가 실력이 낫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경기를 진행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매스 스타트에서는 소위 말하는 '탱킹'이라는 전략을 다른 국가들도 쓴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인터뷰를 통해서 입증된 것이 아닌가? 또 사실 그렇게 전략을 짠 결과 이승훈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사실이 아닌가?
다른 선수 부모들이 지금 상황에서 '이승훈 선수 밀어주기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첫 번째로 그 부모들이 모두 '우리 아들/딸도 충분히 이승훈이나 김보름만큼의 경쟁력을 가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 이면에는 사실 조금 다른 계산이 있다. 이 역시 그 인터뷰에서 나오는데 'A를 지원하기 위해서 서울이랑 고향을 오가면서 훈련비, 의료비 등을 얼마나 많이 대줬는데...'라는 부분이 나온다. 즉, 그 부모들의 마음에는 '투자 대비 효과'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도 레벨의 선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그 정도 투자를 모든 부모들이 한다는데 있고, 지금 문제가 크게 부각되는 것은 이승훈 선수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키 플레이어로 활동하면서 메달을 땄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번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승훈 선수가 실력이 되는데도 메달을 충분히 땄다는 이유로 이제 무조건 다른 선수를 지원해야 하는 건가? 이승훈 선수가 그렇게 다른 선수들의 도움을 받아서 메달을 못 땄나? 다른 선수가 이승훈 선수보다 실력이 탁월하다는 게 입증이 되었나? 우리나라에서 이번 올림픽에서도 5천 미터와 1만 미터에 출전한 선수가 이승훈 선수밖에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적지상주의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빙상연맹이 보인 행각이 다 잘된 것이란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이승훈, 정재원, 김보름, 박지우 선수가 한체대에서 따로 훈련을 한 것은 다른 선수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만들기 쉬운 일이었다. 분명히 다 같이 스케이트 대표선수이고, 더군다나 노선영 선수에게는 팀추월에 집중하라며 개인전에는 출전을 많이 안 시켰으면서 그 팀추월을 같이 뛰어야 하는 선수들은 모두 따로 훈련을 시킨다면, 노선영 선수 입장에서는 '이게 뭔가' 싶은 게 당연하지 않겠나?
하지만 빙상연맹이 그렇게 훈련을 시킨 이면에는 파벌의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건 '메달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승훈, 김보름 선수는 매스 스타트 세계랭킹 1위이고, 금메달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정재원, 박지우 선수는 그들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줘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빙상연맹은 '메달이 유력한 종목의 선수들'을 따로 훈련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이런 훈련 방식은 <성적지상주의>적인 측면에서는 이해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그렇다면 노선영 선수 등을 같이 한체대에서 훈련시켜도 되지 않았냐?'라고 물을 것이고, 그건 아마 메달을 확실하게 따게 하기 위해서 그 종목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역량을 집중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 팀추월의 경우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은, 코치진이 노선영 선수는 팀추월에 집중하라고 한 반면, 남자의 경우 같이 출전하는 김민석 선수가 개인전에서도 주종목이 있어서 개인 훈련이 상당한 수준으로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태를 이렇게 들여다보면 사실 '파벌에 의해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부모와 빙상연맹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성적지상주의>에 대한 것이다. 김보름의 어머니는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딸이 이승훈만큼 할 자신이 있다고 해서 스케이트를 시켰다'고 말이다. 그게 모든 '스케이트 맘'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어쨌든 국가대표가 될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 사람들은 또래뿐만 아니라 전연령대에 비춰봐도 가장 스케이트를 잘 타는 선수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선수들 본인이나 부모 모두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빙상연맹은 <성적>만 생각하다 보니 그 안에서 소외되는 <사람>과 <과정>에 대한 생각은 잘 못했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말로 파벌일지도 모른다. 내부자가 아닌 내가 파벌은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안현수 혹은 빅토르 안 본이 문제가 되는 전명규 부회장과 관계가 좋다고, 본인이 러시아로 귀화한 것은 파벌 때문이 아니라고 밝혔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파벌 때문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심지어 안현수의 아버지까지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벌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수촌을 이탈한 심석희 선수의 사례 역시 '한체대 출신'이라는 점이 압박으로 작용해서 심석희 선수만 유독 혹독하게 다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지 않나? 하지만 '모든 것이' 파벌 때문인지,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메달중심적'으로 생각한다면 위에서 길게 설명했듯이 전반적인 상황이 논리적으로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한 선수가 다른 선수보다 실력이 탁월한지 여부는 '전문가의 영역'일 수밖에 없으며 파벌로 이익을 봤다고 주장되는 이승훈 선수는 다른 선수가 출전하지 않는 장거리에 유일하게 출전했고, 김보름 선수는 탱킹 없이 은메달을 따지 않았나? 그들이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매스 스타트 예선에서의 '따로 들어오기'와 김보름 선수의 인터뷰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박지우 선수는 김보름 선수를 열심히 따라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엄격한 잣대로 그 발언을 판단하지만 박지우 선수의 나이, 선수단에서 위치, 인터뷰 경험 등을 비춰봤을 때 박지우 선수가 악한 의도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 이후에도 박지우 선수가 노선영 선수와 같이 있는 장면들이 사진으로 종종 찍혔고, 김보름 선수와 노선영 선수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이미 빙상계에 알려져 있던 사실이라고 기사가 나오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는 구조적인 상황을 바꿀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서는 그 선수가 그렇게 행동하고, 인터뷰를 하기까지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선수의 행동과 인터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환경과 분위기가 영향을 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성적지상주의'
분명한 것은 지금 이런 문제들이 발생한 이면에는 우리 사회 전반에도 만연해 있는 <성적지상주의>가 영향을 주었다는 데 있다. 부모들은 본인의 자녀가 메달을 따고, 연금을 받고, 성공하는 것을 보는 것이 자녀들에게 운동을 시키는 주된 목적이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운동을 하는 선수도 그 영향을 받아 어느새 자신이 좋아해서 시작한 운동 자체보다도 그 목적이 주가 되는 것이 현실 아닌가? 박승희 선수가 쇼트트랙에서 스피드로 전향한 이유가 기대에 대한 부담감 등을 들었던 것이 이를 잘 보여주지 않나? 그리고 빙상연맹이 같은 '팀'이라는 선수들을 따로 훈련시킨 이면에도 역시 '메달만'을 목표로 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런 모습들이 과연 빙상계에만 있는 걸까? 어떻게든 성공만 하면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나라에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본인의 자녀가 다른 선수보다 실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 다른 영역에서는 없나? 난 아직도 영어학원 강사를 할 때의 에피소드를 잊지 못한다. 한 달이 지나고 그 학생에 대한 피드백을 가정통신문을 집으로 보냈는데, 그다음 날 그 어머니께서 학원으로 찾아와서 본인의 아들이 그렇게 소극적인 아이가 아니라고, 선생님이 잘못 보신 거라고 약 30분을 내게 설명을 하고 돌아가셨고, 그때까지 한 번도 손을 들고 자발적으로 말한 적이 없었던 그 아이는 그다음 날 수업부터 고개를 아래로 숙인 상태로 손을 들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 아이의 표정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느꼈던 미안함도...
물론 성적이 잘 나면 좋다. 그런데 때로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일들에서는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 이는 한 번의 경기는 지나가면 끝나는 것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경험한 것은 그 사람에게 평생동안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빙상연맹 사태에서도 우리는 단순히 '파벌'만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특정한 현상들을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문제들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해도 선수들을 격려하는 국민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희망을 발견한다. 변화는 원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변화의 과정 속에 있을 뿐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