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에 대하여

by Simon de Cyrene

브런치 글들에서 몇 번이나 썼지만, 지난 몇 년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그리고 객관적으로도 힘들어할 만한 시간이었다. 어느 순간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가장 가까이서 봐온 사람들이 함부로, 쉽게 '잘 될 거야' '힘내'라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사실 그런 시기가 올해 2월, 정확한 시점을 말하자면 이번 주 월요일에 끝날 줄 알았다. 물론 그 시기가 밀린 것은 이미 두 달 전의 일이다. 박사학위논문 심사 종심에서 조금만 더 다듬어서 다음 학기에 졸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그것도 심사위원 5분 중에 3분은 조금 더 수정해서 2월에 졸업시키자고 하셨는데 말이다.^^ 그렇게, 조금 더 내 인생의 터널이 길어졌다. 물론 내가 너무 나태하지만 않다면 8월이 그 터널의 끝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그런데 2017년 12월 28일에 그렇게 종심을 마치고 내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졌다. 처음에는 며칠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한 주, 두 주 가더니 결국 다시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 싶을 때까지 두 달이 걸렸다. 그렇게 오래 걸린 신체적인 이유는 운동을 작년 하반기에 제대로 못해 체력이 떨어지고 몸무게가 늘었던 것도 모르고 무리해서 3-4달 정도를 달린 후유증 때문이었고, 정신적으로는 너무 오랫동안, 짧게 잡아도 4-5달, 길게 잡는다면 5-6년간 거의 항상 어느 정도 긴장 상태로 있었던 것이 풀렸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무너지니 깊은 회의감이 몰려왔다. 이 논문을 써봤자 누가 읽을 것인가, 공부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그 안에서 버티고, 헤매이면서 두 달을 보냈다. 그렇게 휘몰아치는 감정과 생각들 속에서 하나의 논리 체계로 딱딱하게 적어 내려가야 하는 논문 작업을 많이 못한, 아니 거의 못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문득 깨달았다. 내가 내 학위논문을 정말로 내가 믿는 신념, 가치,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위해서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졸업하기 위해서, 학위를 받기 위해서 쓰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 안에 담긴 것들은 나의 생각이지만, 그 주된 목적이 글 내용에 있지 않고 글을 완성함으로써 따라오는 것들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러게 휘몰아치는 감정과 생각 속에서 '내가 왜 논문을, 글을 써야 하는지'와 왜 살아야 하는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이유는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산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하기 위해 산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산다. 하지만 누구도 어떤 삶의 목적을 판단할 권한을 갖진 않는다. 물론 삶의 목적에 따라서 그 삶에서 누려지는 행복의 질은 천지차이가 나기에 그에 대한 평가는 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어떠한 목적은 그것을 달성한 순간 허무함 밖에 남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목적이 누군가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사실 우리 삶의 목적은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면서 계속해서 바뀌지 않나? 따라서 지금 누군가의 삶의 목적이 가벼워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비판하거나 그에 대해서 비아냥 거릴 이유는 없다.


누군가가 내게 '너는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삶의, 사회의 의미와 그 안에 있는 가치에 대해서 설명하고 글로 남기기 위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몇 명이라도 그것을 통해 조금 더 양질의 행복,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내 삶 또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것 이외에 내 삶의 다른 것들은,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더 잘하기 위해 필요한 보조재로써의 역할을 갖는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친구이자 선배인 친구(?)가 번역한 '남아 있는 날들의 글쓰기 (출판사:xbooks)'라는 책을 접했다. (사실 친구가 번역을 한 책이기에 태클을 걸기가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이 책의 내용과 저 제목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Art of Death-Writing the Final Story'라는 제목을 적절하게 번역하는 게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고, 나도 어떻게 번역하는 게 맞을지는 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지만... (죄송)...)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영어 제목이 잘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이 책이 저자의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며 그 사이에 소설, 수필 등 문학 작품들 속에서 죽음이라는 주제, 즉 삶의 마지막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엮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첫 번째로는 나만 죽음이라는 주제를 꽤나 자주, 깊게 묵상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고, 두 번째로 잘 죽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잘 살기 위한 삶을 사는 것보다 아름다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죽음을 미루려고 하지만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지 않는가? (물론 죽지 않기 위해 죽기 직전에 자신의 신체를 급속 냉동시키는 이들도 있지만 그게 어디 사는 것인가? 살아도 산 게 아니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망각한 상태로 하루, 하루를 살며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더 잘 살기 위해서' 매일 버둥거리며 살지 않나?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더 잘 살기 위해서 지금, 현재의 삶을 희생시키기도 하지 않나? 그렇게 '잘 살기 위한 삶'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버둥거리게 되어있지만, 잘 죽기 위한 삶은 이 땅에 자신이 무엇을 남기고 어떤 삶으로 기억될지를 순간순간마다 의식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래서 그 이름을 기록에 남기기 위해 삶을 치열하게 살지만, 그리고 그렇게 이름을 남기는 것이 과거에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인쇄술과 인터넷이 엄청난 수준으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이름만 그렇게 기록에 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우리는 항상 더 잘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인간은 깊은 내면에는 우리의 육체는 죽어도 이름을, 삶을 남겨서 이 세상에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인간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자신이 살았던 과정으로서의 삶을 통해서 계속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코코'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는 잘 죽기 위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잘 죽음으로 인해 더 잘 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 산다는 것은 각자의 삶의 영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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