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개인'으로의 전환과정
어제 '기준'이라는 글을 쓰고 구독자가 갑자가 몇 명이 줄었다. 예상하지 못했기에 놀랐다. 기독교 글을 쓰고 나서 구독자가 줄면 '그러려니...' 했는데 '기준'이라는 글은 그럴 여지가 없는 글 같았기에 놀랐다. 그런데 어제 안희정 지사에 대한 뉴스가 나간 이후에 사람들이, 지인들이 SNS에서 보인 반응들을 보면서야 이해가 되었다. 피해자의 인터뷰를 보지도 않고 연인관계였다가 헤어지려고 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 '미투 운동'의 범위가 어디까지냐고 묻는 사람 등의 반응들을 통해 성추행과 성폭력에 대한 시각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너무나 이미지가 참신하고 좋았던 한 정치인의 몰락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내가 계속 이 주제와 어떻게든 관련된 글들을 쓰게 되는 것은 첫 번째로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남자인 나도 어찌 보면 별것 아니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은 추행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 동아리와 교류하는 술자리에서 나보다 6살 많은 상대 학교 여자 선배가 허벅지가 굵다며, 힘이 좋겠다며 '벅지야'라고 계속해서 부르며 내 허벅지를 만지던 경험은 지금 나오는 폭로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지금도 내 기억속에 수치스럽게, 매우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렇다면 나보다 훨씬 더 심한, 그리고 억압적인 상황에서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의 충격은 그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생각이 내가 계속 그와 관련된 글을 쓰게 만든다.
내가 이와 관련된 글을 쓰게 되는 두 번째 이유는 내가 과거에 만났던 친구가 성추행당한 얘기에 대해서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여자친구에게 우연히 전화를 했는데 남자들과 술을 엄청나게 마시는 분위기였고, 휴대폰이 꺼지지 않은 상태로 당시 분위기를 접했는데, 그 자리가 남자 친구로서 뭔가 기분이 좋지 않을 분위기였다. 그 이후에 무슨 자리였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한참을 망설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며 했던 이야기들에 나는 엄청나게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상대가 사회적으로 너무나 힘이 있는 자리에 있었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그로 인해 엄청나 무력감을 느꼈었다. 그때의 분노와 복잡한 감정들이 내가 계속 그와 관련된 글을 쓰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미투 운동의 시작은 울림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것들까지 다 나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 지금 터져 나오는 사실들 중에는 나도 '저건 상대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죽이려고 꺼내는 얘기 같다'는 사례들이 있기에 그 얘기에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만약 그게 '별것 아닌 사소한 사건들도 다 튀어나온다'는 의미라면 난 그에 동의할 수 없다.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큰 맥락에서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 그리고 그에 저항하고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서 성추행, 성폭력에 대해서 폭로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짜잘한(?) 성추행 정도에 대한 폭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미인 것으로 해석되는데, 난 그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생각의 기저에는 '사회적인 문제를 문제를 고발하기 위한 미투는 의미가 있지만 개인이 추행당한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냐'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나는 해석한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 우선 던져야 하는 문제는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일이 어떻게 사회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도 매우 작은 사회 속에서의 문제가 아닌가? 두 번째로 그러한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사회구조나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다면 아주 작은 일들이라도 사회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고, 그런 문제들 간의 우열을 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도 본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본인이 그로 인해 피해를 받을 것이 두려워서 그러한 경험을 공개하지 못하고 짧게는 몇주에서 몇달, 길게는 20-30년을 앓아왔다면 그건 분명한 사회적 문제가 아닐까?
가장 중요하게는, 난 일부 살마들이 사소하다고 말하는 사건들이 폭로됨으로서 개인의 사적 영역에서의 권리도 공적 영역에서 보호해주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에 사적 영역에 속했던 문제들이 공적 영역으로 끄집어내진다는데 있다고 설명하는데, 그건 분명한 사실인 듯하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개인'이 중요해지고 존중받는 사회에서는 그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도 갖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사소하게 보이는 성추행들이 '미투'를 통해서 알려지는 것은 수십 년 간의 '실질적인 독재'를 해방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겪은 우리나라를 덮고 있던 '사회적인 것'을 강조하고 '집단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개인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사소한 성추행, 성폭행 사례들이 알려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성추행 혹은 성폭력 사건이 터지면 '여지를 준 것 아냐'라고 반사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어르신들은 그런 성향이 남녀를 불문하고 상당한 수준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말로 여지를 줬다고 치자. 그래도 개인을 존중한다면, 한 사람을 인격체로 존중한다면 그 사람이 명시적으로 동의하는, 합의하는 의사가 있지 않았고, 심지어 미약하게라도 거절의 의사를 어떻게든 표시했다면 그 '여지를 준 것'이 그러한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그 사람의 신체는 오롯이 그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질적인 동의와 합의가 있었는지 여부가 애매한 경계에 있는 사례들이 있는 것도, 본인이 동의한 이후에 그 경험 자체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러한 사람들은 분명하게 분별해 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인격살인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직접 성폭력이나 성추행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주 사소하게라도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충격을 주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아마 그래서 '뭐 그 정도를 갖고 그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본인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소한' 성추행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자. 본인의 여동생, 어머니, 여자 친구나 아내가 말이다. 그래도 그게 사소하게 느껴지겠나? 내가 20대 초반에 6살 많은 누나들에게 당한 그 사소한, 혹자는 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 경험에서 느껴졌던 수치심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그 개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줬을까?
어떤 이들은 <사소한 성추행, 성폭력이 무슨 사회적인 문제냐>고 할지 모른다. 물론 당신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건 세상에 무너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경험일 수 있으며 그 사람은 '사회적인 이유'로 혼자서 그 사실을 품고 살아왔어야 했다는 면에서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분명히 사회적 문제다. 그리고 그러한 사소한 사건들도 사실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개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또한 사회가 '근대화'된다는 것은 개인을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하는바, 우리 사회가 더 '근대화' 되어가는 과정에서는 그러한 개인의 영역에서의 상처와 피해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법으로 강제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로 개인을 보호해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적 변화가 아닐까?
무엇보다도 그런 사소한 사건들도 알려지고 폭로될 때야 비로소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소한' 행동들도 조심하지 않겠나? 안희정 지사에 대한 폭로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러한 사소한 사례들도 알려지는 와중에도, 그에 대해서 사과를 하는 자리에서도 그가 자신의 비서에게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데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잃을 것이 그렇게 많은 사람도 그렇게 행동할 정도라면, 알려지지 않은 가해자와 피해자들은 얼마나 많겠나? 사소하고 어쩌면 의미 없어 보이는 사건들에 대한 폭로가 단 한명의 피해자만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건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