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과 행복은 다르다.
'쾌락'의 의미
'쾌락'이란 말이 주는 뉘앙스는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쾌락이 그 자체만으로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그 단어를 듣자마자 뭔가 방탕하고 타락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은 누구나 쾌락을 좇지 않아?'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렇듯 어느 한쪽으로 평가가 쉽게 쏠리지 않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할 때면 난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쾌락은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 /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으로 정의된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유쾌'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그건 즐겁고 상쾌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즐겁다는 것은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쾌락, 유쾌, 즐겁다]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를 보면 쾌락이라는 것은 결국 느낌과 마음 상태와 관련된 것이며, 쾌락이라는 것은 자신의 욕구 또는 욕망이 충족됨으로 인해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없고 기분이 좋은 상태를 의미한단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쾌락이 '느낌'과 '마음 상태'와 관련된 것이 중요한 것은 그 두 가지는 일시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쾌락이라는 것은 기분이 좋은 것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만족되는 것을 의미한단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은 그러한 상태에 금방 적응하고, 그 상태에 적응하고 나면 더 강한 것을 찾게 되어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한 아이가 한 달 용돈을 1만 원만 받다가 그다음 달에 5만 원을 받아서 즐거운 상태가 되었다고 치자. 5만 원을 처음 쥐었을 때의 즐거운 상태는 과연 얼마나 갈까? 추측컨대 그러한 즐거움은 길어도 2-3개월 밖에 가지 못할 것이고 5만 원을 받는데 익숙해진 그 아이는 똑같은 수준의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는 10만 원을, 그 이후에는 20만 원을 필요로 할 것이다.
따라서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항상 더 강한 자극, 더 많은 무엇인가를 추구하게 되어있다. 인간은 외부의 무엇인가가 주는 그 순간의 즐거움에는 쉽게 적응하고 무뎌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쾌락과 행복의 차이
어떤 이들은 '쾌락'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상태에 대해 '행복'이라는 표현을, 어떤 이들은 그 반대로 그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 두 가지는 분명하게 구분될 필요가 있는 개념이다. 이는 '행복'은 사전적으로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라고 정의되는데서 알 수 있다. 행복을 정의하는데 '생활'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행복은 특정한 행위나 계기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들이 조합되어서 나오는 감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족'이 사용된 것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안에서 가득 찬 느낌을 의미한단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흡족하여 매우 만족스럽다는 것을 의미하는 '흐뭇함'이 사용된 것은 행복이 단순히 순간의 마음'상태'가 아닌 마음 전반에 대한 것을 묘사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행복'은 '전반적인 마음의 상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순간적인 느낌'을 의미하는 쾌락과는 그 뜻을 달리 한다. 즉, 이 두 가지 개념은 비슷한 느낌을 말하지만 행복은 내면에서부터 무엇인가가 차 있고 그로 인해 충족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쾌락은 내면과 무관하게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합니까?
여기까지 설명을 읽으신 분이라면 '당연한 얘기를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하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몇 가지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쾌락'인가? '행복'인가? 누군가와 스킨십을 하는 것은? 좋아하는 옷을 입고 밖에 나가는 것은?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는 것은? 받고 싶었던 선물을 받은 것은? 일을 잘해서 상을 받은 것은? 회사에서 승진한 것은? 연봉이 당장 몇 백만 원 오른 것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보통 '쾌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행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사실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행복이 아니라 쾌락이다. 이는 그 즐거운 느낌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기분 좋은 게 얼마나 오래가는가? 보통은 길면 3-4시간에서 정말 엄청나게 길면 며칠 정도 갈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기분이 며칠이나 간다는 것은 그것을 먹을 때를 회상할 때 잠시 기분이 좋아진 것을 의미하지 그 음식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몇일씩 기분이 좋은 경우는 별로 없다. 이는 위에 있는 다른 예시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승진해서 연봉이 조금 오르고 나면 기분이 좋은 것도 잠시뿐,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금액이 우리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닫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런 것들이 중요하거나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난 쾌락'주의'자는 아니지만 쾌락은 우리가 일상에서 순간순간 힘을 내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쾌락'이라는 말만 들으면 부정적인 느낌을 받는 사람은 조금 변할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쾌락'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는 점점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러한 자극을 통해 받는 즐거운 느낌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삼시세끼 그 음식만 한 달, 아니 일주일 이상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아무리 본인이 좋은 옷이라고 해도 그것만 입고 살 수는 없지 않나?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새 것 밝힘증'이 어느 정도씩 있는 것은 사실 쾌락으로 인해 느끼게 되는 즐거운 듯한 느낌의 특징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런 일들에 대해 '행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그리고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사실 물질적인 필요가 충족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이 주는 영향이 보통은 더 크며, 마음의 흐뭇한 상태는 사실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마음이 안정감을 느끼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정감이란 것은 결국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미래가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할 때 생기는 감정적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일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보고 내 삶이 그들로만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만큼 흐뭇한 마음이, 그만큼 기분 좋은 생활이 또 있을까?
인간에게 사랑이, 사람이, 그리고 자존감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한 연구들은 인간은 그러한 필요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돈을 조금 더 잘 벌고, 더 좋은 것을 입고, 먹고, 누리고, 소유하는 것이 주는 순간적으로 기분 좋은 느낌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사람'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조상들보다 행복한가요?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사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한반도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그 누구도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살진 못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에 '상위 1%나 그렇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굳이 일제 치하나 6.25 전쟁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닭갈비'라는 말이 갈비를 먹을 수 없는 서민들이 닭을 갈비라고 생각하고 구워 먹으면서 생긴 말이라는 점, 조선 말기에는 삶이 너무 힘들어서 술에 찌들어서 사는 사람이 엄청 많아서 그게 사회적인 문제가 될 정도였다는 점, 백일을 기념한 것은 백일 이전에 죽는 아기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점만 봐도 사실 우리 사회에서 최소 90%는 우리 조상들의 최소 90% 이상보다는 풍요롭게 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사람들이 '쾌락'을 '행복'으로 착각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쾌락을 행복으로 착각함으로 인해 쾌락을 주는 지점을 계속 추구하고, 그러다 보면 같은 자극에는 무뎌지면서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단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쾌락을 좇고, 더 많은 것을 가질수록 사람들은 불행해지게 되어있다. 이는 재화와 자원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더 강한 자극을 받기 위해 쾌락을 추구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발생하게 되어 있고, 그 갈등은 결국 관계를 깨는 결과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가족을 죽이고, 자신의 물건을 형제가 썼다고 구타하고, 음식점이 하루에 제한된 수량만 판매한다고 욕설을 퍼붓는 현상들은 사실 모두 결국 자신의 쾌락만을 생각하고 상대방과의 관계는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어른들은 항상 '예전에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않았어도 행복했는데...'라는 말을 종종 하신다.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도 '요즘 아이들은 우리보다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지 않겠더라. 우리 때는 부모님께서 집에 안 계셔도 옆 집에 가서 놀고, 친척 집에 가서 놀 수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참 외롭더라'라고 하시더라.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는데 더 외로워졌다. 이는 사람들이 나눠 먹을 수 있는 파이가 아예 눈에 보이지를 않을 때는 다 같이 힘들다 보니 같이 생존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로 눈을 돌리게 되었는데, 이젠 나눠 먹을 수 있는 게 눈 앞에 보이니 조금이라도 더 가짐으로써 느낄 수 있근 소유로 인한 쾌락을 추구하게 되면서 서로를 짓밟기 시작해서인지도 모른다.
쾌락과 행복은 얼핏 느낌은 비슷하지만 그 두 가지는 그 느낌을 만드는 근원지부터 다르다. 그리고 둘 중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시선이 향하는 곳도 달라지게 되어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쾌락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무게중심을 '행복'에 둬야 한단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