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만능 열쇠는 아닌 그것

by Simon de Cyrene
이민 가고 싶다는 이유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툭하면 '이민 가고 싶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거친 표현으로는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다'는 표현이 쓰인다. 그런데 꼭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미세먼지가 심할 때, 무엇으로 먹고살지 모르겠을 때, 아니 최근에는 그보다도 작은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사람들은 '이민'이라는 말을 쉽게 꺼낸다.


개인적으로는 언어생활에서 단어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의 생각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그 말이 우리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민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꺼내는 것을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답답하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뿐인데 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느냐'라고 물어볼지 모른다. 하지만 첫 번째로 사람들은 절대로 본인 마음에 있지 않은 말을 꺼내는 경우가 없고, 두 번째로 그 마음이 크지 않다 하더라도 그 말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그러한 생각은 본인 안에서 강화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민 가버릴까' 식의 말은 분명 긍정적인 의미를 갖진 않고, 그렇다면 그 부정적인 뉘앙스는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이민을 가면 해결될까?

그렇다면 이민을 가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일단 미세먼지 문제의 경우 아무래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유럽 등 어디로 가든지 중국 옆에 붙어있는 우리나라보다 상황이 좋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미세먼지뿐 아니라 한국에서 특정 국가나 지역으로 이민을 가고자 하는 요인에 대해서는 그 지역으로 이민 가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유럽으로 이민을 갈 경우 (지역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세먼지를 피해도 여름에는 밤이 되어도 날이 어두워지지 않고, 겨울에는 수개월 동안 해를 보지 못하면서 살아야 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로 가는 것이 아닌 이상 겨울에 말도 안 되게 춥거나 여름에 발을 내딛지 못할 정도로 더울 수도 있다. 뉴질랜드는 그러한 측면에서 큰 문제가 없지만 내 지인들을 보면 뉴질랜드 안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컴백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더라.


사실 미세먼지 등의 환경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생각하는 배경에는 '학력으로 인한 서열화'를 포함한 취업문제와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생각이 있는 경우가 많다. 전자의 경우 외국에 나가서 조금 더 공정하게 경쟁을 해서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이 목표로 설정되고 후자의 경우 아이들이 한국과 같은 과도한 경쟁이 있는 사회에서 살지 않게 해주고 싶단 마음이 작용하게 된다. 두 가지 모두 일리가 있고 말이 되는 이유들이다.


하지만 이민을 간다고 해서 그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는 첫 번째로 사람들이 이민을 가고자 하는 국가들은 이미 그 안에 어느 정도 경쟁구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열심히 사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으며, 나이가 들어서 취업을 목적으로 이민을 가려는 경우에는 언어적인 문제로 인해서 적응과정은 물론이고 일을 하면서도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매우 높다. 거기다 한국 사람은 어디든지 이민을 가면 소수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어느 사회에서든 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든지 있다는 것은 기본으로 전제된다.


이민 자체가 해결책은 아니다

외국에 진출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자신의 팀에 있는 용병들에게 잘해준다고 한다. 그건 본인들이 외국인으로서 다른 지역, 다른 리그에서 살면서 그 과정이 얼마나 쉽지 않은 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민을 가서 잘 정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삶보다 이민 후의 삶을 훨씬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인터뷰나 글을 보면 그런 사람들 중에서는 이민 자체가 목적이었다기보다는 다른 이유로 그 나라에 체류하러 갔다가 그곳이 잘 맞아서 정착하게 되었거나, 큰 욕심 없이 소박한 것에서 만족하면서 주변 환경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이는 아마 그들이 해당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이민에 대한 환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고, 그 환경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것보다 본인 성향에 맞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잘 적응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보다는 현지 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이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어디에서든지 소수자로 사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주해 간 사람들 중에는 '더 누리기 위해서' 간 사람들보다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다 보니 나가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이민을 절대로 미화하지도 않고, 떠나기 전에 환상을 갖고 이민을 입에 달고 있지도 않단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회는 없다. 한국이 완벽하지 못한 것처럼 어디로 이민을 가던지 그곳에서도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따라서 정말 이민을 갈 생각이 있다면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하고, 자신이 이민을 고려하는 곳에서의 [삶]이 어떤 지도 면밀히 검토한 후에 일정기간 동안 그 지역에서 직접 살아보고 나서 이민을 결정하는 것이 맞다.


만약 자녀를 위해서 이민을 검토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자녀가 정체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혼란스러워할 것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버지께서 무역회사에 다니셔서 총 8년 반 정도를 해외에서 학교를 다닌 내 경험에 의하면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인이고, 한국인에게는 외국인 같이 취급을 받는 삶은 녹록지 않다. 그리고 외국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경우 한국에서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결국 한국과 접점을 찾거나 한국으로 아예 돌아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미리 알고 결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특정 사회에서 소수자인 한국사람은 그 사회에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민'이라는 말의 폭력성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정말 이민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들은 '이민'이라는 말을 그렇게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다. 그들은 보통 가족이나 매우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나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린다. 이는 이민 가는 것을 실제로 고려하기 시작하면 그 끝에 있는 삶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이민 가버려야 돼'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떠벌리고 다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그 말이 폭력적인 것은 첫 번째로 그 말은 '내 잘못은 하나도 없고 다 남 탓이야'라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나? '대한민국을 떠나버려야 해'란 것은 '대한민국만 뜨면 난 잘 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말 아닌가? 정말 그러한가? 어떻게 본인의 처지나 상황이 '전부' 우리 사회의 탓이란 말인가? 물론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 그래서 빛을 봐야 할 사람도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국가와 사회의 탓인 것은 아니다.


두 번째로 그 말은 본인은 본인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본인이 바꿀 생각이 있다면 '이민'이라는 말을 그렇게 떠나겠나? 그런 사람들은 이민을 가서도 그 사회의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만 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개인들이 국가의 주인이며, 그에 따라 국가 안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을 함께 하는 정치체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인으로써 우리가 속한 사회의 작은 영역들만이라도 어떻게든지 바꾸기 위한 노력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에는 분별력을 갖고 국가적인 의사결정을 지혜롭게 잘하고 끌고 가는 사람들을 선출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선거는 과연 그렇게 '인물 중심적으로' 이뤄지고 있나?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는 아직도 '무지몽매한 패거리 문화'적인 모습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무지몽매한 상태로 한 표를 던지면서 우리나라가 더 나아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마음으로 살 것인가?

외국에서 8년 반을 살면서 내가 느꼈던 이방인으로써의 감정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래서 내가 다수에 속해 있는 사회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또 그래서 이 땅에 소수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그리고 난 내가 다수이기에 차별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이 사회 안에서 발버둥 치며 이 사회가 조금 더 성숙해지고 앞으로 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고 싶다. 그것이 아주 작은 변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이 사회에서 한 사람이라도 덜 힘들게 살 수 있게 만들고 싶다. 힘들어도, 갑갑해도 내가 '이민'이라는 단어는 죽어도 입에 붙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국가가 날 위해 무엇을 해줬느냐고 묻는다. 물론 국가의 덕을 더 본 사람도 있고 덜 본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차이로 인해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국가에게 받은 것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 그걸 판단하거나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국가 없이 우리가 자연상태 혹은 원시시대에 태어났다고 생각해보자. 도로도, 하수시설도, 국가가 제공해주는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도 없이 말이다.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지금 살아있는 성인들 중에서 대부분은 아마 성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국가의 덕을 더 본 사람이 덜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분배해주는 곳일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실제로 세금을 통해서 그런 역할을 일부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에 대한 인식도, 그러한 재분배의 수준도 충분하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분단되어 있는 현실로 인해 재화의 재분배에 대한 얘기만 꺼내면 '빨갱이'로 내몰리고 만다.) 사실 그게 완벽하게 되는 국가는 현실에 없고,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든지 우리가 속한 사회를 그런 방향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단 것이다.


그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입에 '이민'을 달고 다니면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와 그런 상황을 버텨내면서 그 사회를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려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거나 더 천천히 나가는 데는 불평불만만 하나 가득 있고 본인은 이 사회가 나아지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고민하지 않으면서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민 얘기만 하는 사람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ps. 이민 자체를 비판하려는 것도, 이민을 가서는 안된단 것도 아니다. 이민을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민 간 곳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삶을 보면 나는 이 나라가 저런 사람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