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과유불급

by Simon de Cyrene
댓글을 읽다

연예인들이 예능에서 댓글 얘기하는 걸 접했다. 사실 처음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난 댓글은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반복적으로 접하게 됐고, 도대체 어떤 댓글들이 달리길래 저런 얘기를 하나 싶었고, 그게 궁금해서 읽어본 '연예'란의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천박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제야 왜 소속사들이, 연예인들이 악플러들에게 소송을 제기하는지가 이해가 됐다.


사실 꽤나 오래전에 이 매거진에 '댓글'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글을 쓰다 지웠다. 사람들이 댓글에 대해서 하는 다른 말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댓글을 쓰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만약 사춘기를 지나는 학생들이, 아니면 정말 인성이 일상에서도 쓰레기 같은 사람들만 댓글을 쓴다면 이해가 되지만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너무나 멀쩡한 회사를 다니는 멀쩡한 사람이 악플러로 밝혀졌던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았었는데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렇게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악플을 달고 있는지가 말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기사를 읽으면 댓글들을 훑어본다. 그래도 요즘에는 기사에 따라서 응원하고 선플을 다는 경우도 많고, 정말 쓰레기 같은 댓글에는 대댓글로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긍정적인 댓글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던 중 어제 황교익 씨 페이스북에서 황교익 씨가 '나에 대한 비판, 또는 나를 싫어하는 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실을 왜곡하면서 나는 비난하는 건 다르다'는 요지로 글과 화면 캡처를 올린 것을 보고 순간 깨달았다. 사람들은 댓글을 다는데서도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댓글 속에서 경쟁하다

사실 악플 혹은 댓글들을 보면 그 내용은 '내가 옳고 너는 틀렸어'라는 생각이 전제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악플이 아니더라도, 드라마의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특정 사람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에 대한 불만 혹은 지적을 제기하는 댓글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그걸 만드는 사람들 마음대로 만들면 되는 것인데 그 결론까지 본인 마음대로 하려는 건 무슨 심리일까 싶고, 누군가가 정말 싫다면 보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왜 시간을 들여서 그 기사에 댓글을 달고 있을까 싶었다. 때로는 기자들이 자극적으로 뽑은 제목만 보고 기사의 내용은 보지 않고 반사적으로 다는 댓글들을 보면 왜 이렇게까지 댓글을 달지가 의문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 댓글과 관련된 사람이 소송을 하겠다고 나서면 급격하게 위축된다는데 있다. 사실 내 브런치 글을 내용 중 일부만 발췌해서 특정 커뮤니티에서 퍼간 후, 본인들끼리 그 안에서 댓글로 나를 비난하던 중에 몇몇 사람들이 그 포스팅에 나를 비난하는 댓글을 단 적이 있다. 그래서 정말로 소송을 할 각오로 경고를 하는 댓글을 달았더니 그 이후에 댓글이 달리지 않을 뿐 아니라, 내 글을 퍼담은 그 커뮤니티의 포스팅에 달렸던 악성 댓글들도 본인들이 삭제한 것을 직접 본 적이 있다. 연예인들에 대한 악플을 달아서 신고를 받은 이들도 마찬가지로 반응한다는 것을 몇몇 기사들 통해 접하면서,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강한 모습에 적잖이 황당해했던 기억들이 있다.


그런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아마 기본적으로 무슨 이유에서든 본인 삶에 있는 불만을 표출해 낼 방법이 없기에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특정 주제, 특정 인물들에 대해서 비아냥거리거나 비난하는 댓글들을 다는 것일 테다. 그리고 그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겨우 글 몇 줄'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 몇 줄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또 그렇게 별생각 없이, 필터링 없이 뱉어낸 말들이기에 그에 대해서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당황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사람들이 왜 악플을, 악플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작자를 비난하거나, 본인 생각대로 드라마나 예능이 편집이 안된 것에 대해서 댓글에서 화를 내는지는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그런데 황교익 씨의 포스팅에 달린 댓글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댓글에서 본인 혼자서 경쟁을 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이다. 사실 누군가와 경쟁을 할 때, 특히 남자들의 경우 상대가 본인보다 더 잘 나 보이면 일종의 허세를 부리면서 본인이 더 작은 사람이 아님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가? 그리고 보통 본인이 갖고 있는 것으로 승부가 안될 때 거짓말을 지어내면서까지 본인이 더 큰 사람이라고, 잘난 사람이라고 내세우려고 하지 않는가? 그 모습이, 황교익 씨 포스팅에 달린 댓글에서 보였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경쟁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실 경쟁은 '내 <스스로> 특정 분야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다른 그 분야에서 다른 사람의 능력과 <겨뤄보는 것>'이 그 본질적인 성격인데, 우리 사회에서 경쟁이란 상대방을 짓밟고 내가 올라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그러한 경쟁을 배운다.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부터 다른 아이보다 말을 빨리 해야 하고, 빨리 걸어야 하며, 영어를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나는 결혼하기 전부터 '아이는 강남에서 키워야 하고, 몇 살에는 뭐를 공부시키고, 몇 살에는 뭐를 시켜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꽤나 많이 봐왔다. 생기지도 않은 아이에 대해서, 그 아이의 적성이나 성향이 어떨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부모가 될 사람이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그 생각이 얼마나 강화되어 있겠나? 그런 생각을 미리부터 하고 있다면 그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는 그 생각이 확신으로 변해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은 세상을 알기 전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그렇게 경쟁에 내몰린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은 세상은 반드시 경쟁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순위 경쟁이 시작된다. 그렇게 순위 경쟁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 문제가 에세이를 작성하는 형식이 아니라 단답형이나 객관식으로 나오는 평가제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잘 찍고, 잘 외우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 등수에만 집착하는 문화는 계속 이어지고, 그런 등수의 성격이 조금 약화되고 본격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학생들은 당황하게 된다. 그들은 등수만 생각해 왔지, 지금 눈 앞에 닥친 경쟁만 생각해 왔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물론 교과서에 쓰여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도, 부모도 아이들에게 경쟁하고 암기하도록 강요를 할 뿐, 생각하고 고민하는 능력, 세상을 보는 능력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이겨야 한다고 가르칠 뿐 '잘 지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고,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 아이들은 세상에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한다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쟁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경쟁을 통해서 사람은 더 치열하게 노력하게 되고, 인류의 발전을 끌어온 것도 경쟁이었다. 하지만 '경쟁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사회'는 다르다. 그런 사회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을 뿐이다. 이는 모든 경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인데, 사회는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어서 한 단계를 거칠수록 승자의 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종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패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보다는 차라리 불편한 원시적인 사회에 살면서도 경쟁하기보다는 잘 어울려 사는 사회가 경쟁을 통해서 고도로 발전된 사회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경쟁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필요하지만, 하나의 영역에서 경쟁의 결과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실 더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경쟁만이 살 길이라고, 경쟁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강조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한 듯하다.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

그렇게 경쟁만 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경쟁에서 계속 성공해서 승승장구한 사람은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히게 되면, 그 벽을 넘어갈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벽을 부셔서 승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서 사회적 부작용을 야기한다. 그 벽은 많은 경우 법으로 만들어지는데, 계속 승승장구 한 사람들은 경쟁만 생각하고, 본인이 승리하는 것만 생각하기에 그런 법을 본인에게만큼은 유효하지 않게 만들기 위한 부정을 저지른단 것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과격한 형태로 불만을 표출하거나 <자신만의 세계와 그 안에서의 경쟁>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승리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사실은 경쟁적인 요소가 없는 것에서도 경쟁을 만들고 승자와 패자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이 승리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경쟁에서 본인이 승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그 경쟁은 본인만 존재를 인식하고 있고 누구도 그것을 경쟁이라고 인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댓글이다. 남을 짓밟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라고 학습되다 보니 누군가 무슨 행동을 하든, 드라마나 예능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짓밟기 위해서 댓글을 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악플이나 비난 중심으로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그래서 사실 드라마의 결론이 어떻든, 특정 인물이 뭐라고 하든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악플이나 비난을 다는 사람들은 결과와 무관하게 그런 댓글을 달았을 것이다. 상대를 그렇게 짓밟는 것이 본인이 높아지고 승리하는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도록 학습이 되었기에.


그런 상황을, 현상을 보다 보니 악플과 비난하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 분노가 일어나기보다 안쓰러움과 연민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중에서는 천성적으로 성격이 나쁜 사람들도 있겠지만, 만약 우리 사회가 하나의 경쟁만 강조하고 사람들을 줄 세우며 그 경쟁 안에는 승자와 패자만 있다는 식의 교육을 하지 않았더라면, 상당수는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서지 않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실 악플이라는 사회현상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왜 유독 그런 사람들이 많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싿.


세상은 넓다. 그리고 한 종류의 경쟁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며 그 사람 자체가 패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의 통상적인 기준으로 따지자면 난 학부를 졸업하고 취직에 성공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올 때까지는 그 경쟁에서 성공을 해 온 사람이지만 그 이후에 여러 가지 일이 꼬이면서 사실 '통상적인' 기준으로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운 상황에 있다. 그런데 그 실패가 단기적으로는 실패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내 인생을 더 풍성하게 해 줄 수도 있을 가능성을 나는 작년부터 발견하고 있기도 하다.


세상은 넓기에 하나에 실패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실패인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체계가 세우고 있는 기준에서 성공할 재능을 갖지 못했다면, 자신이 가진 다른 재능을 찾아서 그 분야에서 일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우리나라에 살면서 이미 설정되어 있는 기준을 비난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는 않지만, 또 우리나라 교육체계가 갖고 있는 기준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지 않나?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평가받는 학생이 미국에서 가서도 '공부를 잘한다'고 평가를 받을까? 물론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 미국에 가서도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는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고, 그중 상당수는 미국의 평가기준에 부합하지 못해서 오히려 열등생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세워져 있는 기준에서 승자를 판별하는 것은 그 기준하에서만 그런 것이지, 사람 자체가 승자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충분히, 아니 과도할 정도로 경쟁하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그래서 더 이상 경쟁의 중요성은 강조할 필요가 없다. 지금의 이 사회적 분위기는 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완전히 사그라들 수 없을 정도로 완고하고 공고하기에.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분위기는 계속 강화되어서 우리나라에서 그런 분위기는 갈 때까지 간 듯하기에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경쟁보다는 '결과를 잘 받아들이는 법'과 '실패 또는 패배를 딛고 일어나는 법'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하나의 경쟁에서 패배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은 넓고 할 것은 많으며 사람들이 가진 재능은 다른 것이지 그 재능에 위아래는 없다고 말이다. 모든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한 사람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 사람의 특징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패턴이 보일 정도로 나타나는 현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어떠한 요소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플은 물론 사회 지도층 혹은 특권층이 위법한 행위를 하는 것이 반복되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뭔가 구조적으로 잘못된 게 있기에 그런 괴물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가장 근본에는 우리 사회의 '과도하게 경쟁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 경쟁의 결과를 승자와 패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정의해 버리는 분위기에 있다.


이제는 그걸 바꿀 때가 된 듯하다. 그 변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당장 유치원 교육에서부터의 변화가 필요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미 그렇게 경쟁만 하는데 물든 사람들이 부모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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