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의 기초를 만들어 주는 사람
본 글은 어느 세미나에 워킹맘이신 분들이 가정주부를 폄하하는 듯한 발언들을 하신 것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저희 부모님 세대에 어머님들이 '내가 바보 같이 살았나 봐'라는 식의 말씀들을 하시는 것을 보고, 풀타임 가정주부를 하는 남자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그런 남자들을 폄하하는 발언을 듣고 쓰게 된 글입니다.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그 연배 여자들 중에 기회가 많은 분이셨다. 아니 그 기회를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었고 그 앞에까지 가셨던 분이셨다. 하지만 결혼을 하시고 여러 가지 상황이 생기면서 그 이후 평생을 가정주부로 사셨다. 그런데 타고난 성향이 있으시다 보니 평생 교회일, 주부기자 등 다양한 곳에 기웃거리며 어머니만의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하시는 것을 나는 지켜보며 자랐다. 그런데 결국 남편과 아들들 뒷바리지를 하셔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으시다 보니 어떤 것도 끝까지 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평생을 가정주부로 사셨다.
그런데 항상 안타까웠다. 언젠가부터 내가 늦게 들어올 때면 나를 기다리다 소파에서 잠든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왔다. 언젠가부터 말이다. 그래서 한 때는 '난 결혼하면 내 아내는 무조건 자기 일을 가지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난 지금도 결혼 후에 어떤 형태로든 내 아내가 된 사람이 일을 가지는 것을 응원할 것이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아내가 될 사람의 일을 지원해 줄 것이다. 그리고 가정주부로 풀타임을 보내는 사람은 아무래도 남편과 자녀들로 자신의 삶이 가득 차게 되다 보니 아이들을 더 본인의 의도대로 만들려고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개인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남자든 여자든 간에) 가정주부로 있는 사람도 꼭 돈이 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일이나 취미를 갖는 게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정주부의 역할을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사실 결혼을 하면 <무조건> 일을 하라고 해야겠단 생각이 지금은 <본인이 원하면>으로 바뀌었고, 만약 한 가정을 돌보는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에 의미 부여가 되고 그것이 본인의 꿈이라면, 난 그 또한 존중할 것이다. 이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가정주부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의미가 부여된다면, 굳이 '일을 해, 네가 일할 것을 찾아'라고 강요는 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주부의 가치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한 가정이 안정되는데 얼마나 가정주부의 역할이 중요한 지를 나이가 들수록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내가 '가정주부'라고 하는 것은 남자가 주부가 될 수도, 여자가 주부도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위에서 '아내가 가정주부가 되는 것에 의미가 부여된다면 가정주부를 하는 것을 존중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한 사람이기 때문이지, 남자와 여자의 역할 분담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가 가정주부가 아니셨다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사도우미를 쓰시는 회사 선배들이 '애가 한국말을 하는데 연변 말투가 나와'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단순히 말투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그 아이는 부모보다 가사도우미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문득 어렸을 때 평일에는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는 피곤해서 주무셨던 아버지의 모습만 보고 자란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와 내 현재의 관계를 돌아봤다. 그리고 만약 어머니, 아버지께서 모두 일을 하셨다면 가정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해 봤다.
물론 그랬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최악으로 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가정주부이셨던 덕분에 나와 동생은 집에 와도 외롭지 않을 수 있었고, 언제나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며, 아버지도 회사일 이외의 일에 대해서는 일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셨다. 자취를 할 때 일은 일대로 하면서 집에 돌아오면 빨래, 설거지, 집안 청소 등 모든 것을 내가 혼자서 해야 했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사실 배우자가 전업주부인 사람은 그 도움을, 그 덕을 엄청나게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끔 '가정주부'를 폄하하는 듯한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픈 것을 넘어서 화가 난다.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남자들을 '못난 놈' 취급하는 것도, '겨우 가정주부 하려고 태어난 건 아니잖아'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도 들으면 화가 난다. 한 사회의 기초는 가정이고, 누구나 본인이 가장 안락하고 편안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곳이 가정이다. 그리고 가정주부는 밖에 나가서 일을 하거나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매우 소중한 존재다. 그 불편함은 가정주부가 자리를 비웠을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그런 면에서 보면 가정주부는 우리 사회의 기초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매우 중요한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가정주부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발견하고,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난다.
가사의 가치
가정주부를 폄하하는 애기를 들었을 때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사실 밖에서 하는 일들 중에 그렇게 특별한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정주부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보통 '집안일이 뭐 그렇게 어려운 게 있다고'라거나 '돈을 내가 벌어오잖아'식의 발언을 하는데, 그렇다면 가정주부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은 그렇게 특별할까? 나도 회사를 다녔지만, 경쟁률이 치열하고 힘들게 사람을 뽑는 회사에 다녔지만 난 회사에서 작은 부품에 불과했다. 그리고 내가 퇴사한 이후에도 내가 맡았던 일들은 아무 문제없이 돌아갔다. 회사원들이 하는 일들은 사실 대부분 그렇다. 회사원들이 퇴사한 이후에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도 그 업무가 큰 조직의 일부에만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일들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대기업의 CEO가 감옥에 가도 그 회사는 돌아가지 않는가? 사회에서 '돈을 버는 일'은 대부분이 시스템 안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없다.
어떤 이들은 집안일이 쉽다고 한다. 그런데 자취를 할 때 보면 7-8평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방도 3일 이상 청소를 안 하면 먼지가 쌓이고 머리카락이 굴러다니기 시작한다. 그래도 3일 정도는 참을 수 있지만 최소 일주일, 길어도 이주일 안에는 청소를 하지 않으면 방구석구석에 먼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밥상을 차리는 건 간단한 일인가? 반찬을 직접 한다면 반찬 하나, 하나에 손이 얼마나 가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고, 반찬을 사 온다고 하더라도 반찬을 계속 사들이는 것 또한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물론 회사일처럼 집안일도 기계적인 면이 있긴 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회사일처럼'이란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돈을 벌어오잖아'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반박을 하자면, 가정주부가 없다면, 가정주부의 일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내가 자취를 할 때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기본반찬이나 음식거리를 냉장고에 마련하는 것이었다. 평일에 연구실에서 늦게 나오다 보니 저녁 12시에 닫는 마트에도 가지 못할 때도 있었고, 갈 수 있다허더라도 내가 피곤해서 가기가 싫었던 적이 많았다. 그렇다면 그걸 요즘에 나오는 '대행 서비스'를 쓴다고 생각해 보자. 빨래도 외부에 맡긴다고 생각해 보자. 청소도 내가 너무 피곤해서 가사도우미를 쓴다고 생각해 보자. 아니, 모든 걸 다 해줄 가사도우미를 쓴다고 해보자. 가정주부가 하는 일의 경제적 가치는 최소한 가사도우미에게 제공하는 비용이 아닐까? 더군다나 만약 '난 그냥 일하기 싫어서 놀고먹을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일보다 가사 혹은 육아에 더 마음이 가서, 의미부여가 되어서 가정주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 수준으로 가사를 하는 가사도우미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있는 가정의 경우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자랄 수 있다는 것은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닐런지...
물론 나는 풀타임 가정주부로 일을 하는 사람도, 본인의 삶을 100% 아이와 배우자를 지원하는데만 사용할 경우 어느 순간 본인의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될 수도 있고, 그렇게 '올인'을 할 경우 아이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고 배우자에게 섭섭한 것이 계속 쌓일 수 있으며 그러한 흐름은 여러 가지로 가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위에서 말했듯이 '꼭 돈이 되지 않더라도' 본인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주부인 본인이 해결할 문제이며, 주부의 희생과 지원을 받는 사람은 가정주부가 그러할 수 있도록 마찬가지로 지원해 줘야 할 것이지, 그러한 상황에 있는 주부에 대해서 누구도 판단하거나 폄하할 자격도 없고, 그러한 가정주부의 삶이 폄하될 성격의 것도 아니다.
사실 세상에 엄청나게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어디에선가 하고 있는 일은 모두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이라는 구분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에서 나사가 하나만 빠져도 그 기계가 그 용도대로 사용될 수 없지 않은가? 이는 가정주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