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추행: 더럽고 지저분한 행동. 성욕의 흥분, 자극 또는 만족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써 건전한 상식 있는 일반인의 성적 수치나 혐오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일체의 행위.
추행에 대한 사전적 정의와 위키백과의 정의를 합쳐놓은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일반인의 성적 수치나 혐오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더럽고 지저분한 행동이 성추행이다. 항상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뤄졌던, 강자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이뤄져 왔던 것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대통령이 보인 행보가 어처구니가 없고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잘못이 드러나서 일정 부분이라도 바로 잡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 이제 아무 생각 없이 그러한 행동을 했을 사람들 중 몇 명은 그 선을 넘지 못하지 않겠나? 그 사람이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인해서 상처를 입을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줄어드는 게 중요할 것이다.
사실 추행이라는 것을 어느 수준에서 선을 그어야 할지가 애매할 때가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러한 애매한 경계선은 남자가 여자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 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에도 학부시절에 동아리 간에 교류가 하는 활동에서 상대 학교의 고학번 여자 선배가 내 허벅지를 만지면서 '어휴 남자는 역시 허벅지가 튼실해야지'라면서 그 자리에서 내내 내게 '벅지야'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누가 어디에 앉았는지가 기억이 다 날 정도로 몹시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을 당하는 사람이 불쾌했다면 그건 추행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렇게 받아들일 여지가 있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일단 성인이라면 이성의 신체에 손을 대거나, 성적인 요소가 있는 대화를 이성과 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면 되는 것 아닌가? 사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으로 이성 혹은 동성을 추행하는 사건이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남성성'이 강조되어왔던 흐름의 영향이 가장 크다. 사실 지금까지도 '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남자는 강해야 한다고, 조금 혹은 그 이상 마초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사실 '남자다운 사람이 좋아요'라는 이상형을 설명하는 표현은 '듬직함'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표현을 아직도 '마초적이고 일방적인 의사결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놀라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성=마초'라고 생각하는,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추행이 아직도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이는 남자가 가해자가 되는 추행뿐 아니라 여자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그러한 경우에는 '여자는 항상 다소곳해야 하나? 여자가 주도할 수도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전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경우에나 추행은 주로 상하관계에서 어떠한 측면에서든 상대적 우위에 있는 사람에 의해서 주도된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남성성은 마초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마초적인 게 '리더십'이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사람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마초성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사실 성추행이나 성폭력이 너무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성추행이나 성폭력이 상대가 잠들거나 술에 취했을 때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은 그러한 행위들이 마초성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그러한 성추행이나 성폭력은 가해자가 자신 안에 일어나는 그 순간 혹은 일정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욕구나 욕정을 제어하지 못해서, 혹은 술김에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 사람들 안에 '사랑'과 '욕구'나 '욕정'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게 이뤄져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러한 '추행'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나 욕정을 상대방의 인격보다 월등하게 우위에 놓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짓'이다.
그러한 욕구나 욕정에 이끌려서 강제적으로 이뤄진 행위들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은 '인간이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 또는 '남자들은 그런 욕구가 워낙 강하다'는 핑계를 댈 때가 있다. 나도 사람이고, 나도 같은 남자이기에 그러한 욕구가, 욕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사회'를 형성하고 있지 않다면, 그냥 원시시대에 살고 있다면, 사회적 규범이라는 것이, 가치라는 것이 없다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회를 형성하고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의미가 무엇인가? 그런 말로 정당화될 수도 없지만 어떻게든 '본성'이라는 것을 이유로 자신의 '결정'과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를 하는 자는 자신이 동물과 같은 수준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까? 아니 동물도 그렇게 상대에게 강제를 않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핑계는 결국 본인이 동물만도 못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가?
사람에게 주어진 이성이라는 선물은, 공감능력이라는 선물은 내가 상대방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느꼈을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추행이 사회 곳곳에서 이렇게 빈번하게 이뤄진다는 것은 그 사회에 그러한 이성과 공감능력이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사회에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많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순간적인 욕구와 욕정, 그에 따른 충동적인 결정과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상처와 치욕으로 남을 수 있음을 생각할 줄 알고 자신을 제어할 줄 알때야 비로소 그 존재가 합리적인 이성과 사회적인 성격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