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것인가?
스포츠 경기가 없다면...
난 스포츠를 좋아한다.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보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 올림픽을 보느라 망친 시험이 몇 개인지 기억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기회가 생겨서 한 번의 하계 올림픽, 동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현장에서 경험했고,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굳이 강원도까지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지 않는 것도 그 영향인지도 모른다.
그런 스포츠 행사 현장에 갈 때마다 묘한 것은, 국가나 민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사에서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좋은 성적을 낼 때 같이 기뻐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같이 힘들어진다는데 있다. 그 결과는 사실 내 인생과 아무 관련성을 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도, 경기들을 보면서도 가슴이 콩닥 거리고 긴장이 되는 걸 보면서 어렸을 때 특정 국가나 민족이라는 사실을 학습한 것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깨닫게 된다.
스포츠와 국가
'정치와 스포츠는 별개'라고 올림픽이나 다른 국제 스포츠협회, 집단들이 주장을 하지만 사실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들은 모두 정치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 스포츠 대회들을 주최하는 단체가 배제하고자 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다른 국가와 관계에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정치적 요소'이지, 스포츠 자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국가들은 없다. 사실 경쟁을 통해서 너와 나를 구분하고, 그러한 구분 지음을 통해서 내편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국가들이 스포츠를 장려하고, 국가를 대표해서 국제대회에 나가는 이들에 대한 지원을 하는 것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 혹은 정부의 역할들이 꼭 비난이나 비판받을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다른 국가들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그런 대회에 나서는 패턴을 보면 그 안에 특이한 점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다른 나라들보다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심하게 발견되는 듯한데 그건 소위 말하는 '엘리트 스포츠'적인 측면에서 스포츠에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스포츠를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결속력이나 소속감을 강화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맞는데, 다른 나라들의 경우 해당 종목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가 그 안에서 재능을 보여서 '심화훈련'을 통해서 전업 운동선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동계 올림픽의 경우 종목에 따라 가족이 한 팀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종목은 해당 국가에서 평상시에 여가활동으로 즐기는 인구가 상당수 된다는 사실이 그러한 패턴을 잘 보여준다. 운동만 하는 게 아니라 본업은 경찰, 농부, 컨설턴트 등인 사람들이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오는 것이 가능한 또한 그만큼 그 나라에서 과외활동으로 그 종목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사실 우리나라 정도 경제규모, 우리나라의 자연환경, 인구 등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가 국제대회에서 내는 성적은 '과도하게 좋은 것'이다. 이는 이 정도 인구에서 그 정도 성적을 내는 사람들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 사실 비정상이라는 의미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국민들이 '생활스포츠'로 즐기는 운동은 축구, 야구, 등산, 배드민턴, 탁구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나라가 메달을 따는 종목들은 어떤가? 이처럼 우리나라의 '생활스포츠'와 '메달을 따는 종목' 간의 괴리가 있는 것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따는 메달은 모두 엘리트 스포츠를 통해서, 운동만 시켜서 따낸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문제
그런 엘리트 스포츠 선수를 키워내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종목의 운동선수가 운동만 알게 된다는데 있다. 사람들은 운동만 시키지 말고 인성교육도 시키라고 하지만, 인성교육은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인성교육은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그 사회에서 필요하다고 정해놓은 정규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몇몇 종목들의 경우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러한 운동 종목들 외에 '올림픽에서만 주목받는' 종목의 운동선수들에게 그러한 것은 사치인 경우가 많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는 종목들은 국내에서 평상시에 운영되는 리그가 있는, 즉 프로선수로서 월급이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의 기반이 형성된 종목들이다. 반면에 올림픽 메달을 중심으로 형성된 엘리트 스포츠는 메달을 따지 못하면 그 '업계'가 도태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성적'에만 집중을 하게 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성적 지상주의가 자연스럽게 싹트게 된다.
사람들은 금메달에 환호하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이 따내는 많은 금메달들은 그런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국내 프로리그가 그래도 운영되는 종목들은 소를 초원에 풀어놓고 키우는 것과 같다면, 그렇지 않은 종목들은 가축을 가둬놓고 잡아먹을 때 생산되는 살을 늘리기 위해서 가축의 건강은 ㅗ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육을 시키는 축사와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동물들이 자연친화적으로 자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주장을 우리나라의 스포츠계에 적용한다면 '성적을 강요하지 마라'와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주마들의 시야를 가려놓은 것은 말의 시야가 굉장히 넓기 때문에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그렇게 시야를 가려놨을 때 가장 빨리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성적을 낼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것은 보고, 듣고, 경험하지도 못하게 하고 운동만 시키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이 아니지 않나? 그렇게 해서 금메달을 따고 나면, 인간의 몸은 노쇄하게 되어 잇는데 본인이 그런 성적을 내지 못하게 될 때 어떻게 되겠나? 결국 자신이 교육받은 대로 가르치는 코치와 감독이 되지 않겠나?
성적지상주의는 좀 그만...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을 둘러싸고 일어난 논란을 보면서 가슴이 갑갑해짐을 느꼈다. 사람들이 비판을 하는 것은 경기 이후에 두 선수가 보인 태도, 그들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들에 집중되어 있는데 스케이팅 협회 혹은 관계자들이 내놓는 이유, 핑계 혹은 변명은 모두 "왜 성적을 내지 못하게 되었고 한 선수가 뒤처지게 되었나"에 집중이 되어 있더라. 같은 문제에 대해서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그 비판을 받는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건 '스피드 스케이트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성적'에만 매몰되게 어렸을 때부터 훈련받았고, 그런 문화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업계가 그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스케이트에 집중하게 했던 부모도, 선수들도 '운동을 해서 성공'하는 것이 지상목표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이뤄진 인터뷰 영상을 한 번 봤을 때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두 번 봤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으며, 세 번 봤을 때는 그 선수가 불쌍해졌다. 그 선수는 아마 지금도 왜 수많은 사람들이 본인에게 이처럼 많은 비판과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고, 국가대표로서 자격이 없다고 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선수는 어렸을 때부터, '성적'에 집중하도록 훈련받아 왔으니까.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이다. 이는 그 선수들 뿐 아니라 스케이트 팀의 코치, 감독 및 협회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훈련하는 문화가 60년대, 70년대부터 계속 이어져 오고 있기에...
조금 세게 표현하자면 스포츠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성적지상주의는 그 업계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를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사람은 생각할 줄 모르고 메달과 성적에만 집착하는 괴물로 말이다. 이건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물론 스포츠 행사에 메달을 따는 게 국위선양일 때도 있었다. 특히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고 있을 때는 각 진영에 속한 국가가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게 국제사회에서도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서도 소련과 중국 등이 엘리트 스포츠의 길을 택한 건 그 때문이 아니었겠나?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하지 않았나? 댓글들도, 사람들의 반응도 일반인들은 메달 한 두 개에 집착하는 패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나라 정도 인구와 규모가 되는 국가가 메달을 좀 못 따면 어떠한가? 그리고 성적을 산정하는 데 있어서 금메달을 많이 따면 종합순위가 더 높은 것도 우리나라와 극히 일부 국가의 산정방식이 아닌가? 참고로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메달 순위를 공식적으로 집계하지도 않고, 어떤 국가들은 금, 은, 동메달을 구분하지 않고 '메달 숫자'가 많은 것으로 순위를 집계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금, 은, 동에 가중치를 두고 순위를 집계하는 것도 우리나라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란 것을 보여준다.
그래도 이번 올림픽을 보면 일반인들은, 우리나라 사회는 많이 변한 것 같다. 이제는 체육계가 변할 차례가 아닐까 싶다. 금메달, 아니 메달 몇 개 더 딴다고 우리나라 수준이 올라가는 건 아니지 않나? 메달보다 더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가? 물론 그러던 중에 박태환, 김연아, 윤성빈처럼 특출 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들은 축하해주는 게 맞지만, 메달을 딴 사람들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격려하는 건 좋지만, 우리나라처럼 생활스포츠가 활성화된 영역이 제한적인 나라에서는, 스포츠 행사에서 성적에 그만 집착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미국이나 중국처럼 인구와 땅덩어리가 넓은 국가가 아니면 '모든 종목'을 잘하는 국가는 없다. 특정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국가에서는 보통 그 종목이 생활스포츠로 잘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성적에는 좀 그만 집착하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그 자세만으로 좀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축사에서 키워지는 소도, 경주를 하기 위해 사육하는 말도 아니고, 운동선수이기 전에 사람이 아닌가? 잘못된 현상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지만, 아니 그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지만,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때가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그 비판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 문화의 가장 큰 가해자이자 피해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