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치에 대한 평가가 바뀔 때
집안일과 여자의 사회생활
'나 보고 집안일만 하라는 소리냐'
예전에 만나던 친구한테 들은 적이 얘기다. 사실 큰 오해였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아내가 가정을 돌보는 것을 1순위로 생각하고 가정주부로 살겠다고 하면 그것도 존중해 줄 수 있다'는 얘기를 그 친구는 마음속으로는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해서 그렇게 반응한 것이었다. 가정주부로 사실 성향이 아닌데 평생을 가정주부로 살아오신 어머니께서 그 과정에서 얼마나 힘들어하셨고, 얼마나 몸부림을 치며 사셨는지를 아는 내가 아내를 집안일만 시키려는 사람으로 몰린 듯해서 나도 그 말에 화가 났던 기억이 난다.
사실 '네가 얼마나 번다고 일을 하냐? 집안일이나 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건 단순히 남녀의 사회적 지위 때문이 아니고 경제적인 현실 때문에라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남자는 많지 않다. 많은 설문조사들은 실제로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맞벌이를 원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나? 이처럼 젊은 사람들의 경우 맞벌이를 원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천장이 심각한 수준으로 있는 것만큼 분노해야 하고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집안일을 폄하하는 사회
그런데 남녀차별에 대한 기사나 논의를 볼 때마다 조금은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그건 '여자는 집안일이나 하라는 말이냐'라는 식의 반응들인데, 그런 발언은 '집안일을 하는 것은 하찮은 일' 혹은 '덜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개인들에 대해서 비판을 할 생각은 없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생각이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고, 그들은 그 영향을 받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집안일이, 가사가 그렇게 폄하되어야 할 일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사실 이전에도 이런 종류의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들여보려고 한다. 우리는 왜 돈을 버는가? 우리는 왜 승진하고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면서 연봉을 많이 받고 싶어 하는가? 그건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내가 불행한 시간보다 행복한 시간이 많은 것, 혹은 최소한 행복한 시간의 총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에서 행복을 찾는가? 결혼한 사람이 그 행복을 집 밖에서 찾을 때 그것이 사회 문제화되는 것 아닌가? 사실 인간은 관계에서 행복을 가장 많이 느낀다는 것은 80년 정도 진행되고 있는 행복에 대한 하버드의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나는 사실이다. (기사)
그렇다면 그 관계의 시작은 어디인가? 사실 학부 때, 그리고 친구들이 결혼을 많이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관계의 시작은 항상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나, 둘씩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야 깨달았다. 결국 그 관계의 시작은 가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놀 사람이 없어지고 결국은 가족이, 가정이 모든 관계의 시작임을 깨달은 후에야 나는 조금씩 지금 나의 가정인 어머니, 아버지와 동생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 가정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가사에 집중하신 어머니께서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예전에 만나던 친구에게 '가정주부로 살겠다고 하면 그것도 존중해 줄 수 있다'고 한 것은 그러한 맥락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사회적 성공의 의미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성공, 조직에서 승진을 목표로 사는데, 과연 그게 삶의 본질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일을 하기 시작했을까? 그건 먹고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오기 전에는, 아니 산업혁명 이전에는 사람들이 직접 먹을 것을 찾거나 기르는데 썼던 노동력을 사회의 변화에 따라 '먹고살기 위해서' 사회에서 만들어진 회사 등과 같은 조직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사회적 성공과 조직에서의 승진을 주된 목표로 사는 인생은 본질을 잃고 헤매는 삶과 마찬가지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을 20-30위권의 대기업에서 일하셨는데 결국 정치적인 이유로 회사원의 별이라고 불리는 임원이 되지 못했다. 사회적 성공과 조직에서의 승진과 같은 목표는 사실 개인만의 노력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하고 승진하고 나서 그 뒤에는 무엇이 남는가?
우리 아버지께서 평생을 어느 정도 열등감으로 안고 계셨던 것들이 해결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 친구분 중에 대기업 계열사 CEO까지 하셨던 분이 은퇴하시고 나서의 삶이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다. 아니 그분은 오히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셨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에 엄청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을 보시고 나서 아버지께서 인생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지시는 것을 나는 바로 옆에서 봤다. 그렇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고, 조직에서 승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 그것 또한 길어봤자 몇 년이면 끝나는 영광이다. 그렇게 몇 년 안에 끝날 것을 위해 평생을 쏟아붓는 것은 지혜로운 것일까?
가정의 의미
그렇다면 회사에서도 사실 가장 존중해 줘야 하는 것은 각 개인들의 '가정'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지금 짧고 굵게 일을 해서 큰돈을 벌고 인생의 대부분을 가족을 위해서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은 돈이 잘 들어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놓고 나중에 가정을 챙기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옷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가는 실들을 엮어야 하듯이, 단단하고 가까운 관계는 소소한 것들을 같이 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지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상황에서 돈을 가져다준다고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돈을 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마음속에서 가족과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지만, 본인이 일을 하는 동안 그 가족은 '우리 아버지/어머니가 돈을 버느라 수고가 많으시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건 그들이, 최소한 아이들은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이고 그에 따라 아이들은 그런 수고에 대해서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본인들이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다 줬는지를 놓고 아이들에게 유세를 떨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좋은 가정이 꾸려지기 위해서는 가족 간에 사소한 것들을 같이 한 기억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가사이고, 사실 가사 자체가 가족이 공유하는 기억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그 가정의 가사야 말로 그 가족 구성원과 관계가 있는 것 아닌가? 사실 부모의 회사생활이 아이와 무슨 관계가 있나? 그 아이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만약 아버지/어머니 중 한 사람이 부득이하게 일을 늦게까지 해야 한다면, 그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은 가사에 집중하는 사람의 수고일 것이다. 만약 두 분이 모두 늦게까지 일하셔야 한다면, 가사를 책임져야 하는 아이나 친척이 그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사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수고를 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수도 없을 것이기 대문에.
가사의 의미
사실 여자에게 가사를 전담하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여성차별적으로 들리는 것은 '가사는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사는 남자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실제로 가사를 전담하는 남자들도 증가하고 있다고 하고 말이다. (기사) 가정에서 여자가 사회적으로 돈을 더 잘 벌 수 있으면, 여자가 돈을 벌고 남자가 가사를 전담할 수도 있고, 반대로 남자가 돈을 더 잘 벌 수 있으면, 남자가 전담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분명한 것은 가정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가사를 누군가가 감당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가사를 담당하지 않는 사람도 마음 편하기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사실 가사는 단순히 '집안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중에 사회에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가사에 집중하는 것은 절대로 폄하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 정당한 가치를 인정해 줘야 한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결국 돌고 돌다 보면, 끝에 가서는 가족과 가정밖에 남는 것이 없게 되는데, 그 가정이 유지되는 데는 가사에 집중하는 사람의 역할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어느 길을 돌아가든지 간에 결국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가정이고, 그 가정이 존재할 수 있도록 뿌리를 잡고 있는 것은 가사노동을 해주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것을 늘,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게 객관적인 사실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