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현실화될 수 없지만 잊지 말아야 할 목표

by Simon de Cyrene

내가 너무 시니컬한지도, 비판적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솔직히 드라마나 영화 제작 환경에 대한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당혹감 아닌 당혹감을 느낀다. 배우들은 계속해서 제작 환경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제작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배우들이 본인의 몸값을 낮추고 스텝을 한 명이라도 더 쓸 수 있게 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하나라도 더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하는데 수급될 수 있는 금액에는 한계가 있고, 주연급 배우들이 한 회차당 받는 금액을 30%만 줄여도 사실 드라마나 영화 제작환경은 훨씬 좋아질 수 있다. A급 주연 배우의 한 회차 몸값의 30%로 촬영과 편집하는 스텝 한 명 이상의 월급을 지급할 수 있는 게 방송계의 현실이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방송을 하는 사람들의 수입이 불안정하다는 반박이 제기될 수도 있는데... 사실 그건 주연급이 아닌 배우들의 얘기고 주연급 배우들의 경우 한 작품을 하면 다른 보통의 사람들은 평생 만지지 못하는 수입을 얻고, 그 이후에 시나리오도 꾸준히 들어오기에 그런 반박이 타당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것을 현실화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본인의 몸값으로 어느 정도가 잡혀 있는지를 미리 확인하고 본인이 몸값을 어디까지 줄일 테니 스텝을 더 고용하거나 음식의 질을 높이는데 보태는데 써달라고 하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는 지출 내역을 달라고 하면 된다. 그걸 본인이 아니라 본인의 소속사가 챙겨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배우가 있다는 말은 들은 바가 없다. 모 배우가 밥차를 샀다거나, 커피차를 샀다는 것이 크게 회자되는데, 사실 그들의 몸값과 스텝들이 받는 돈을 비교해 보면 그건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지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도리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이 그럴 의무도 없는데 베푸는 것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게 사실 엄청나게 칭송받을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날 선 비판에 대해서 혹자는 '그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 그렇게 이룬 것에 대해서 굳이 그렇게 코멘트해야 하느냐?'는 비판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몸값이 그렇게 형성되는데 본인이 노력하고, 기여한 게 어느 정도나 될까? 물론 그 사람들도 노력을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생존할 수가 없다. 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그런 수입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실 다른 요소들이 더 큰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이상 먹고살기 위해서 노력은 필요조건이지만 노력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 않나?


냉정하게 생각해서 난 한 배우가 성공하는 데까지 본인의 노력이 30%, 그 스텝과 소속사의 노력이 20%, 타고난 재능이 10%, 운이 20%, 사회적 구조가 20%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사실 외모에 대한 평가는 시대 별로 다르기 때문에 지금 광고를 통해 큰돈을 번 사람이 20년 전에도 그랬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광고에 나오는 모델비가 30년 전에는 지금에 비해서 훨씬 적지 않았나? 아니 케이블과 종편이 생기기 전만 해도 사실 광고가 나갈 채널이 적기 때문에 모델료를 그렇게 많이 줄 수가 없지 않았나? 그리고 기업 홍보실에서 누군가를 모델로 쓸지를 결정하는 것은 여러 후보군에서 우연히 홍보담당자가 몇 명을 추리고, 홍보실장이나 팀장이 그중에 몇 명을 추리고, CEO가 최종 후보군에서 결정하는 우연적인 사실에 결정되지 않나? 때로는 다 필요 없고 회사 오너가 지목을 해 버릴 때도 있고 말이다. 사실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 역시 위와 비슷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이 글에서 배우나 연예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비판을 가하는 게 미안하긴 하다. 내가 배우나 연예인을 그 예시로 삼은 것은 그 직역에서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대한민국 평균과 가장 분명하게 대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처럼 자신의 노력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운, 사회구조 덕분에 일정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사항이 있는 일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성공하는 경우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네 삶 속에서 아무 노력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좋게 평가하거나 좋게 봐주지 않는 경우에 '성공'이라는 열매는 절대로 맺어질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기준이 다르고, 세상에는 노력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기 때문에 그러한 기준이 맞고, 그렇게 노력한 결과를 선택해 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사실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에 성공했을 때, 그것이 작은 성공일 때도 열심히 노력한 나 자신을 격려해 주고 자신의 성취에 자부심을 갖는 것을 넘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주위 사람들이 도와준 게 없었는데 성공을 이뤘다'며 자신은 남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환경에 처했던 사람들은 분명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히 추측하건대 그 과정에서 아마 그 노력을 알아봐 주는 선생님 한두 정도는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선생님도 없었다면 이 질문을 해보자. 당신이 모든 것이 갖춰졌다면 그만큼 노력했을까? 사실 사람들 중에는 어려운 환경에 좌절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려운 환경에 처해야만 더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고, 모든 것이 갖춰졌을 때 그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인생을 대충 살아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환경에서 그 사람이 성공을 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그 사람이 그 환경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환경에 있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노력을 할 유인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사실 사회적 인프라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와 같이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한 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한 기초를 쌓은 이후에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고 위해서는 외부요인이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살아가면서 상대가 우리를 선택해 줄 때가 더 많다. 아니, 모든 성취는 사실 상호 간에 선택함으로 인해서 발생한다. 물건 하나가 팔리는 과정에서도 그렇지 않나? 내가 아무리 매력적인 물건을 만들면 뭐하나? 그것을 알려주고, 사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하면 뭐하나? 그것을 만들고 팔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이토록 '사실 우리가 누리는 것 중에 우리의 노력만으로 된 것은 많지 않다'는 얘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면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감사할게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비율이 사회에서 높아질수록, 그 사회는 더 아름답고 살만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부시절 난 스스로를 '현실적 이상주의자'라고 불렀다. 그것은 현실이 완벽할 수 없고, 인간의 욕심과 상충되는 사람들 간의 이해관계로 인해서 이상은 절대로 현실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이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그 이상에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워질 테니 말이다.


내가 가장 유토피아적으로 여기지만, 절대로 현실화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은 '자발적 사회주의'가 구현되는 사회다. 사회주의가 실패했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정부가 강압적으로 재화를 분배했고 그로 인해 개인이 노력을 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에 생활수준이 같아졌는데, 그런 사회에서 인간은 누구나 노력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을 기울여서 취득하고 축적한 재산을 자발적으로 상대적으로 결핍이 심각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면, 그런 문화가 사회적으로 자리는 잡게 되면 그 사회는 얼마나 아름답겠나?


물론 그런 사회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그리고 사람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서는 나눠 먹을 수 있는 파이 자체가 커지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난 자본주의가 사회적 기초가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물질만능주의로 변질되는 순간 그 사회는 지옥이 되는 것은 분명하며, 유토피아로 가지는 못하더라도 그러한 지옥에서 한 걸음이라도 더 멀어지는 첫걸음은 사회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본인의 성취 중 상당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존재 그 자체, 그리고 우연에 의해서 이뤄진 것임을 기억하는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걸 기억한다면, 최소한 다른 사람을 괄시하지는 못하지 않겠나?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이 그러한 마음을 갖는 것은 유토피아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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