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지상주의가 선수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
지금의 현상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상태가 좀 안 좋아져서 또다시 제주로 다녀왔다. 일상이랑 거리두기를 통해서 상태를 좀 회복해야 할 필요를 느껴서. 그래서 월드컵 첫 경기를 보기는 했지만 온라인의 분위기는 잘 몰랐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기사와 댓글, 내 SNS 피드를 보는데 가관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이영표 해설위원의 말이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때 축구는 보지도 않으면서 결과만 놓고 비판을 하나 가득 늘어놓고 있었다.
난 내가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의견을 잘 달지 않는 편이다. 이는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적인 규모에서 전문가인 감독이나 코치가 상식으로 보이는 것에 반하는 조치를 취할 때는 보통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 내부의 상황이 있었다. 항상 그랬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결과에만 분노하고 그 후에 그 내부적인 상황들이 밝혀질 때는 그에 대한 관심을 전혀 갖지 않는다는데 있다.
선수 구성에 대하여
이번 축구대표팀을 놓고 따져보자. 나도 석현준이 뽑히지 않고 김신욱이 뽑힌데 물음표가 있었다. 그런데 장신 공격수가 한 명이 필요하다고 봤을 때 한번 따져보자. 석현준은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기존 국가대표들과 손발을 맞춰본 적이 없는 반면 김신욱은 그래도 계속해서 손발을 맞춰왔다. 김신욱은 완전하진 않지만 안정적인 카드였고, 석현준은 더 좋아 보이긴 하지만 리스크도 그만큼 큰 카드였다. 둘 중에 김신욱을 선발하는 건 충분히 이해될 수는 있는 카드였다. 관점에 따라서는 평가가 다를 수는 있지만, 그 선택 자체가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단 것이다. 이동국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이동국은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까지 국가대표에 뽑히지 않았고, 그에 따라 기존 선수들과 호흡이 어떨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케이리그에서 김신욱의 임팩트가 이동국보다 약하긴 하지만 둘 사이에선 비교형량할만한 요소들이 분명 있었다. 신태용 감독은 안정적으로 슈트리케의 틀을 유지하면서 가야했다. 그러지 않았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2014년 홍명보호가 보여준다.
혹자는 이승우와 문선민 얘기를 꺼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번 물어보자. 염기훈과 이근호가 부상당하지 않아도 그 둘이 뽑혔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그 둘을 선택하는 배경에는 계속해서 국가대표에서 손발을 맞춰온 주축 선수의 부상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그 상황에서는 어쨌든 새로운 사람을 뽑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둘이 선택되었기 때문에 석현준과 김신욱의 케이스와 그 둘의 선발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스웨덴전에 대하여
자 그러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스웨덴전에 대한 문제를 따져보자. 첫 번째로 왜 처음부터 4-4-2로 가면서 이승우와 문선민을 기용하지 않았을까? 그에 대해서는 반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 둘이 선발로 나갔다면 상황이 나아졌을까? 문선민은 국대 데뷔전부터 흥분해서 실수를 남발했고, 이승우도 소속팀에서 후보로만 뛰어서 아직은 풀타임을 뛰면서 에너지 레벨을 조절할 수 있을 지에 대한 확신에 서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4-4-2로 갔을 때 누굴 넣을 것인가? 그래서 차선으로 들고 나온 것이 4-3-3 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면 지금 국대 멤버에서 김신욱 말고 누구를 전방에 배치할 것인가?
그렇다면 선택은 둘 중 한 가지다. 문선민과 이승우를 선발로 넣고 4-4-2로 가고 김신욱을 교체로 넣던지, 아니면 신태용 감독의 선택대로 하던지. 그런데 문선민과 이승우의 스피드가 언제 더 효율적일까? 스웨덴 선수들이 지쳐서 스피드가 더 떨어졌을 때가 아닐까? 더군다나 문선민과 이승우가 월드컵 데뷔 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 지를 모른다는 위험요소를 감안하면 김신욱을 선발로 하고, 밖에서 경기 분위기를 익힌 후에 둘을 투입하는 게 더 안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계산은 전반에 박주호가 부상을 입으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도 장현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그냥 어처구니가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그 정도 패스 실수는 다른 월드컵 경기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것이었고 박주호가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 그게 어떻게 장현수 탓인가? 김민우가 반칙하게 된 과정? 그에 대한 비판도 결과론적인 것일 뿐이며, 다른 국가들 간의 경기에서도 그정도 혼돈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지 않다. 즉, 장현수가 더 잘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가 지금처럼 비난받을 정도로 이상하고 말도 안되는 플레이를 한건 아니란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장현수는 이전에 불안정했던 경기들에 비해서 훨씬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효슛 0의 함정
이런 비판들 외에 사람들이 가장 비아냥 거리는 부분이 '유효슛 0'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미 몇 달 전부터 A매치를 보면 우리나라 선수들은 엄청나게 위축된 상태로 뛰고 있는 게 눈에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웨덴 전을 진다면 그 비난여론이 어떻게 돌아올지는 뻔했다. 우리는 그걸 현실에서 보고 있지 않나? 추측컨대 신태용 감독이 마지막 평가전을 비공개로 한 것은 전력을 노출하지 않기 위한 것도 있지만 선수들이 위축되지 않고 자신들의 플레이를 제대로 할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슈틀리케 감독이 경질되기 몇 달 전부터 지금까지 선수들인 계속 긴장된 상태로 경기를 뛰어야 하지 않았나? 그로 인해 경기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이들도 많았고 말이다.
그 상태에서 선수들이 과연 적극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 안다. 그런데 당신이 한번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조금만 실수하면 SNS에 와서 욕설을 퍼붓고, 언론도 비판을 넘어서 비난을 하는 상황 속에서 1년을 넘게 지낸다고 생각해 봐라. 그 상황에서 역습만으로 이탈리아까지 이기고 월드컵에 나온 스웨덴을 상대로 적극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간 큰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다가 허둥지둥거리면서 골을 먹게 된다면 그걸 어떻게 감당하라고? 그나마 페널티킥, 그것도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은 페널티킥으로 졌으니 비난 여론이 그나마 이 정도지 만약 필드골로 먹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그래서 사실 유효슛 0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만든 것은 우리나라의 언론과 키보드 워리어들이다. 개인에 대한 인격모독도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 SNS에 가서 직접 공격까지 한 자들 말이다. 1년여 동안 대표팀을 둘러싼 분위기를 복기해 보자, 그리고 그런 환경에 본인이 있었다고 생각해 봐라. 어느 누가 위축되지 않을 수 있었겠나? 더군다나 축구협회는 그 과정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람들이 바뀌지 않았나? 신태용 감독이 부임한 지 얼마나 됐나? 혹자는 일본과 비교할지도 모르는데, 일본이 감독을 바꾼 배경에는 주축 선수들의 불만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비교를 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수들도 당황할 정도록 갑작스럽게 슈틀리케가 경질되지 않았나? 같은 감독 교체여도 선수들이 받는 충격과 압박은 우리나라의 경우가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몇 겹씩 겹치는 데다 온라인에서 선수들 개인에 대한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는데 어떻게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겠나? 선수들이 잘한 것은 없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문제는 대표팀에 대한 비난을 쏟아낸 사람들이란 것이다.
성적지상주의가 만든 결과
선수들도 사람이다. 그들도 비난을 들으면 힘들다. 그리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그럼 축구를 잘했어야지"라고 쉽게 얘기할지 모른다. 그 사람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학교에서 성적을 안 내고 싶어서 안 나왔던 적이 있나? 승진하기 싫어서 안 한 적은? 우리나라는 스포츠를 가르치는 교육체계에서부터 문제가 심각한 게 현실 아닌가? 성적지상주의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마음껏 개인기를 펼치지도 못하게 하고, 코치와 감독이 자신들의 밥줄 때문에 선수들 틀에 가두고 실점하지 않기 위한 전략을 가르치고... 손흥민이 그처럼 될 수 있었던 건 그의 아버지의 교육방식 덕이었지 않나? 기성용도 어렸을 적 유학을 했고, 박주영도 지원을 받아 브라질로 유학을 다녀왔고, 이강인, 이승우 같은 선수들은 다 축구 엘리트 교육을 외국에서 받지 않았나?
지금 우리나라 선수들의 한계를 만든 건 우리나라 축구의 교육시스템이지 그 선수들이 아니다.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계에서 성장하는 선수들은 개인실력을 키우는데 필연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모든 지도자들이 선수를 뛰어난 개인이 아니라 기계의 부속으로 만들기 위해 집중하는데 그 안에서 어떻게 탁월한 축구선수가 나오겠나? 박지성도 사실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왔을 뿐 오히려 해외리그에서 뛰면서 더 많이 성장하지 않았나? 박지성이 감독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맞추기만 했다면 과연 박지성이 박지성이 될 수 있었을까? 사실 아인트호벤에서 맨유로 이적할 때 히딩크도 반대를 했단 것은 박지성이 해외리그에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히딩크도 그때 박지성의 실력이 맨유에 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이적 초기에는 부진하지 않았나? 박지성은 주위 사람들도 안된다고 생각한 것을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한 것이지 우리나라 축구계의 시스템이 그를 만든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축구계는 맨날 암기하는 교육만 시키면서 창의력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교육계의 폐해를 그대로 갖고 있다. 선수들을 부품으로 취급하는 엘리트 스포츠에서 어떻게 개인능력이 탁월한 선수가 나오겠나?
맞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실력이 안된다. 부족하다. 그나마 실력이 가장 뛰어난 편인 선수들도 이번에는 대거 부상을 당하면서 잘해야 1.5군 정도 되는 선수들이 월드컵에 나섰다. 우리나라처럼 선수층이 얇은 국가에서 말이다. 일본? 일본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인구도 2배가 넘고 축구 인프라가 훨씬 잘 갖춰져 있는 나라다. 그리고 주축선수들이 다 나왔다. 사실 우리나라 프로축구팀들이 국제대회에서 일본만큼의 성적을 내는 것이야말로 기적이다. 그렇다면 어쨌든 이탈리아까지 누르고 월드컵에 나온 국가를 상대로 1대 0으로 패배한 건 나쁜 결과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스웨덴이 시원하게 이기지 않았다. 그들은 처절할 정도로 이기는 축구만을 했다. 그리고 질 거라고 그렇게 비아냥 거리던 사람들이 왜 졌다고 그에 대해서 비난을 하나? 마치 이길 줄 알았는데 실망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실력적으로 우리나라 선수들의 한계를 만든 것은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계의 성적지상주의다. 그런데 그 성적지상주의가 우리나라 선수들을 또 한 번 죽이고 있다. 나는 국가대표를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를 대표해서 어딘가에 나선다는 무게감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지역 연극제에 학교 대표로 나가고, 그 지역 대표로 도대회에 대표로 다시 나갔을 때 내 안에 있었던 큰 부담감에 비춰봤을 때 전 세계가 지켜보는 월드컵 무대에 국가대표로 선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부담을 수반하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그런 환경에서 뛰고 있다. 다른 어느나라보다 온라인 등을 통해서 비난이 심하게 이뤄지는 국가의 대표로 말이다. 전세계에 개인 SNS에까지 가서 거의 단체로 욕설을 퍼붓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밥 먹고 공만 차면서 그것도 못하냐고 하지만, 그러면 밥 먹고 공부만 한 당신들은 공부를 항상 잘했나? 항상 1등만 했나? 밥먹고 일만한 당신은 회사에서 항상 평가가 최상위였나? 월드컵은 아이슬란드와 같은 극히 예외적인 국가를 빼고는 다들 밥 먹고 공만 차는 사람들끼리 경쟁하는 무대다. 선수를 준비하다가 중학교 때 선수를 그만둔 사람이랑 축구를 해봤는데, 직접 붙어보면 안다. 그들이 우리 같은 축구에 대한 비전문가가 평가할 수준은 아니란 것을 말이다. 밥 먹고 축구하는 사람들끼리 붙는 곳이다 보니, 그 안에서 또 차이가 나 보일 뿐이다. 그리고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그건 꼭 선수 개인의 탓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엘리트 축구계가 선수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성적을 잘 내면 좋지만 우리나라의 축구계를 생각하면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월드컵이 끝낼 때까지만이라도 비판 대신 격려와 칭찬을 해줄 수는 없을까? 결과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건설적인 노력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ps. 그리고 스페인 코치들 부임직후에는 몇 경기를 잘한게 스페인 코치들 덕이라고 하더니, 왜 스웨덴전이나 평가전에서는 스페인 코치들에 대한 얘기는 없는걸까? 어떻게 잘못되면 신태용 감독 탓, 잘되면 스페인 코치들 덕인가? 사대주의도 이런 사대주의가 또 있을까 싶은게 사실이다. 비판을 넘어 비난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비난도 최소한 공평해야 하지 않을까?